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 콜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가운데 3월 13일 오전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서울지하철 1호선 구로역에서 출근길에 오르고 있다. [뉴스1]
마스크에 일회용 라텍스 장갑까지 착용
맞벌이 주부 송희영(37·서울 서초구) 씨도 구로 콜센터 사태가 터진 직후 인터넷쇼핑몰에서 니트릴 장갑을 주문했다. 서울지하철 3호선을 타고 출퇴근하는 그는 “대중교통 감염과 관련해 정부는 괜찮다 하고, TV 방송에 출연한 의사들은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헷갈려 가능한 한 안전장치를 다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송씨는 “며칠 후 같은 제품을 추가 주문하려 했더니 품절됐더라”며 “니트릴 장갑도 마스크처럼 구매 대란이 벌어질까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워싱턴포스트 “한국의 대응, 민주주의 강점 보여줬다”’(3월 12일), ‘국내 언론과 사뭇 다른 독일이 보는 한국의 코로나19 대응’(3월 9일), ‘해외가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을 주목한 3가지 이유’(3월 3일)…. 청와대 홈페이지 ‘코로나19 뉴스룸’에 올라온 게시물 제목들이다. 청와대가 코로나19 방역대책에 대해 자화자찬하는 와중에도 지역사회 집단감염이 산발적으로 일어나면서 국민의 공포감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구로 콜센터와 성남 은혜의강 교회 관련 확진자는 3월 18일 기준 각각 134명과 55명이다. 특히 구로 콜센터 관련 확진자 중 46명(34%)이 이곳 직원의 가족이나 지인인 것으로 드러나 2차, 3차 감염 확산이 우려된다. 이에 국민 스스로가 ‘셀프 방역’에 나서는 한편으로 정부의 느슨한 방역대책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살균세제회사 유한클로락스(유한락스)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코로나 때문에 구입한 면마스크를 락스로 소독해도 되느냐’ ‘엘리베이터 버튼이나 문손잡이를 살균세정티슈로 닦는 게 효과가 있느냐’ 등 코로나19 관련 질의가 수십 개 올라와 있다. 니트릴 장갑 판매량도 크게 증가했다. G마켓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2월 14일~3월 15일) 니트릴 장갑 판매량은 전월(1월 14일~2월 13일) 대비 178%나 신장했다. 수요가 폭증하자 코스트코 서울 양재점은 2월 말부터 니트릴 장갑 판매를 1인 1개로 제한하고 있다.
일회용 니트릴 장갑을 낀 채로 지하철을 이용하는 한 시민(왼쪽)과 일회용 니트릴 장갑 품절을 알리는 한 인터넷쇼핑몰. [사진 제공·곽우현 씨, 쿠팡 앱 화면 캡처]
과도한 불안감을 노린 상술도 그치지 않는다. 이산화염소를 목걸이 형태로 만들어 ‘코로나 예방용 목걸이’라며 판매한다든지, 수돗물에 전기 자극을 가해 살균수(치아염소산수)를 만들어주는 전해수기가 코로나19 예방 효과가 있는 양 홍보하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이산화염소는 흡입독성이 있어 인체에 직접 접촉하는 형태로는 사용해선 안 된다. 또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전해수기가 만드는 살균수는 최대 200ppm으로, 코로나바이러스 박멸에 효과가 없다. 질병관리본부가 3월 6일 배포한 ‘집단시설·다중이용시설 소독 안내’는 살균수 농도를 1000ppm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불량 마스크 판매자로부터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다. 김모(42·서울 서초구) 씨는 “인터넷을 통해 어렵사리 연락된 판매자를 직접 만나 마스크를 구매했다. 그런데 철사가 튀어나오거나 끈이 없는 불량 마스크인 것을 알고는 몹시 허탈했다”고 했다.
“종교집회 금지하고, 해외 입국자 자가격리시켜 달라”
3월 16일 50여 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경기 성남 은혜의강 교회를 방역요원이 방역하고 있다. [뉴스1]
유치원생 자녀를 돌보며 재택근무를 한 지 3주째인 윤모(36·서울 동작구) 씨는 “정부가 유럽에서 국내로 들어오는 입국자에 대해 2주간 자가격리를 강제하지 않아 불안하다”며 “해외 입국자가 정상적으로 사회 활동을 하면서 지역사회에 코로나19를 전파한다면 몇 주간 자발적으로 자가격리에 준하는 생활을 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해외가 극찬하는 것은 한국의 진단 능력과 의료진의 헌신이지 정부의 방역대책은 아니라는 것을 직시했으면 한다”고도 덧붙였다. 실제 해외여행을 다녀온 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사례가 속속 보고되고 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귀국 사흘 후 코로나19 감염 사실이 확인된 30대 남성, 남편과 함께 유럽여행을 다녀온 뒤 확진 판정을 받은 40대 여성,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딸을 만났다 확진 판정을 받은 50대 여성이 그러한 경우다.
하지만 정부는 종교집회 금지나 해외 입국자에 대한 자가격리 의무화 방안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3월 17일 정례브리핑에서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제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차관)은 종교집회를 금지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예방법)에 근거해 종교집회 금지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려할 사항이 많다”고 설명했다. 해외 입국자에 대해서도 △증상 보고 및 발열 체크 △국내 연락처 제출 △입국 후 2주간 자가 증상 보고 등을 포함한 ‘특별입국절차’만 적용된다. 중대본은 3월 19일부터 특별입국절차 대상을 중국, 유럽발(發) 입국자에서 전 세계 모든 입국자로 확대하기로 했다.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은 유럽 각 국가가 국경을 닫은 데 이어 유럽연합(EU) 차원에서도 외국인의 EU 입국을 금지하기로 하고, 독일이 모든 종교단체 활동을 제한하는 등 강경한 조처에 나선 것과 대조된다. 휴교 중인 초등학생 자녀 둘을 조부모에게 맡긴 채 출근하고 있는 직장인 고모(40·서울 성동구) 씨는 “코로나19 대응에 소극적이던 미국도 ‘10명 이상 모임 금지’ 등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하지만 정부가 권고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는 ‘사람 많은 곳 방문 자제’ 정도로 애매모호하다. 그러니 사람들이 PC방도 가고, 회식도 하고, 주말 예배도 보는 것 아니냐”며 “차라리 미국이나 유럽 수준으로 강력한 이동제한령을 실시해 코로나19 사태를 하루빨리 잠재우고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발적’ 사회적 거리 두기 한계 봉착
{3월 13일 인천국제공항에서 한 승객이 발열검사를 받고 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