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 고효준. [동아DB]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프로야구 역시 2020 시즌 일정이 꼬인 상황. 여기저기서 ‘야구 마렵다’는 소리가 들립니다. 팬은 물론, 프로야구 관계자들 역시 하루라도 빨리 2020 프로야구가 개막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효준은 생각이 다를지도 모르겠다고 한 건 계약이 늦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고효준은 협상을 시작하고 넉 달이 지난 3월 10일이 돼서야 원 소속팀 롯데와 1년간 총액 1억200만 원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고효준은 계약 후 “캐치볼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꾸준히 하면서 몸을 잘 만들어왔다”고 밝혔지만 아무래도 팀 동료들과 함께 훈련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시즌 개막 연기로 추가 연습 시간을 확보했다는 건 고효준에게 실보다 득이 많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공교롭게도 고효준이 계약한 날 프로야구 개막 연기 소식이 들렸습니다.
헛스윙 유도 1위 투수는?
지난해 고효준은 FA 미아가 돼 프로야구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에는 아까운 선수였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공식 통계업체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고효준은 지난해 상대 타자로부터 헛스윙을 이끌어낸 비율, 좀 더 정확하게는 스윙 대 헛스윙 비율(29.5%)이 1000구 이상 던진 투수 가운데 가장 높은 선수였습니다. 상대 타자가 고효준이 던진 공을 치려고 방망이를 휘둘렀을 때 10번 중 3번은 헛스윙으로 끝났다는 뜻입니다.당연히 삼진도 많습니다. 고효준은 지난해 9이닝당 탈삼진(K÷9) 10.4개를 기록했습니다. 한 이닝을 던질 때마다 삼진을 평균 1.2개 뽑아낸 셈입니다. 지난해 40이닝 이상 던진 투수 가운데 고효준보다 이 기록이 높은 투수는 없습니다. 고효준은 62와 3분의 1이닝을 던졌습니다.
게다가 올해 롯데는 상무에서 돌아온 김유영(26), 백전노장 장원삼(37) 등 왼손 자원을 보강했기 때문에 지난해처럼 고효준에게 부담이 집중될 가능성도 높지 않습니다. 지난해 구원 등판해 왼손 타자를 제일 많이(174명) 상대한 왼손 투수가 바로 고효준이었습니다. 결과도 나쁘지 않습니다. 이 왼손 타자 174명은 고효준을 상대로 타율 0.242를 기록하는 데 그쳤습니다.
그러니까 미국 메이저리그와 달리 여전히 왼손 원포인트 투수가 가치를 지니는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고효준이 여전히 쓸모 있는 자원인 셈입니다. 메이저리그는 이번 시즌부터 투수가 마운드에 한 번 오르면 최소 세 타자를 상대하고 내려와야 합니다.
고효준 역시 FA 계약을 마친 뒤 한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솔직히 말하면 내 실력이 아까워서라도 그만둘 수 없었다”며 “그저 실력으로 보여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고효준은 못 칠 공을 던진다?
키움 히어로즈 김상수. [동아DB]
특히 볼넷이 문제. 고효준은 9이닝당 볼넷(BB÷9) 통산 기록이 6.1개입니다. 프로야구에서 500이닝 이상 던진 선수 가운데 이 기록이 제일 높은 선수가 바로 고효준입니다. 이 부문 2위 강윤구(30·NC 다이노스)가 통산 기록이 5.4개니까 차이도 적잖습니다.
이렇게 볼넷이 많다는 건 제구력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겠죠. SK 와이번스 시절 배터리로 호흡을 맞췄던 박경완(48·현 SK 수석코치)은 고효준에 대해 “내가 평생 겪은 투수 가운데 제구가 안 되는 걸로 세 손가락에 든다”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투수가 어떻게 헛스윙을 제일 많이 유도할 수 있는 걸까요.
헛스윙률이 사실은 스윙 대 헛스윙 비율, 그러니까 ‘헛스윙÷스윙’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이 비율이 높으려면 초등학생 때 배운 것처럼 분자인 헛스윙이 많거나, 분모인 스윙이 적어야 합니다. 고효준은 분모가 적은 경우입니다.
역시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고효준이 스트라이크 존에 던졌을 때 상대 타자가 헛스윙하거나, 파울을 치거나, 페어 타구를 날린 비율은 27.1%로 구원 투수 가운데 가장 낮습니다. 스트라이크 존 바깥에 공을 던졌을 때도 14.5%로 역시 최지광(22·삼성 라이온즈)과 함께 최저 공동 1위 기록을 남겼습니다.
요컨대 고효준과 마주한 상대 타자는 좀처럼 방망이를 휘두를 생각을 하지 않지만 막상 휘둘렀을 때는 헛스윙으로 끝나는 일이 많아 헛스윙률이 제일 높게 나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헛스윙 자체가 아주 적으면 이 기록 1위에 이름을 올리지 못합니다. 실제로 헛스윙도 많기 때문에 이 기록도 높은 겁니다. 지난 시즌 고효준은 마운드에서 공을 총 1083개 던졌고 이 가운데 14.4%를 상대 타자가 헛쳤습니다. 이는 40이닝 이상 던진 투수 가운데 14위에 해당하는 기록입니다.
이 부문 1위는 전체 투구 가운데 18.1%가 헛스윙으로 끝난 조상우(26·키움 히어로즈)고,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선발진 진입을 노리는 김광현(32·당시 SK)이 17%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이어서 지난 시즌 김광현과 한솥밥을 먹은 헨리 소사(35·현 푸방 가디언스), 그리고 LG 트윈스 마무리 투수 고우석(22)이 16.9%로 공동 3위였습니다.
고우석은 헛스윙률 19.1%로 고효준에 이어 전체 2위에 이름을 올린 선수이기도 합니다. 고우석이 이렇게 헛스윙을 자주 이끌어낸 원동력은 역시 최고 구속 157km/h를 기록하는 빠른 공. 고우석은 빠른 공 계열(포심 패스트볼, 투심 패스트볼, 커터, 싱커) 헛스윙률(25.3%)에서도 2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 부문 1위(25.7%)는 지난해 단일 시즌 최다 홀드(40홀드) 기록을 새로 쓴 키움 주장 김상수(32)에게 돌아갔습니다. 이 글의 주인공 고효준도 빠른 공 헛스윙률 23%로 6위에 올랐습니다.
빠른 공은 헛스윙을 유도하는 공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빠른 공 계열의 전체 헛스윙률은 14.4%로 포크볼(30.8%), 슬라이더(28.3%), 체인지업(27.1%), 커브(25.5%) 같은 변화구보다 최소 10%p 이상 낮았습니다. 그런데 김상수나 고우석은 빠른 공을 던져 헛스윙률 25% 이상을 기록했으니 빠른 공으로 커브 같은 효과를 본 셈입니다.
키움 김상수가 리그 최고 강속구 투수다?
두산 베어스 시절의 린드블럼(현 밀워키 브루어스). [동아DB]
김상수를 ‘파이어볼러’라고 부르기에는 망설여지는 게 사실. 그리고 고효준 사례를 보면 헛스윙을 잘 이끌어내고 삼진을 잘 잡는다고 해서 모든 면에서 다 좋은 투수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거꾸로 린드블럼(33·당시 두산 베어스·현 밀워키 브루어스)은 이런 기록에서 최상위권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실력만큼은 지난해 최고 투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항상 본질이 더 중요한 겁니다. 그리고 LA 다저스의 전설 샌디 쿠팩스(85)가 말한 것처럼 투수에게 제일 본질은 헛스윙이나 삼진이 아니라 아웃을 잡아내는 일일 겁니다. 모쪼록 코로나19 사태가 얼른 마무리돼 아웃을 잡으러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를 하루라도 빨리 봤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