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과 함께 초·중학생 대상 각종 캠프가 본격적으로 개최되기 시작됐다. 2009년 신종플루의 영향으로 주춤했던 캠프 시장이 다시 활기를 찾은 것. 특히 학생의 성적뿐 아니라 경험, 특기, 잠재력, 창의력, 포트폴리오까지 평가한다는 입학사정관제 도입을 앞두고 자기주도 학습 캠프가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밖에도 영어, 리더십, 경제, 해병대 체험, 연극, 미술 등 다양한 캠프가 국내외에서 우후죽순 열리고 있다. 캠프단체협의회에 따르면, 올 여름방학에만 6000여 개 업체가 1만여 개의 캠프를 주최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평균 참가비는 2박3일에 30만 원 정도.
올해는 자기주도 학습 캠프가 대세
1910년 한국 최초의 캠프 ‘학생하령회’ 모습.
부모들은 “캠프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한다. 경북 경주에 사는 학부모 김모(47) 씨는 “다들 캠프를 보내는데 우리 아이만 안 보낼 수 없다. 지방은 교육 인프라가 부족해 방학 때 캠프를 적극 이용해야 서울 아이들을 따라갈 수 있다”고 토로했다. “개학하면 캠프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아이가 소외될까봐 캠프에 보냈다”는 부모도 있었다.
이처럼 불안감에 혹은 유행을 좇아 캠프에 보내지만, 아무런 전략 없이 캠프를 선택한다면 돈만 낭비할 가능성이 크다. 자기주도 학습 캠프에서 만난 A군은 “아버지가 가라고 해서 왔다. 수업도 재미없고 내가 뭐가 변했는지 전혀 알 수 없다”며 투덜거렸다. 영어 캠프에도 다녀왔다는 B군은 “캠프를 연달아 다녀오면 방학이 끝나버린다. 방학 동안 집에 있으면 엄마가 귀찮으니까 캠프에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캠프에 와서야 원하는 프로그램이 아닌 것을 알았지만 돌아갈 수 없어 그냥 남았다는 학생도 있었다. 물론 스스로 원해서 찾아온 학생들은 태도부터 달랐다. 중학교 1학년인 강창훈 군은 “공부를 잘하는 편이지만 모두 학원‘발’이란 생각에 자신감이 없었다. 혼자 공부하는 습관을 기르려고 캠프에 왔는데, 만족한다”고 말했다.
무책임한 대학생 아르바이트생
교육전문가들은 강제로 보낸 캠프의 부작용을 우려했다. 숙명여대 교육학부 송인섭 교수는 “어떤 학습 행위에도 강제성이 들어가면 교육 효과가 없다. 억지로 다녀온 아이는 캠프에 가는 행위 자체를 거부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참가비가 비싸면 캠프 내용도 좋다”고 맹신하는 부모들의 태도도 문제다. 앞서 언급한 자기주도 학습 캠프 총괄자인 김씨는 “참가비가 비싼 건 사실이지만 성수기 숙박비, 식대, 그리고 양질의 교사 채용을 고려하면 비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캠프 업체들은 ‘싼 게 비지떡’이라는 부모들의 심리를 이용해 터무니없이 가격을 올리고 과대광고로 캠프 효과를 포장해 부모들을 현혹한다. 캠프단체협의회 김병진 사무국장은 “자녀교육을 놓고 부모들은 위만 쳐다본다. 그래서 캠프 내용을 꼼꼼히 따지기보다 가격이 비싸면 좋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싸면 무언가 문제가 있을 거라 의심한다”고 지적했다.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나 청소년시설 등에서 개최하는 저렴한 캠프에 대해 편견을 가진 이들도 있다. 학부모 박모(41) 씨는 “비싼 캠프에 보내면 아이가 좀 더 나은 아이들과 만나 자극도 받고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리라는 기대가 있다. 솔직히 저소득층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은 싫다”고 털어놓았다.
캠프 열풍이 불자 유학원, 어학원, 여행사까지 캠프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김병진 사무국장은 “인터넷을 통해 상품 원가가 공개되면서 유학원, 어학원, 여행사 등이 본업에서 수익을 내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캠프 쪽은 아직 초창기이고 비싸면 비쌀수록 잘 팔려서 여러 업체가 뛰어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대목을 노린 업체들은 사고에 대비한 고가의 영업배상책임보험 대신 소액의 여행자보험만 가입하기 일쑤다. 게다가 일부 해외 영어 캠프 업체는 참가비를 낮추고 업무를 간소화하기 위해 유학비자가 아닌 관광비자로 해외에서 교육 캠프를 열거나 비자 수수료를 받고도 유학비자를 내지 않는 얌체짓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녀가 해외 캠프에서 유학비자, 문화교류비자 없이 공부하다 적발될 경우, 추방 조치를 당하거나 다음 비자 발급이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 외교통상부 영사서비스과 관계자는 “방문 목적에 맞는 비자를 발급받아야 예기치 않은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권했다.
보통 캠프 업체들은 피라미드식으로 고객을 끌어모은다. 운영업체가 모집업체를 두고 모집 수수료를 지급하는 것. 특히 참가비가 비싼 해외 영어 캠프는 여행사, 유학원 등이 운영업체 대신 참가자를 모집한다. 한 업체가 특정 나라가 아닌 여러 국가를 대상으로 해외 캠프를 모집한다면, 운영은 하지 않고 모집만 담당한 곳일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캠프 내용이 부실해도 환불받기 어렵다. 학부모가 항의해도 모집업체는 “캠프를 주관하지 않았으니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고, 운영업체는 “직접 상담하지 않았다. 원래 일정에 없던 것을 모집업체가 현혹한 것”이라고 책임을 미루는 일이 빈번하다. 피해가 심각할 경우 민사소송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유명 기관을 앞세운 캠프도 실제 운영을 하청업체가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캠프 시장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캠프 전문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대학생들이 단순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캠프 보조교사로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자가 눈으로 확인한 캠프도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을 보조교사로 채용했다. 보조교사는 아이들의 식사와 세탁 등 세세한 부분부터 안전질서 유지까지 다양한 업무를 맡는다. 하지만 이들 중 청소년 지도사, 응급 구조사 등 관련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강의실에서도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국내 유명 대학에서 주최하는 캠프도 마찬가지다. 보조교사로 참여했던 대학생 조모(22) 씨는 “캠프 참가 전에 아이들을 위한 안전교육을 받았지만 대충 들었다. 셔틀버스 이동 시 안전을 맡았는데 함부로 일어서서 장난을 치는 아이들을 통제 못해 아찔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고 말했다. 한 국내 영어 캠프에서는 주말에 참가 학생과 대학생 보조교사만 남은 적도 있었다. 원어민 교사가 주말이라 ‘출근’하지 않았기 때문. 대학생 김모(22) 씨는 “우리는 아르바이트로 생각하는데 아이들을 전담해야 하니 부담스럽다”고 했다.
캠프를 선택할 때는 아이의 의사를 묻고 전문 업체가 운영하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해외문화체험 캠프, 해병대 병영체험 캠프, 전통문화체험 캠프(왼쪽으로부터 시계 방향으로).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한 영어 캠프에서는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을 쓰면서 이들을 영어 전문가인 양 포장했다. 대학생 윤모(23) 씨는 “학부모에게는 대학생 진행요원도 원어민 수준의 영어 구사자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어를 쓰지 않도록 통제하는 것이 우리의 주 업무지만 사사건건 주의를 주는 게 귀찮고 우리도 한국말이 더 편하니까 내버려둔다”고 했다. 캠프 생활 내내 영어만 쓴다는 광고는 사실이 아니었던 것. 대학생 보조교사들은 책임감이 부족해 밤에 술을 마시기도 한다. 윤씨는 “숙소로 술을 가져와 마신 후 다음날 일어나지 못해 아이들을 방치한 일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결국 생활관리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피해를 입는 것은 아이들이다. 2009년에는 초등학교 3학년 남학생이 캠프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2주간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영양실조로 입원한 일이 있었다. 업체 측이 밥을 먹지 않는 아이를 그냥 방치한 것이다.
아이들끼리 폭력 문제가 불거지기도 한다. 보조교사로 참여한 대학생 이모(26) 씨는 “캠프가 길어지면 특히 남학생끼리 힘의 우열에 따라 서열이 생긴다. 힘센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돈을 빌리거나 심부름을 시키기도 하지만, 교사가 24시간 따라다닐 수도 없고 제재할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기자가 참관한 자기주도 학습 캠프도 사고 방지를 위해 아이들이 현금을 지니지 못하게 한다고 강조했지만, 버젓이 수업시간에 현금을 주고받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이토록 캠프가 허술하게 진행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캠프는 교육과 여행의 혼합 형태다. 그러다 보니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 캠프를 여행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에게 떠넘긴다. 문광부도 교과부에 책임을 전가하기는 마찬가지. 청소년을 담당하는 여성가족부도 관할 청소년 시설을 이용하는 캠프만 관리할 뿐, 일반 업체 주관 캠프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는다. 세 부처 모두에 “어린이 대상 캠프와 관련해 맡은 업무가 있느냐”고 문의했지만 “우리 부와 상관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즉 캠프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이를 관할할 정부 부처는 없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학원비, 여행비도 모두 정부의 규제를 받지만 캠프 참가비는 부르는 게 값이다. 부모들은 방학마다 우후죽순 난립하는 캠프 중에 옥석을 가리는 전쟁을 아무 도움 없이 홀로 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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