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면 의대나 의학전문대학원 진학 전, 오랜 시간 투자가 가능한지, 투자 대비 수익은 괜찮을지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음)
그러나 의사가 되는 과정은 지난하며, 의사라는 직업 자체가 부(富)를 보장해주는 시기 역시 지났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의사를 꿈꾸는 후배, 학생들에게 필자가 보내는 ‘작은 경고’는 바로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이 든다는 점과 그만큼의 ‘투자 대비 수익’을 거두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의예과는 6년간의 수업 후 의사국가고시를 볼 자격을 얻게 된다. 반면 일반 4년제 대학 졸업자를 대상으로 모집하는 의전원은 4년간의 수업 후에 의사국가고시 자격시험을 볼 수 있다. 보통 의전원 진학을 위해 학원 다니며 1~2년 준비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고등학교 졸업 후 약 10년 만에 의사가 될 자격을 얻는 것으로, 의예과를 통해 시험을 보는 학생보다 3~4년 늦게 기회를 얻는 셈이다.
# 의사 10만명 시대 냉철한 판단을
문제는 이 3~4년의 차이가 작지 않다는 점이다. 일단 레지던트 선발 때 선배 또는 상사보다 나이 많은 후배를 기피하는 분위기 때문에 여러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미 30대에 접어든 여학생은 나이가 들수록 ‘몸값’이 급락하는 우리나라 결혼시장의 비정한 현실 때문에 그만큼 만날 수 있는 배우자감이 줄어드는 문제도 발생한다. 남자도 나이에 걸맞은 경제활동을 하지 못해 결혼이 마냥 늦춰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해도 의대를 통해 전문의가 되기까지 11년, 의전원을 통해서는 약 14년이 소요되는 긴 여정을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의사 10만명 시대, 90% 이상이 전문의 과정을 거치는 현재 추세를 감안할 때 이제 전문의가 되지 않고는 경쟁력을 갖추기 힘든 만큼 ‘나이가 많으니 일단 일반의가 되고 봐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고도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면 의대 지원 때부터 다음과 같은 사항을 철저하게 고려하자.
# ‘동문의 힘’ 역사 있는 학교 택하라
의과는 다른 전공에 비해 학교 간 점수 차가 크지 않다. 따라서 학교의 명성에 집착하는 ‘명분파’가 되기보다는 앞으로의 계획에 맞춘 ‘실리파’가 되는 편이 현명하다. 하지만 학교의 역사와 동문의 힘은 고려해야 할 사항 1순위다.
10여 년 전, 서울대 의대에 육박할 정도로 합격자 평균점수가 높았던 신설 의대가 있었다. 가천의과대학과 차의과학대학교(구 포천중문의대)다. 6년간 등록금 면제, 일부 인원의 교수직 보장 등 파격적 제안을 내건 이들 학교에 당연히 우수한 학생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입학생 중 적지 않은 학생이 역사가 길고 동문이 많은 학교가 갖는 장점이 부족하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1988년 중앙대 의대는 재일교포 재벌이 인수하면서 학생 지원이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커트라인이 급상승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큰 ‘소득’은 없었다는 것이 재학생들의 평이었다.
학교 선택 시 든든한 동문의 힘은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요소다. 의대 졸업 후 인턴, 레지던트 등의 수련과정을 거치고 전문의가 되면 취직을 하든 개업을 하든 선후배가 밀어주고 끌어주지 않으면 자리잡기 힘들다. 특히 알토란같이 좋은 취직자리는 동문끼리 물려주고 물려받는 관행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공개적으로 알려진 일반 병원 ‘채용공고’ 중 실속 있는 자리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 의사로서 ‘소프트랜딩’ 하려면 역사가 오래되고, 입학인원이 많고, 동문이 많을수록 유리하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 학생들 질문 맞춤 조언
의사를 어디에서 어떻게 하고 싶은가에 따라서도 대학 선택이 달라져야 한다. 다음은 학생들이 흔히 하는 질문들이다.
☞ 지방에서 일하고 싶다
지방에서 근무할 목적이라면 서울에 있는 대학보다 해당 지역의 유명 대학을 택하는 편이 훨씬 바람직하다. 특히 충북대 충남대 전북대 전남대 경북대 부산대 등 역사가 깊은 국립 의대가 좋다. 강원도에서는 연세대 원주의대도 유리하다. 강원대 의대가 비교적 늦게 설립됐고, 원주의대 부속병원인 원주기독병원이 지역 주민 사이에 잘 알려진 덕분이다. 서울의 명문 의대를 졸업하고 경력을 쌓은 뒤 고향에 가면 ‘금의환향’에 필적하는 대접을 받지 않을까 기대하는 순진한 학생이 적지 않다.
그러나 서울 유수의 의대 교수 정도의 경력을 쌓았으면 모를까, 서울 소재 명문대를 나왔다는 사실 자체는 그다지 큰 장점이 되지 못한다. 지방에서 자리잡으려면 지역 주민의 특성을 이해하고, 같은 지역 의사들과도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어야 하는데 서울에서 보낸 ‘공백기’ 탓에 이러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보수적인 대구 지역에서 의사를 하려면 반드시 그 지역 의대를 나오는 것이 유리하다고 상당수 의사가 경험에 비춰 전한다. 그만큼 학연, 지연이 다른 지역보다 끈끈하게 통한다는 말이다.
의대에 진학하는 학생 가운데 80% 이상은 개원가, 즉 대학병원이 아닌 일반 종합병원, 개인병원, 그리고 자신이 개업한 병원에서 일하게 된다. 지역별로 우세한 의대를 졸업하고 그 안에서 수련을 받는 경우 해당 지역에서의 정착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 가업을 물려받아야 한다
집안 어른의 병원을 물려받을 목적으로 의사가 되려는 학생도 적지 않다. 특히 가족이 운영하는 병원이 중대형급이라 앞으로 다른 과 의사도 채용해야 한다면 역시 동문이 많은 학교가 유리하다. 의사뿐 아니라 최고경영자 노릇도 해야 할 경우, 동문이 안팎으로 주는 실질적·정서적 도움이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의 홍익병원, 경기 남양주의 현대병원 등은 특정 학교 동문의 구성 비율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병원 소유주가 그 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전해진다.
☞ 반드시 교수가 되고 싶다
오랜 역사를 가진 의대에 진학하는 것이 좋다. 의대 교수의 임용은 다른 과에 비해 배타적이다. 어느 학교 출신이냐에 따라 갈 수 있는 자리가 정해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간혹 신설학교일수록 경쟁이 적어 교수 임용에 유리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는데, 이 학교에서 자리잡지 못하면 다른 곳에서는 기회를 얻기 힘들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 개원하고 싶다
캠퍼스가 서울에 있지 않아도 부속병원의 병상 수가 많아 여러 과 가운데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학교가 좋다. 특히 학교 병원이 전국에 퍼져 있다는 것은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뜻으로, 원하는 과를 전공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곳이 순천향의대다. 예과는 충남 온양, 본과 1·2학년은 충남 천안, 본과 3·4학년은 서울에서 공부하는 다소 독특한 학제를 지닌 이 학교는 실습기간에 서울에서는 물론 천안, 경북 구미에서까지 경험을 쌓을 수 있어 좀더 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다.
또 가톨릭대, 한림대, 인제대 역시 병원 수와 수련을 위한 병상 수가 많아 졸업생이 다른 학교에 비해 수월하게 원하는 과를 전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서울 영등포 김안과가 모태인 대전 소재 건양대 의대의 경우 안과 과목에 주력하므로 안과를 물려받아야 한다거나, 안과 과목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학생에게 추천할 만하다.
☞ 의대 갈 성적이 안 돼 4년 뒤 의전원을 준비하려 한다
의전원에 지원할 수 있는 대상이 ‘전공불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생명과학, 화학 관련 전공이 유리하다. 선수과목을 미리 이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화학, 생물 과목이 포함된 MEET라는 시험이 의전원 입학시험에 치러지기 때문이다.
권양 대표는 의학 사교육기관 ‘메디프리뷰’(www. medipreview.com)와 의대생 자녀를 둔 부모를 위한 네이버 상담카페(mediparent)를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