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는 호탕하게 웃어도 속은 곪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다.
고졸 출신의 회사원 A씨는 영업소에서 실적을 인정받아 최근 본사 차장으로 승진했다. A씨는 기뻤지만 한편으론 불안했다. 영업은 자신 있었지만, 자신보다 학력이 높은 부하직원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이다. 남에게 약점을 보이기 싫었던 그는 결국 가면을 쓰기로 했다. 부하직원 앞에서는 적극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으로 보이려고 허세를 부린 것. 그러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출근길에 갑자기 배가 아파 지하철역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일이 잦아졌다. 주변에 사정을 호소하니, 정신과 심리상담을 받아보라고 권했다. 몸이 아픈데 정신과를 찾는 게 내키진 않았지만,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진료실 문을 두드리자 뜻밖에 ‘우울증’이란 진단을 받았다.
“원래는 명랑했어요. 그런데 요즘엔 힘이 쭉 빠지고 명치가 꽉 막힌 듯 답답해요. 어깨와 등도 아프고요. 그래서 소화기 내과도 다니고 류머티즘 내과도 다니는데 차도가 없네요.”
마음 대신 몸이 아픈 우울증
실제로 A씨 같은 중간관리자들이 느끼는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았다고 해도 조만간 닥쳐올 또 다른 정리작업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윗사람들에게 핍박받고 아랫사람들에게 욕먹는 처량한 신세. 중간관리자에 대한 기대 수준이 날로 높아지고 있어 역할 과부하에 따른 스트레스도 크다. 특히 일의 양이 불규칙적으로 많거나 적은 경우, 일정이 예고 없이 변경되는 경우, 상사가 일의 방향을 바꾸는 경우엔 그 정도가 심해진다.
이들은 대부분 ‘마음 대신 몸이 아픈 우울증’을 앓는데, 이를 ‘가면 우울증’이라고 한다. 우울한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숨어 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겉으로는 호탕하게 웃어도 속은 곪아간다는 의미에서 ‘스마일 우울증’이라고도 불린다. 겉모습과는 딴판으로 매사 위축되고 의욕이 없어 자기 비하에 빠지곤 한다.
스마일 우울증의 정신적 증상은 첫째, 내가 뭘 느끼는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기쁘거나 슬픈 감정 자체를 잘 느끼지 못하거나 그런 감정에 무덤덤해지는 것. 둘째, 타인과 대화하거나 감정을 나누는 것을 꺼리게 돼 대인관계에 장애가 생기기도 한다. 셋째, 가까운 사람들과 만나면 쉽게 짜증을 내거나 예민하게 군다. 넷째, 이인화(異人化) 현상이 나타난다. 마치 껍데기로 살아가는 듯한, 즉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스마일 우울증을 앓으면 식욕 및 성욕 저하, 두통, 불면, 복통, 소화불량 같은 신체적 증상이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종류의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계속 늘어난다는 데 있다. 나날이 그 수가 증가하는 서비스업 종사자들도 예외일 수 없다. 대부분 화가 나도 그 자리에서 마음껏 표현하지 못한 채 뒤돌아서야 하는 직종의 사람들이 스마일 우울증을 많이 앓는다.
만만한 사람에 화풀이 전염병
호텔 웨이트리스 김모 씨도 스마일 우울증 환자다. 다혈질인 그에게 호텔 근무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손님이 별것 아닌 일로 트집을 잡을 때는 몇 번씩 울컥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력이 쌓일수록 즐겁지 않은 상황에서도 가식적으로 웃게 됐다. 남자친구와의 결혼이 무산됐을 때도 언제 그랬냐는 듯 방긋거리며 서빙을 마쳤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자신이 진정으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모르게 되는 것 같아 불안했다. 소화가 안 되고 가슴도 아파와 고민이 깊어지자 결국 필자에게 상담을 청해왔다.
서비스업 종사자뿐 아니라 일반 회사원들도 스마일 우울증에 빠져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또 하나의 능력이 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인지 자신의 감정을 숨기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서다(물론 여과되지 않은 감정 그대로 교류하며 살기엔 사회생활 자체가 고단하긴 하다). 직장생활 5년차에 접어든 한 여성은 ‘착하다’는 주변의 평가 때문에 이런 류의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고 토로했다.
스마일 우울증은 ‘전염병’이라서 더 위험하다. 겉으론 웃어도 속으로 우는 사람은 대부분 하급자나 가족 등 만만한 상대에게 화풀이를 하게 마련이다. 그러면 그의 짜증을 받아낸 사람이 또다시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내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다음의 우울증 대처방법에 따라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보자.
1 감정적 격리를 시도하자. ‘일은 일이고 나는 나’라고 생각하자.
2 친구, 가족과 정을 나누자. 감정 노동을 하는 사람일수록 대인관계에 대한 부담감을 많이 갖는다. 그러므로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될 사이인 친구나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내면서 새로운 감정의 샘물을 길어올리자.
3 격한 운동을 하자. 1시간 정도 땀을 흘릴 수 있을 만한 운동을 해보자. 시간이 부족하다면 틈틈이 스트레칭하면서 운동 자체에 몰두하며 다른 생각을 접어두자.
4 자기 암시를 하자. 예를 들어, 스쿼시를 한다면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준 사람의 얼굴을 공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쳐보자. ‘이 운동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다 날린다. 그럼으로써 내 감정을 원점으로 돌릴 수 있다. 0에서 새로 시작할 수 있다’고 암시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5 생각을 바꾸자.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왜 이렇게 운이 없을까.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왜 다 이 모양일까’라고 생각하다 보면 스트레스는 오히려 심해질 따름이다. 어떤 상황에 처해도 ‘저 사람에게 무슨 사정이 있겠지, 어차피 사람은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사는 건데…’라며 대범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