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3일 원·달러 환율은 1552원까지 올라갔다. 오른쪽은 올 4월 26일 환율.
문제는 환율의 추가 하락이 예상된다는 점. 달러 공급이 많아지면서 환율은 상반기 평균 1130원에서 하반기 평균 1070원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큰 이변이 없는 한 현재의 달러 공급 우위현상은 무역수지 흑자와 외국인의 국내 채권 및 주식 순매수 기조가 확대되면서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국외에선 미국의 초저금리 체제가 유지되고 위안화 절상 기대감이 커지면서 달러 공급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침체 상태임에도 고환율 기조가 한국 경제의 빠른 회복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2009년 4/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인 6.0%(전년 동기 대비)를 기록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 경제는 대외의존도(GDP 대비 수출입 규모)가 높기 때문에 환율에 큰 영향을 받는다. 고환율은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줄여 무역수지 개선에 도움이 된다. 당연히 수출기업의 수익성도 개선된다. 2009년 무역수지 흑자는 404.5억 달러로, 종전 최대치인 390.3억 달러(1998년)를 상회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바 있다.
주력 산업, 수출기업은 벌써부터 비상
지난해 한국 기업이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도 일본 기업보다 양호한 실적을 유지한 비결 중 하나가 바로 높은 원화 환율이다. 2009년 2월 현재를 기준으로 보면, 리먼브러더스 사태 직전과 대비해 원화는 달러 대비 27.8% 절하된 반면, 엔화는 역으로 달러 대비 10.5% 절상됐다. 이는 원·엔 환율이 크게 상승함으로써 세계 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하는 한국 수출제품의 가격경쟁력이 좋아졌음을 의미한다. 2009년 수출 증가율 기준으로 한국은 일본 -26.1%보다 나은 -13.8% 실적을 기록하고, 제조업의 매출액 증가율과 영업이익률은 각각 0.1%, 6.8%로 일본의 -21.6%, 0.1%에 비해 훨씬 좋았는데, 이것도 알고 보면 고환율 덕분이다.
그러나 원화 환율의 가파른 하락세와 추가적인 환율 하락으로 이제 저환율 국면에 접어들었다. 즉, 환율이 더 이상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 아닌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물론 원·달러 환율이 1000원 이하로 떨어진 2005~2007년 원화 강세기에 비하면 높은 수준이지만 선진국의 저성장 기조, 한국의 추가 경기부양을 위한 정책수단 제한, 고유가 등 대내외 여건이 당시에 비해 불리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향후 원화 강세의 부정적 영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심화되고 있다는 점도 원화 가치 상승의 악영향을 가중시킬 것이다.
원화 강세는 무역수지뿐 아니라 국내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원·달러 환율이 연평균 1276원(2009년)에서 1100원(2010년 전망치)으로 떨어질 경우, 경제성장률이 약 1%포인트 하락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그만큼 우리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다는 방증. 한국의 대외의존도는 2000∼2007년 평균 62.5% 수준이었으나, 2008년과 2009년에는 각각 92.1%와 82.4%로 크게 상승했다. 또한 환율 하락은 민간소비 증가율도 0.38%포인트 하락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환율 하락에 따라 수출이 감소하고 성장이 둔화하면 소비도 감소하게 마련. 다만 원화 강세가 물가를 하락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부분이다. 예상되는 소비자물가 하락폭은 약 0.97%포인트다.
환율 하락으로 우리의 주력 산업도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원·달러 환율이 2010년 평균 1100원으로 떨어질 경우 주요 업종 중 정밀기기, 가전, 정보통신 등의 수출 증가율이 각각 21.4%포인트, 17.1%포인트, 10.5%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업종은 일본과의 경합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으면서 수출비중과 외화가득률(수출액에서 수출을 위해 들어간 수입 원자재분을 차감한 것)은 높기 때문이다.
반면 반도체와 자동차는 원·달러 환율보다 수출 경쟁관계에 있는 일본의 엔·달러 환율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산업의 경우 원·달러 환율 변동에 대한 수출 민감도는 0.1인 반면, 엔·달러 환율에 대한 수출 민감도는 -0.6으로 6배나 높다.
이 같은 저환율은 수출기업의 영업수지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수출 비중 50% 이상인 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2009년 4/4분기 이전에 영업수지 개선 요인으로 작용하던 원·달러 환율이 4/4분기에는 이미 영업수지 악화 요인으로 반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수출 물량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원·달러 환율이 더 빨리 떨어져 수출기업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기 시작한 것.
업종별로는 전기전자, 화학, 운수장비, 기계 등 4대 수출업종의 경우 영업수지에 미치는 환율 효과가 2009년 4/4분기에 일제히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즉, 환율이 영업수지를 감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환율 변동으로 인한 영향의 크기는 운수장비, 전기전자, 화학, 기계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외화가득률, 즉 환율 노출도가 운수장비(71.3%), 화학(55.8%), 전기전자(40.0%), 기계(31.7%) 순으로 높은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원화 강세 진정시킬 정부 대책 시급
한편 전기전자가 화학보다 영업수지 변동 폭이 더 큰 이유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에 대한 글로벌 수요 증대로 수출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2010년 연평균 환율이 1276원(2009년)에서 1100원으로 하락할 경우 환율 효과만으로 분석 대상 91개 수출기업의 영업이익은 2009년 25.4조 원에 비해 91.7% 감소(23.3조 원)한 2.1조 원에 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원·달러 환율이 2005∼2007년처럼 900원대까지 하락하지는 않더라도 국내외의 불리한 여건을 감안한다면 우리 경제와 수출기업은 일정한 충격을 피할 수 없으리라 예상된다. 실제 과거 원·달러 환율이 1100원 이하로 떨어진 2005년부터 경상수지 흑자 축소, 수출기업의 수익성 악화가 가시적으로 나타난 사실은 이런 예측에 힘을 실어준다. 환율이 1100원을 상회하던 2004년 경상수지와 수출기업의 영업이익률이 각각 281.7억 달러, 8.23%에서 2006년에는 53.9억 달러, 4.90%로 크게 떨어졌다.
결국 환율 하락으로 거시경제 운용, 주력 산업 수출, 기업경영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정부 당국은 원화 환율의 가파른 하락세를 막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적절한 외환 수급 관리와 외환 건전성 강화를 통해 과도한 원화 강세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 대외여건이 불리한 가운데 원화 강세가 진행되기 때문에 경기둔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지속적인 성장세 유지를 위한 거시경제 운용 전략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