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 웨스트민스터 광장을 점령했던 시위대(작은 사진)가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의 요청으로 강제 해산됐다.
흔히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라 부르는 영국 의회 건물은 런던의 역사를 상징하는 건축물 가운데 하나다. ‘빅벤(Big Ben)’이란 애칭으로 더 유명한 대형 시계탑 덕분에 런던을 방문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문제의 의회 광장은 이 건물을 바라보고 있는 축구장 4분의 1 크기의 잔디밭이다. 광장에는 윈스턴 처칠과 넬슨 만델라 동상이 있다. 영국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이곳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공간이다.
그런데 이 광장이 지난 5월부터 각종 정치 슬로건을 내건 시위대에게 사실상 점거되다시피 했다. 아프가니스탄 주둔 영국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반전 시위대가 다수지만 기후변화 이슈를 내세운 환경운동가, 심지어 공산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도 가세했다. 물론 이 거대한 시위대도 처음엔 도로변 잔디밭 눈에 띄기 쉬운 곳에 펼침막을 내건 소수로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시위대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광장을 가득 채우기까지 두 달이 걸리지 않았다.
온갖 시위대가 점령 런던판 ‘촛불광장’
더 큰 문제는 이 시위대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광장에 텐트를 친 채 노숙투쟁에 들어간 것. 다른 이슈를 들고 서로 다른 곳에서 모여든 시위대는 자연스레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었다. 아침저녁으로 낯선 이들이 모여 서로 다른 이슈를 토론하고, 민주주의와 평화를 외치는 런던판 ‘촛불광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광장에는 ‘민주주의촌 (Democracy Village)’이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그리고 광장 한편에선 일부 시위대가 채소밭을 만들어 ‘보급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거대한 캠핑촌을 연상시키는 이 시위대는 지난 몇 달 동안 런던 시민은 물론 웨스트민스터를 찾은 관광객에게도 ‘빅벤’ 못지않은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반전, 평화, 기후변화 등 글로벌 이슈에 관심을 보이는 이도 있었지만, 시내 한복판 잔디광장을 독차지한 시위대에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점점 늘어났다.
특히 하루에도 수천 명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 중 명소를 시위대에게 빼앗긴 런던 시 당국은 생각하기도 싫은 큰 골칫거리를 만난 셈이다. 시위대를 방치하자니 런던의 얼굴이 말이 아니게 생겼고, 단속하자니 민주주의 종가에서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탄압한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생긴 것이다. 보수당 소속의 존슨 시장은 결국 법에 호소하기로 결정했다. 이 광장에서 장기 시위를 벌이는 시위대 이름을 일일이 적시해 법원에 제출한 후, 이들에 대한 퇴거 명령을 이행할 수 있게 해달라고 소송을 낸 것.
강제철거 집행에 맞선 최후의 1인 시위자 브라이언 호.
그는 현직 시장이면서도 보수 성향의 ‘데일리 텔레그래프’에 칼럼을 연재해 1년에 25만 파운드(약 4억5000만 원)의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 문제가 불거지자 그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일요일 아침 닭 모이 주듯이 쉬엄쉬엄 쓰는 거다. 난 굉장히 글을 빨리 쓰기 때문에 시장 업무에 별로 지장을 주지 않는다. 별것 아니다.”
늘 이런 식이다. 칼럼이나 연설에서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언급을 해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인종주의자’라는 오해를 들을 법한 표현도 종종 구사한다. 다문화 존중을 표방하는 영국 정치권에서 ‘인종주의자’라는 낙인은 정치적 파멸과 다르지 않다. 이렇게 걸핏하면 대중과 맞서는 걸 즐기는 정치인이다 보니 광장 시위대 같은 민감한 문제에도 총대를 메고 나선 것. 그런데 바로 이런 돈키호테식 언행이 그를 런던 시장까지 만든 인기의 원동력이라는 시각도 있다.
홀로 살아남은 반전운동 아이콘
결국 광장의 시위대 문제를 법정으로 끌고 간 존슨 시장은 1라운드에서 판정승을 거뒀다. 법원 판결이 내려진 뒤인 7월 20일 새벽, 시위대 강제 해산 작전이 벌어졌다. 일부 시위대는 체인으로 시설물에 자신의 몸을 묶어 저항하기도 했으나 더 이상의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광장에는 시설 복구를 위해 사방을 둘러싼 차단벽이 설치됐다. 시위대도 장소를 바꿔 시위를 이어가겠다고 밝히며 일단 물러섰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들이 떠난 광장에 혼자 남아 시위를 하는 사람이 있다. 올해로 9년째 한 자리에서 반전 시위를 이어오는 브라이언 호가 그 주인공. 브라이언 호는 2001년 의회 앞 광장에 텐트를 치고 시위를 시작한 터줏대감이다. 당시 이라크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반대하는 슬로건을 내걸고 1인 시위를 시작한 뒤 그는 이제 영국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반전 평화운동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이번 법원 판결에서도 홀로 살아남았다. 존슨 시장의 소송건과 별개 사안이라는 게 이유였다.
런던 경찰은 이 골칫거리 1인 시위자를 광장에서 몰아내고자 여러 수단을 동원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체포와 구금, 석방이 이어지는 속에서도 그는 9년째 한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사전 신고하지 않은 집회나 시위를 금지하는 법안도 마련됐지만, 브라이언 호를 몰아내기 위해 이를 소급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의회 광장 주변 1마일 이내 사전 승인되지 않은 시위를 하면 불법이라고 판결한 것은 이미 그가 시위 중이던 2007년의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법정의 출석요구서가 전달되면 그는 꼬박꼬박 출석해 1인 시위의 정당성을 적극 변호했고 그때마다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덕분에 브라이언 호는 2007년 민영방송 ‘채널4’가 주는 ‘올해의 정치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방송으로 생중계된 시상식에 당시 블레어(Blair) 총리의 이름을 거짓말쟁이(liar)라는 단어와 합성한 ‘BLIAR’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등장해 노동당 정부를 비난했다.
지난 5월 보수당으로의 정권 교체 이후 내무부에서 브라이언 호를 광장에서 내쫓기 위한 특별법을 마련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에 반대하는 상당수 국민의 심정을 대변한 브라이언 호는 ‘터프가이’로 소문난 존슨 시장도 어쩌지 못하는 ‘최후의 시위자’가 됐다. 광장을 둘러싼 2라운드가 예고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