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나라 사마의와 벌인 오장원 전투에서 숨진 제갈량의 무덤. 옛 촉의 땅인 사천성 성도에 있다.
“외척 박종경은 탐학이 본디 그의 기량이요, 호화와 사치를 부려 전혀 분수를 모르고 있습니다. 팔도에 토지와 노비를 두어 산과 바다를 포괄해 음악, 여색으로 사시절을 놀며, 항상 술과 가무에 빠져 있습니다. 집 모퉁이에서 원망이 높고, 인척이 아첨하느라 번갈아 드나드니 요행의 문이 열려 기세를 부립니다. 기세 높은 공갈에 속아 세상의 반이 거의 모두 이처럼 빌붙었고, 뇌물이 폭주했으며, 여러 도(道)에서 근거도 없이 빼앗지 않은 게 없으며, 서울과 지방의 재산이 모조리 그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흩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득영은 부패의 뿌리가 서로 얽혀 있고 상대의 허물을 가려주는 구조적 모순 때문에 오히려 진도 금갑도에 유배됐고, 6년 후에야 특명으로 향리에 옮겨졌다가 1819년 여러 대신과 삼사(三司) 관원의 청원으로 유배생활에서 풀려나왔다.
순조의 ‘읍참마속’을 기대했지만 결과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오욕의 역사로 돌아왔다. 결국 조선은 부패한 채 개항을 했고, 외세 바이러스를 극복하지 못해 망국으로 500년 역사를 마감했는지도 모르겠다.
순조 때 조득영, 외척 처단 상소 올렸다가 유배생활
읍참마속은 어디서 나왔는가. 촉한(蜀漢) 건흥(建興) 5년(서기 227) 3월. 제갈량(諸葛亮, 孔明)이 위(魏)를 토벌하기 위해 출사표를 올린 다음, 군대를 이끌고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를 떠나 협서성(陜西省) 한중(漢中)에 이르기까지 도처에서 위나라 군사를 격파했다. 또 그해 겨울 장안(長安)을 공격해 휘하 군졸을 감숙성(甘肅省) 기산(祁山)으로 이동시켜 위나라 조조(曹操)의 조카인 대도독 조진(曹眞)의 20만 대군을 쳐 위수에서 패주케 한 사실이 ‘삼국지(三國志)’ 권35 촉서(蜀書) 제갈량전에 전한다.
이때 위기에 몰린 조조는 사마의(司馬懿, 仲達)를 기용해 또다시 20만 대군으로 공명의 군사와 맞서게 했다. 중달은 기산의 벌판에서 촉나라 군사와 대척해 부채 형국의 진형을 벌였다. 공명은 상대가 사마중달인 만큼 마음 한군데 불안한 구석이 있었다. 그것은 촉나라 군사의 식량을 수송하는 데 중요한 지점인 가정(街亭·한중 동쪽) 때문이었다. 만일 가정을 위나라 군사에게 잃는다면 전방에 진출한 촉나라 군사는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이 병참기지를 누가 방어할 것인지가 공명으로서는 최대의 현안이었다.
“처벌하지 않으면 더 큰 손실을 불러온다”며 마속을 참수토록 한 제갈량.
가정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산마다 깎아지른 듯한 암벽이었다. 공명의 작전명령은 이 험준한 산기슭의 도로를 사수해 사마중달 부대의 접근을 막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속은 지형을 살펴보고는 상부의 지시와 달리 산 위로 올라가서 진을 쳤다. 부장 왕평의 만류에도 마속은 끝끝내 고집을 세웠다. 그 결과 마속의 부대는 적군 포위망에 걸려 참패하고 말았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실책이 아닐 수 없었다.
제갈량 “마속 처벌하지 않으면 더 큰 손실 불러”
‘스폰서 검사’를 고발한 건축업자 정용재 씨가 자료를 펼쳐 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마속이 사형장으로 끌려나간 뒤, 공명은 소매로 얼굴을 감싸고는 그 자리에 엎드려 통곡했다. “마속아, 용서해다오. 죄는 진정 이 제갈량에게 있느니라. 내 불찰에 있었느니라. 그러나 나는 나의 목을 잘라버릴 수가 없구나. 왜냐하면 살아서 이 나라를 위해 심신을 바쳐 싸워야 하기 때문이니라.”
마속의 머리가 진중에 높이 매달려졌을 때 공명은 소리 내어 울며 이 말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상소를 올려 자신이 사람을 잘못 기용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며 직위를 3등급 강등시켜줄 것을 요청했다. 그야말로 ‘전무후무 제갈무후(前無後無 諸葛武侯)’다운 처세였다.
최근에 터진 스폰서 검사 스캔들과 당진군수의 비리 행각을 보면서 사회지도층이라는 인물들이 겉으로는 애국과 정의를 주장하지만 사실은 사복(私腹) 채우기에 급급했다는 것이 증명됐다. 25년간 검사 57명에게 술과 촌지로 향응을 제공했다는 부산지역 한 건설업자의 폭로가 나온 뒤 대한민국 검찰의 위상이 실추되고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차갑다.
조선시대 사헌부 관직은 청요직(淸要職)으로 의정부, 6조와 함께 정치의 핵심기관으로 도덕적으로 검증된 엘리트 관료가 임용됐다. 앞으로 진상규명위원회가 엄정히 조사해 오랜 관행인 스폰서 문화를 척결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 검찰의 위상을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지난해 세밑에 터진 홍성군청 공무원의 예산 횡령사건이 기억에서 사라질 참에 폭로된 당진군수의 비리 역시 국민을 분노케 한다. 재임 6년간 ‘돈키호테’ ‘불도저’라 불리며 그가 저지른 각종 비리는 문어발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였다. 기초단체장이 갖고 있는 예산 배정권, 공무원 인사권, 각종 인허가권이 비리의 온상인 만큼 차제에 신중하고 효율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집권 3년차를 맞은 이명박 정부는 지난 3월 비리척결 대상으로 권력형 비리, 교육계 비리, 토착 비리 등을 제시했지만 연일 터지는 새로운 형태의 비리 때문에 공염불이 되고 있다.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성공한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비리가 드러나면 일과성으로 그칠 게 아니라, 발본색원해 반드시 읍참마속으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