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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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을 유혹하는 파리의 속사정

‘파리는 사랑한다, 행복할 자유를!’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09-12-03 17: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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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인을 유혹하는 파리의 속사정

    이보경 지음/ 창해출판사 펴냄/ 361쪽/ 1만3000원

    ‘로드스쿨러(Road-Schooler)’는 학교를 벗어나 다양한 학습공간을 넘나들며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고 교류하고 연대하는 청소년을 뜻하는 말로, 우리 청소년들이 만든 조어다. 학교를 뛰쳐나오는 아이가 해가 갈수록 급증하는 요즘, 10여 명의 로드스쿨러가 함께 쓴 같은 이름의 책이 나왔다. 이 책은 ‘사람도 지식도 자본도 경계를 넘나드는 시대’에 여행은 이동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게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필자는 인연이 닿아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는데, 이제 스무 살 전후인 저자들의 낙관적 자세에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라는 ‘안정된’ 울타리를 벗어났지만 함께 길을 가면서 터득한 삶의 지혜로 말미암아 ‘그들은 참으로 넉넉한 마음을 갖고 있구나’ 하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다.

    ‘로드스쿨러’에 이어 곧바로 ‘대한민국 보통 아줌마 이보경 기자가 들여다본 프랑스의 속살’이라는 부제가 붙은 ‘파리는 사랑한다, 행복할 자유를!’을 읽었다. 이 책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2009 우수저작 및 출판지원 사업’ 당선작이다. 필자는 이 사업의 심사를 맡았다. 하지만 분야가 달라 읽어보지 못한 채 최종심에서 이 책을 알게 됐다. 이 책을 심사한 분은 “강고한 집단주의 전통이 내려오는 프랑스 사회에서 지위 향상을 위한 여성들의 집단적 실천 활동을 일상적, 세계적 시각에서 알기 쉽게 기술한 사회문화비평서 성격의 교양서”라고 설명했다. 응모 때 책 제목은 ‘프랑스 여성은 도전으로 연대한다’로 ‘도전’이라는 단어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나는 선정 이유를 들으며 3년째 파리에서 유학 중인 큰딸을 떠올렸다.

    이 책은 저자가 1997년에 6개월, 2007년 9월부터 만 1년간 한 파리 체험, 그리고 그 전후 관찰을 토대로 프랑스가 안고 있는 문제를 저자 특유의 시각으로 파고든 책이다. 일주일 정도 여행하고 뚝딱 쏟아내는 요즘 책과 달리, 로드스쿨러들이 말하는 ‘경계를 넘나드는’ 시대에, 선행학습을 한 사람이 체험한 프랑스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저자 자신과 한국이라는 나라의 현재를 투영하면서 적절한 균형 잡기를 시도한다. 저자는 또 다른 의미의 ‘로드스쿨러’인 셈이다.

    저자의 시각은 자신의 일과 겹칠 때 확실하게 드러난다. 언론, 교육, 여성, 육아 문제 등에서 특히 그렇다. 풍자와 탐사보도라는 언론의 무기를 제대로 활용해 광고 없이도 승승장구하는 ‘묶인 오리’라는 매체, 정치권력과 유착된 프랑스의 사영(私營) 방송은 한국의 언론법 파동과 자연스럽게 겹친다. 경쟁교육의 꼭대기에 자리한 엘리트 교육기관인 ‘그랑제콜’에 기득권층 자녀의 입학률이 점점 높아지는 모습은 전 지역에서 전 계층이 사교육 걱정으로 허둥지둥하는 우리 모습과 비교된다. 200년 동안 성행한 수유 거부와 유모 위탁의 전통이 오늘날 육아휴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살인적인 양육비와 사교육비 때문에 아이 낳기를 거부하는 우리 현실과 중첩된다.

    저자가 이슈를 포착하는 솜씨는 언론인 출신답게 날카롭다. 파리시가 40년째 고수하는 건축물의 37m 고도 제한, 여자가 바지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시대착오적 현행법인 ‘판탈롱법’을 폐지하지 않으면서 무시하면 그만이라는 태도, 손자 돌보기를 거부하고 멋쟁이 차림으로 돌아다니지만 결국 일사병으로 홀로 죽는 노인들 이야기를 통해 프랑스 국민의 속성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톨레랑스’로 대표되는 다양성을 무기로 한다. 저자는 이것을 냉정을 상징하는 아폴론과 열정을 상징하는 디오니소스, 두 신격의 공존이 대체로 삶 전반을 규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근원을 향한 그리움, 융합과 감성, 음악과 도취를 뜻하는 주신(酒神) 디오니소스는 뜨거움과 과도함을 수반한다. 반면 절도와 균형, 명징과 조화, 미술과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태양의 신 아폴론은 적절함이나 차가움을 수반한다.

    하루에 1억원도 부족한 초호화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무일푼으로 사는 사람도 있다. 양극단 사이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는데, 그 수많은 무지개 빛깔은 딱히 우호적이지도 적대적이지도 않게 공존한다. 공적 생활의 엄격함과 사적 영역의 관대함, 찬바람이 휭 부는 모자, 가족 관계와 높은 시민의식과 과잉되지 않는 인구 등도 두 신격의 공존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다양한 지식을 동원하면서도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 책을 읽다 보면, 늘 양극단으로 나뉘어 싸우며 소통할 줄 모르는 우리를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에콜로지와 부(富)의 행복한 결합 같은 대안 제시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반추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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