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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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매장 직원이 졸졸 따라다니지 않네

백화점 등 판매업계 고객 응대 매뉴얼 변화 … 친구처럼 편안하게 모시기로 매출 늘어

  • 박혜림 기자 yiyi@donga.com

    입력2010-08-02 13: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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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매장 직원이 졸졸 따라다니지 않네

    명동의 유니클로 매장. 고객 스스로 제품을 고르고 있다.

    “어휴, 차라리 손님 보기를 돌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얼마 전 백화점에서 구두를 구입한 장모(35) 씨. 처음에는 구경 삼아 매장을 들렀지만 직원의 친절한 미소와 적극성에 결국 쭈뼛쭈뼛 구두를 사고 말았다. 자신의 발에 맞는 사이즈의 구두를 찾으러 창고를 여러 번 오가고,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신발을 신겨주는 직원의 정성에 그냥 돌아서기가 미안했기 때문이다. 차마 다른 매장을 둘러보고 오겠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과도한 친절에 불편함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과잉 서비스가 오히려 부담스럽고 불편하다는 반응이 늘자 판매업체들의 고객 응대 매뉴얼이 바뀌고 있다. 최대한 친절하고 깍듯하게 고객을 대하던 방식에서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대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는 것. 대표적인 예가 인사법과 고객 접근 방식이다.

    필요할 때만 재빨리 응대하라!

    오전 10시 반, 롯데백화점 개장 시간. 백화점에 노래가 울려 퍼지면 모든 직원이 자신의 매장 앞에 서서 대기 자세를 취했다가 손님이 들어오면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인사를 받으면서도 민망해하는 고객이 많아 방식을 바꿨다. 각 매장의 매니저와 직원 한 명 정도만 인사를 하고 나머지 직원은 상품을 정리하게 한 것. 인사하는 각도도 30~45도로 수정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직원이 고객에게 섣불리 접근해 제품을 추천하는 행동을 금하는 대신 매장에 들어온 고객이 혼자서 제품을 충분히 둘러볼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매장을 지나가는 고객에게는 가벼운 목례와 미소만 보내도록 했다. 매장을 찾은 고객 김진영(32) 씨는 친한 척하며 말을 많이 하는 직원보다 물을 때 빨리 대답해주는 직원을 선호한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몇 초 만에 직원이 다가오면 마음이 조급해져요. 적극적으로 구입을 권하는 직원보다는 방관하고 있다 고객이 사이즈나 색상을 문의하면 재빠르게 대답해주는 직원이 편하죠.”

    연세대 경영학과 이동진 교수는 “간섭받지 않고 편안하게 쇼핑을 하려는 마음은 누구나 똑같다”며 “대부분의 사람은 물건을 구입하면서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한 뒤 구매했다고 인식하길 원한다”고 말한다. 즉 고객들은 판단과 공간, 시간의 자율권을 확보하고 싶어 하는데 이것을 침해받을 경우 심리적인 반발감이 생긴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경영학계가 판매업계의 고객 응대 매뉴얼 변화를 바람직한 현상이라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 매장 직원이 졸졸 따라다니지 않네

    ‘가벼운 목례와 편안한 미소를.’ 신세계백화점 판매사원들이 고객 응대법을 배우고 있다.

    고객이 제품에 대한 정보를 접할 기회가 많아지고 주관과 취향이 뚜렷해진 것도 변화를 부른 한 요인이다. 유니클로, 자라, H·M 같은 SPA 브랜드는 이러한 변화를 일찍이 간파했다. 이들 회사의 판매 기본은 제품의 색상, 사이즈, 스타일링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고객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것. 신상품이나 추천상품은 직원이 직접 착용하고 있거나 패널, 마네킹을 통해 설명하는 정도에 그친다. 유니클로 마케팅팀 관계자는 “직원의 주 업무는 흐트러진 옷을 정리하는 정도다. 고객이 문의할 때만 가까이 다가가 응대하도록 했다. 고객을 적극적으로 설득해서 얻는 이득보다 고객에게 자율성을 줌으로써 얻는 이득이 훨씬 크다”고 밝혔다.

    통통한 체형의 이모(26) 씨는 이러한 점 때문에 SPA 브랜드 매장을 즐겨 찾는다. 기존 의류 브랜드 매장에서는 직원이 피팅룸 거울 앞에 같이 서서 “잘 어울린다” “다른 사이즈를 가져다드릴까요”와 같은 말을 해 부담스러웠기 때문. 이씨는 “사이즈가 맞지 않거나 옷이 지나치게 어울리지 않을 때 어디로 숨고 싶다. 특히 남자 점원이 자꾸 도와주겠다고 할 때는 부담감이 더 커진다”고 말했다.

    대인관계 문화가 변하고 있는 점도 한 요인이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는 그 나라의 문화는 기업의 고객 응대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미국의 판매업계가 고객을 친구처럼 편안하게 대하고, 일본의 판매업계가 고객을 깍듯하고 공손하게 응대하는 것은 그 나라의 대인관계 문화와 무관치 않다는 것. 지금까지 국내 기업은 일본 기업의 고객 응대 매뉴얼을 거의 그대로 가져와 적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한국 소비자가 달라졌다는 것. 자유분방하고 간섭받기 싫어하는 젊은 세대가 소비의 주요 층으로 떠오르면서 그들을 겨냥한 판매 방식에도 변화가 요구됐다.

    중장년층은 “글쎄요”

    이러한 흐름에 맞춰 신세계백화점 고객서비스팀은 현장에서 일할 예비 판매직원들에게 새로운 고객 응대법을 교육하고 있다. 과거에는 정중하게 45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음성은 도레미파솔의 솔 높이를 유지하도록 가르쳤다. 하지만 최근에는 크고 높은 음성은 고객에게 부담을 주므로 자제하도록 하고 인사도 목례로 대체했다. 대신 작은 미소, 눈 미소, 함박 미소 등 웃는 얼굴을 강조한다. 판매직원 교육을 맡은 류미애 대리는 “손님이 특정 매장의 위치를 물을 경우, 과거에는 매장까지 동행했지만 지금은 고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설명하는 선에서 그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변화는 채용 기준도 바꿔놓았다. 한국서비스아카데미의 김경숙 이사는 “과거에는 무조건 미인형을 선호했는데 최근에는 친절한 인상이나 호감 가는 미소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무엇보다 상황에 대처하는 융통성, 감각 등의 서비스 태도가 더 중시되는 추세”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누구나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고객 응대 방식에 익숙한 중장년층은 자신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또한 고객이 매장을 둘러보는 시간이 모호하다는 문제도 있다. 백화점 속옷 브랜드 매장에서 일했던 전모(26) 씨는 “손님에게 매장을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드렸는데 나중에 서비스가 불충분하다고 항의가 들어왔다. 처음 매장에 들어왔을 때 시선을 잘 마주치지 않는 고객에게는 시간적 여유를 충분히 주고 반대의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다가갔는데, 그 접점을 찾기가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여전히 전통적인 응대 방식을 고수하는 곳도 있다. 고가의 제품을 팔거나 권위적인 중장년층이 즐겨 찾는 매장이 대표적.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기본 응대 매뉴얼은 백화점이 정하지만 세부적인 요령은 브랜드마다 다르다. 국내 의류 브랜드나 명품 매장에서는 여전히 깍듯이 인사하고 적극적으로 고객을 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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