추징금 고액 미납자 김우중 전 대우 회장, 전두환 전 대통령, 최순영 전 신동아 회장, 노태우 전 대통령(왼쪽부터).
7월 초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가 모교 경북여고 역사관 건립 기금으로 5000만 원을 기탁한다는 소식이 알려져 비난을 사고 있다. 경북여고 총동창회 관계자는 “딸인 노소영 씨가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어머니 출신교에 기탁금을 약정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지만 여전히 논란은 거세다. 노 전 대통령이 반란 중요 임무 종사 혐의와 비자금 조성 혐의로 선고받은 추징금 2629억 원 중 남아 있는 추징금은 280억 원. 누리꾼들은 “남편은 돈이 없어 추징금도 못 내는데 부인이 어떻게 기부를 하느냐”며 꼬집었다.
추징금이란 범죄행위로 얻은 동산, 부동산, 주식 등을 국가에 반환하는 조치로 보통 뇌물, 배임 수재, 재산 국외 도피, 변호사법 위반 등의 경우 선고된다. 2010년 7월 말 추징금 납부 성적표를 살펴보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대우그룹 임직원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은 분식회계와 사기 대출, 재산 국외 도피 혐의로 2006년 11월 항소심에서 추징금 17조9253억 원과 징역 8년 6개월, 벌금 1000만 원 형을 선고받았다. 2008년 1월 특별사면을 받았으나 18조 원 가까운 추징금은 거의 미납 상태다. 2007년 당시 김씨는 “경남 거제시 부동산 142만여 m2(43만 평)와 밀레니엄 서울 힐튼호텔 펜트하우스 이용권, 대우경제연구소 주식 13만2000주 등 재산이 19억 원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 19조 미납
미납 순위 4위인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은 1999년 2월 2억6000만 달러를 해외로 밀반출하고 11개 계열사를 이용해 1조2809억 원을 불법 대출받은 혐의로 구속돼 징역 5년, 1574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으나 역시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김준식 전 (주)삼산 대표, 박석진 씨, 박치석 씨, 김세환 씨 등 역시 사업인으로 특가법을 위반한 혐의로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대부분 500억 원 이상 되는 추징금을 미납한 상태다.
2003년 6월 서울서부지법의 재산 명시 신청 때 “예금 29만 원이 전 재산”이라고 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추징금 미납 순위 5위. 내란 반란 수괴 혐의로 1996년 12월 2205억 원을 선고받았고, 현재까지 미납액은 1672억 원. 한편 노태우 전 대통령은 2629억 원을 선고받아 지금까지 2344억여 원을 냈다. 여전히 많은 추징금이 미납으로 남았지만, 유명 미납 인사 중에서는 납부 성적이 좋은 편이다.
벌금형에 비해 추징금 미납률이 이처럼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외대 법대 김성규 교수는 “추징금의 경우 벌금에 비해 선고 금액이 높고, 추징금 납부 의무자들이 미리 재산을 빼돌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미숙 선임연구위원은 “추징금 환수에 앞장서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집행과의 경우 연간 1700건의 사건을 담당해 업무 부담이 크다”고 덧붙였다.
1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에 아들과 아내가 실물 크기의 동상을 세웠다. 미납 추징금이 280여억 원이다. 2 2003년 추징금 환수를 위해 경매에 부쳐진 전 전 대통령 소유 진돗개.
최순영 전 회장 역시 마찬가지. “지금 추징금 낼 돈이 어디 있느냐. 회사를 찾으면 내겠다”던 그는 현재 부인 명의의 서울 한남동 빌라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노 전 대통령은 경북 대구 생가에 실물 크기의 동상을 세웠다. 노 전 대통령의 딸인 아트센터나비 노소영 관장의 남편 최태원 씨는 재계 순위 5위 이내의 SK그룹 회장이다.
추징금 미납 블랙리스트 여전
가족, 친지 명의의 재산에서 추징금을 징수할 법적 근거는 없다. 추징금은 본인 명의 재산만 추징할 수 있기 때문. 만약 검찰, 국세청 등이 직계가족이나 제3자의 재산 형성 과정에서 추징 당사자의 재산이 은닉된 흔적을 발견하면 추징을 집행할 수 있다. 실제 노 전 대통령의 경우 동생 재우 씨 명의로 된 성화산업, 미락냉장 등의 주인이 노 전 대통령인 것으로 밝혀져 추징당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전두환, 최순영 등 대다수 추징금 미납자는 이를 악용해 가족이나 친지 명의로 자산을 빼돌려 추징금을 내지 않고 있다.
현행법상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아도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 벌금형의 경우 벌금을 내지 않으면 대신 유치장 구금을 하기도 하지만, 추징금에는 그러한 제도가 없다. 지난 국정감사 때 추징금 미납자에 대해 노역장 유치 집행을 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법무부는 “추징금은 다른 형에 ‘부가’되는 사법처분으로 9가지 형벌에 포함되는 벌금형과 다르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추징금의 공소시효는 3년. 시효가 만료되면 추징의 의무가 없다. 만약 시효 만료 전 검찰이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 조치를 내리면 공소시효가 자동으로 연장된다. 2000년 검찰이 전 전 대통령 명의로 된 용평콘도 회원권과 벤츠 승용차에 대한 강제집행 명령을 실시하고, 2008년 은행 채권 추심을 통해 약 5만 원을 징수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 공소시효를 늘려 추징금을 받으려는 의지였다. 하지만 2011년 6월까지 검찰이 전 전 대통령에게 추징금을 징수하지 않으면 더 이상 추징이 불가능하다.
추징금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검찰도 알고 있다. 이에 2006년 5월 대검찰청은 불법 수입의 몰수·추징을 전담하는 범죄수익환수팀을 가동, 그해 전국적으로 범죄수익의 환수·보전 작업을 벌인 결과 예금·부동산 등 총 519건, 2383억6000여만 원에 대한 범죄수익 환수 보전조치를 취했다. 이러한 규모는 범죄수익환수팀이 설치되기 이전인 2005년 환수보전 금액 29억2052만 원의 82배에 해당한다. 하지만 여전히 추징금 미납 블랙리스트는 건재한 상황. 법무부 검찰과 김태훈 검사는 “검찰 내부에서 추징금제 개선을 계속해서 논의 중이다. 미납 추징금을 받아내기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