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찌푸린 하늘, 기름 범벅의 검은 바다, 검은 모래, 검은 자갈, 검은 갈대….
세상은 온통 검었다. 12월15일 오전 10시30분 충남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 갯벌. 칼바람이 몰아치는 이 검은 바닷가에 가슴이 뜨거운 2700여 자원봉사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수능시험을 치른 고3 학생에서부터 직장인, 자영업자, 푸른 눈의 외국인까지 저마다 망가진 자연을 되살리는 데 보탬이 되고픈 마음 하나로 달려왔다.
이들은 근처에 마련된 임시 행사본부에서 환경운동연합 측이 준비한 방제복과 장갑, 필터마스크를 착용하고 눈만 내놓은 ‘완전무장’ 차림으로 바닷가로 향했다. 갯벌을 가득 메운 자원봉사자들의 행렬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썰물에 드러난 조약돌 해변에서 폐현수막을 잘게 찢은 헝겊으로 기름을 닦아내는 것이 이들이 할 일이었다.
“닦고 또 닦을 거예요. 일본에선 30만명이 몰려가 2개월 만에 푸른 바다를 되찾았대요. 일본을 이겨야 해요.(웃음)”
대입 수시전형으로 숙명여대에 합격한 최금진(19·안양 백영고) 양은 역한 기름냄새가 코를 찌르는데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는 뉴스에서 1997년 일본 미쿠니 마을 앞바다 기름 유출사고 당시 30만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해안 되살리기에 나섰다는 것을 전해듣고 자원봉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한국청년연합회(KYC) 천안지부 소속 이병식(51) 씨는 이날 송년회도 취소하고 이곳을 찾았다. 평소 장애아동 돕기 등 자원봉사를 많이 한다는 그는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익숙한 솜씨로 기름을 훔쳐내고 마대에 담아서 옮겼다.
“맨손으로 기름을 제거하는 작업은 언 발에 오줌누기밖에 안 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지요. 가만 놔두면 어느 세월에 기름이 없어지겠어요. 썰물 때 이곳이 물에 잠기면 또 기름이 잔뜩 묻을 텐데 정말 걱정입니다.”
6개월 전 한국에 와 여수의 한 학원에서 영어강사로 일하고 있는 미국인 레베카 레셔 씨도 자원봉사 행렬에 동참했다.
“자원봉사 활동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저는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아버지가 어부예요. 이전에 이런 끔찍한 재난을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한 달 전 샌프란시스코 만에 기름 유출사고가 있었지요. 그 소식을 듣고도 고향으로 돌아가서 돕지 못했어요. 그러던 차에 이번 사고 소식을 접하고 도울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인이든 미국인이든 같은 행성에 살고 있으니까 (이런 환경 재난이 일어나면 서로)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3부터 외국인까지 … 23만여 명 자원봉사활동
12시30분. 작업이 손에 익을 만하자 점심시간이 됐다. 배식대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섰다. 기름 묻은 손으로 식판을 들고 저마다 맨바닥에 주저앉아 허기를 달랬다. 젊은 사람들이 많아선지 여기저기서 웃음보가 터졌다. 식사를 끝낸 이들은 자원봉사 단체가 마련한 따뜻한 차를 마시기 위해 또 길게 줄을 섰다. 가장 긴 줄은 역시 임시 화장실 앞. 30m 길이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볼일을 보기 위해 줄서 있던 직장인 오민석(25) 씨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불편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원봉사에 나서서 감동받았습니다. 몇 시간 봉사하고 빈속을 채우고 나니 뿌듯하기도 하고요. 상황이 이렇게 심한 줄은 몰랐어요. 사후조치가 조금만 더 정확하고 빨랐더라면 이렇게까지 피해가 확산되지는 않았을 텐데, 참 아쉽습니다.”
1시20분. 오후 봉사가 시작됐다. 어느새 일이 익숙해졌는지 봉사자들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봉사자들이 닦아내는 면적은 점점 넓어져갔다. 한쪽에는 걷어낸 마대 수백 개가 쌓여갔다.
봉사자들 사이에서 서해안을 삶의 휴식공간으로 여겼던 이들의 한탄도 들려왔다. 평소 이곳 일대를 자주 찾는다는 김유화(21) 씨는 “그렇게 아름다웠던 곳이 죽은 바다가 되다니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며 허탈해했다.
몇 년 동안 신두리 일대에서 현장탐사를 해온 강상규(25·전북대 생물교육과) 씨도 “신두리 일대는 천연기념물(사구)로 지정됐을 정도로 아름답고 생태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사구와 멀지 않은 이곳 해변이 이렇게 바뀌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런 비전문적인 자원봉사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앞으로 몇십 년이 지나야 회복될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12월15일 하루 동안 태안 지역으로 몰려든 자원봉사자는 4만7901명. 집계되지 않은 이들까지 합하면 5만명 선은 될 것이라고 태안군 재난종합상황실은 밝혔다. 7일 사고 발생 이후 18일까지 구슬땀을 흘린 민간 자원봉사자는 모두 23만3000여 명. 9일 7337명에 그쳤던 것이 매일 큰 폭으로 늘고 있는 것.
많은 사람들이 이를 기적이라 부르고 있다. 어떤 이는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이 연상된다고 했다. 기업체도 물품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날 신두리 봉사현장에도 SM봉사단체, 유한킴벌리, CJ, 연세우유, 하이닉스 등이 차량과 식량, 필터마스크 등을 제공했다. 전국의 대학생 2000여 명도 기말시험 기간을 조정하고 태안으로 달려갔다.
환경운동연합 정책실 양이원영 간사는 “자원봉사 신청자 가운데 상당수가 젊은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이기적이고 보수적이라고 하는데, 그들의 놀라운 힘을 봤다. 인터넷 덕분인지 반응 속도도 엄청나게 빨랐다. 자원봉사자 모집공고가 나간 지 4일 만에 예상 인원 2000명이 다 찼다”며 놀라워했다. 환경연합의 2차 자원봉사활동(12월22일) 모집에는 하루 만에 1000여 명이 신청했다.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 활동은 우리 사회의 희망으로 비쳐진다. 김동배 연세대 교수(사회복지학)는 “21세기 시민사회의 특징은 기부활동과 자원봉사다. 개인화돼가는 우리 사회에서 이 두 축을 통해 공동체 정신이 이어지고 있다. 태안의 자원봉사 행렬로 우리 사회가 여전히 건강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생태계 복원까지 최소 20년 … 2차오염 예방 급선무
이처럼 자원봉사활동이 방제작업에 큰 힘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지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유조선 허베이 스피릿호와 삼성중공업 예인선의 충돌로 기름이 유출된 지 일주일 동안 신두리 갯벌은 거의 복구작업이 진행되지 않았다. 대규모 방제 인력이 동원된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갯벌을 청소한 뒤에도 썰물이 밀려들면 다시 기름으로 범벅 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방제작업을 해야 한다.
12월18일 환경부는 이번 사고로 훼손된 주변 생태계가 복원되는 데 20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사고 해역은 플랑크톤에서 새 등에 이르기까지 생태계가 전반적으로 파괴돼 5년이 지나야 조개류도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했다. 그때쯤 돼야 사고 이전과 같은 청정한 해산물을 먹을 수 있다는 얘기다.
18일 해양경찰청 방제대책본부와 태안군 상황실 관계자에 따르면 “유출 기름(1만2547㎘)의 30% 이상을 수거했고, 해안지역 타르 덩어리가 줄고 있다”며 “앞으로 2~3개월은 복구작업을 계속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환경연합 황상규 정책실 처장은 아직도 오염이 진행되고 있어 안심하기에는 이르다고 지적했다.
“유출된 기름의 상당량이 바다에 가라앉아 2차오염이 예상됩니다. 유화제 때문에 가라앉은 기름이 조류를 타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섬 지역 오염도 심각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1995년 시프린스호 기름 유출사건 이후 여수 인근에는 지금도 기름 덩어리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합니다.”
장재연 아주대 교수(환경연합 정책위원장)는 “국민들의 뜨거운 자원봉사 열기가 반갑지만, 봉사 매뉴얼이 없다는 게 문제다. 시프린스호 기름 유출사건을 겪었는데도 나아진 게 없다. 1989년 엑손모빌의 유조선 발데스호가 알래스카에서 좌초된 이후 선진 각국은 단일선체 유조선의 항해를 제한하는 등 방제 규정을 보완했지만, 한국은 아직도 국내 유조선의 59%가 단일선체”라고 지적했다.
가야 할 길은 멀지만 자원봉사자들 다수는 절망보다 희망을 이야기했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 근무하는 정인영(24) 씨도 “사람 손으로 100% 깨끗하게 복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더 닦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기회가 되면 또 오고 싶다”고 말했다.
오후 4시 환경연합 관계자가 방송으로 작업 종료를 알렸지만 많은 이들이 일을 더 하려는 마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했다. 밀물 때임을 알리며 재차 작업 중단을 요구하는 방송에 마지못해 일어서던 이병식 씨는 “작업을 끝내고 나오면서 돌아보니 아침에 본 기름 광택이 많이 없어져 뿌듯했다”며 활짝 웃었다. 마치 조약돌에 묻은 검은 기름을 닦고 또 닦으면서 자신의 마음도 깨끗이 닦은 것처럼. 장화와 고무장갑을 반납하고 씻지도 못한 채 버스에 오른 자원봉사자들이 떠나간 뒤 신두리 갯벌에는 따스한 겨울 햇살이 구름을 뚫고 환하게 쏟아졌다.
(훈훈한 이야기 주인공을 찾습니다. 제보를 바랍니다 : 편집자)
세상은 온통 검었다. 12월15일 오전 10시30분 충남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 갯벌. 칼바람이 몰아치는 이 검은 바닷가에 가슴이 뜨거운 2700여 자원봉사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수능시험을 치른 고3 학생에서부터 직장인, 자영업자, 푸른 눈의 외국인까지 저마다 망가진 자연을 되살리는 데 보탬이 되고픈 마음 하나로 달려왔다.
이들은 근처에 마련된 임시 행사본부에서 환경운동연합 측이 준비한 방제복과 장갑, 필터마스크를 착용하고 눈만 내놓은 ‘완전무장’ 차림으로 바닷가로 향했다. 갯벌을 가득 메운 자원봉사자들의 행렬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썰물에 드러난 조약돌 해변에서 폐현수막을 잘게 찢은 헝겊으로 기름을 닦아내는 것이 이들이 할 일이었다.
“닦고 또 닦을 거예요. 일본에선 30만명이 몰려가 2개월 만에 푸른 바다를 되찾았대요. 일본을 이겨야 해요.(웃음)”
대입 수시전형으로 숙명여대에 합격한 최금진(19·안양 백영고) 양은 역한 기름냄새가 코를 찌르는데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는 뉴스에서 1997년 일본 미쿠니 마을 앞바다 기름 유출사고 당시 30만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해안 되살리기에 나섰다는 것을 전해듣고 자원봉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한국청년연합회(KYC) 천안지부 소속 이병식(51) 씨는 이날 송년회도 취소하고 이곳을 찾았다. 평소 장애아동 돕기 등 자원봉사를 많이 한다는 그는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익숙한 솜씨로 기름을 훔쳐내고 마대에 담아서 옮겼다.
“맨손으로 기름을 제거하는 작업은 언 발에 오줌누기밖에 안 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지요. 가만 놔두면 어느 세월에 기름이 없어지겠어요. 썰물 때 이곳이 물에 잠기면 또 기름이 잔뜩 묻을 텐데 정말 걱정입니다.”
6개월 전 한국에 와 여수의 한 학원에서 영어강사로 일하고 있는 미국인 레베카 레셔 씨도 자원봉사 행렬에 동참했다.
“자원봉사 활동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저는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아버지가 어부예요. 이전에 이런 끔찍한 재난을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한 달 전 샌프란시스코 만에 기름 유출사고가 있었지요. 그 소식을 듣고도 고향으로 돌아가서 돕지 못했어요. 그러던 차에 이번 사고 소식을 접하고 도울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인이든 미국인이든 같은 행성에 살고 있으니까 (이런 환경 재난이 일어나면 서로)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3부터 외국인까지 … 23만여 명 자원봉사활동
12시30분. 작업이 손에 익을 만하자 점심시간이 됐다. 배식대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섰다. 기름 묻은 손으로 식판을 들고 저마다 맨바닥에 주저앉아 허기를 달랬다. 젊은 사람들이 많아선지 여기저기서 웃음보가 터졌다. 식사를 끝낸 이들은 자원봉사 단체가 마련한 따뜻한 차를 마시기 위해 또 길게 줄을 섰다. 가장 긴 줄은 역시 임시 화장실 앞. 30m 길이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볼일을 보기 위해 줄서 있던 직장인 오민석(25) 씨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방파제에 묻은 기름을 닦아내는 자원봉사자들, 기름을 수거한 마대, 기름으로 범벅된 굴껍데기(왼쪽부터 시계 방향).
1시20분. 오후 봉사가 시작됐다. 어느새 일이 익숙해졌는지 봉사자들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봉사자들이 닦아내는 면적은 점점 넓어져갔다. 한쪽에는 걷어낸 마대 수백 개가 쌓여갔다.
봉사자들 사이에서 서해안을 삶의 휴식공간으로 여겼던 이들의 한탄도 들려왔다. 평소 이곳 일대를 자주 찾는다는 김유화(21) 씨는 “그렇게 아름다웠던 곳이 죽은 바다가 되다니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며 허탈해했다.
몇 년 동안 신두리 일대에서 현장탐사를 해온 강상규(25·전북대 생물교육과) 씨도 “신두리 일대는 천연기념물(사구)로 지정됐을 정도로 아름답고 생태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사구와 멀지 않은 이곳 해변이 이렇게 바뀌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런 비전문적인 자원봉사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앞으로 몇십 년이 지나야 회복될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12월15일 하루 동안 태안 지역으로 몰려든 자원봉사자는 4만7901명. 집계되지 않은 이들까지 합하면 5만명 선은 될 것이라고 태안군 재난종합상황실은 밝혔다. 7일 사고 발생 이후 18일까지 구슬땀을 흘린 민간 자원봉사자는 모두 23만3000여 명. 9일 7337명에 그쳤던 것이 매일 큰 폭으로 늘고 있는 것.
많은 사람들이 이를 기적이라 부르고 있다. 어떤 이는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이 연상된다고 했다. 기업체도 물품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날 신두리 봉사현장에도 SM봉사단체, 유한킴벌리, CJ, 연세우유, 하이닉스 등이 차량과 식량, 필터마스크 등을 제공했다. 전국의 대학생 2000여 명도 기말시험 기간을 조정하고 태안으로 달려갔다.
환경운동연합 정책실 양이원영 간사는 “자원봉사 신청자 가운데 상당수가 젊은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이기적이고 보수적이라고 하는데, 그들의 놀라운 힘을 봤다. 인터넷 덕분인지 반응 속도도 엄청나게 빨랐다. 자원봉사자 모집공고가 나간 지 4일 만에 예상 인원 2000명이 다 찼다”며 놀라워했다. 환경연합의 2차 자원봉사활동(12월22일) 모집에는 하루 만에 1000여 명이 신청했다.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 활동은 우리 사회의 희망으로 비쳐진다. 김동배 연세대 교수(사회복지학)는 “21세기 시민사회의 특징은 기부활동과 자원봉사다. 개인화돼가는 우리 사회에서 이 두 축을 통해 공동체 정신이 이어지고 있다. 태안의 자원봉사 행렬로 우리 사회가 여전히 건강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생태계 복원까지 최소 20년 … 2차오염 예방 급선무
이처럼 자원봉사활동이 방제작업에 큰 힘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지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유조선 허베이 스피릿호와 삼성중공업 예인선의 충돌로 기름이 유출된 지 일주일 동안 신두리 갯벌은 거의 복구작업이 진행되지 않았다. 대규모 방제 인력이 동원된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갯벌을 청소한 뒤에도 썰물이 밀려들면 다시 기름으로 범벅 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방제작업을 해야 한다.
12월18일 환경부는 이번 사고로 훼손된 주변 생태계가 복원되는 데 20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사고 해역은 플랑크톤에서 새 등에 이르기까지 생태계가 전반적으로 파괴돼 5년이 지나야 조개류도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했다. 그때쯤 돼야 사고 이전과 같은 청정한 해산물을 먹을 수 있다는 얘기다.
18일 해양경찰청 방제대책본부와 태안군 상황실 관계자에 따르면 “유출 기름(1만2547㎘)의 30% 이상을 수거했고, 해안지역 타르 덩어리가 줄고 있다”며 “앞으로 2~3개월은 복구작업을 계속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환경연합 황상규 정책실 처장은 아직도 오염이 진행되고 있어 안심하기에는 이르다고 지적했다.
“유출된 기름의 상당량이 바다에 가라앉아 2차오염이 예상됩니다. 유화제 때문에 가라앉은 기름이 조류를 타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섬 지역 오염도 심각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1995년 시프린스호 기름 유출사건 이후 여수 인근에는 지금도 기름 덩어리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합니다.”
장재연 아주대 교수(환경연합 정책위원장)는 “국민들의 뜨거운 자원봉사 열기가 반갑지만, 봉사 매뉴얼이 없다는 게 문제다. 시프린스호 기름 유출사건을 겪었는데도 나아진 게 없다. 1989년 엑손모빌의 유조선 발데스호가 알래스카에서 좌초된 이후 선진 각국은 단일선체 유조선의 항해를 제한하는 등 방제 규정을 보완했지만, 한국은 아직도 국내 유조선의 59%가 단일선체”라고 지적했다.
가야 할 길은 멀지만 자원봉사자들 다수는 절망보다 희망을 이야기했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 근무하는 정인영(24) 씨도 “사람 손으로 100% 깨끗하게 복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더 닦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기회가 되면 또 오고 싶다”고 말했다.
오후 4시 환경연합 관계자가 방송으로 작업 종료를 알렸지만 많은 이들이 일을 더 하려는 마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했다. 밀물 때임을 알리며 재차 작업 중단을 요구하는 방송에 마지못해 일어서던 이병식 씨는 “작업을 끝내고 나오면서 돌아보니 아침에 본 기름 광택이 많이 없어져 뿌듯했다”며 활짝 웃었다. 마치 조약돌에 묻은 검은 기름을 닦고 또 닦으면서 자신의 마음도 깨끗이 닦은 것처럼. 장화와 고무장갑을 반납하고 씻지도 못한 채 버스에 오른 자원봉사자들이 떠나간 뒤 신두리 갯벌에는 따스한 겨울 햇살이 구름을 뚫고 환하게 쏟아졌다.
(훈훈한 이야기 주인공을 찾습니다. 제보를 바랍니다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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