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탐사선이 북극해 해저유전에서 원유를 탐사하고 있다. [Analolu agency]
푸틴 대통령과 살만 국왕은 2017년부터 미국 셰일오일에 맞서 적정 수준의 감산을 통해 석유 공급량을 조절하면서 국제유가 하락을 막는 데 적극 협력해왔다. 양국의 공조로 국제유가는 배럴당 50~60달러 선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 때문에 양국의 협력관계가 깨지면서 국제유가가 폭락하고 있다.
코로나19로 각국의 석유 수요가 대폭 줄어들자 사우디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14개 회원국과 러시아가 이끄는 비(非)OPEC 10개국이 3월 4~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OPEC+(플러스) 회의를 갖고 산유량 감산 문제에 대해 논의했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세계 산유량 2위인 사우디와 3위인 러시아가 대립했기 때문이다. 압둘라지즈 빈 살만 사우디 에너지부 장관과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에너지부 장관이 별도로 만나 6시간 넘는 마라톤협상을 벌였으나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압둘라지즈 장관은 노박 장관에게 산유량을 대폭 줄이자고 제의했지만, 노박 장관은 이를 거부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가 보유한 세계 최대 규모의 가와르 유전. [SAPRAC.ORG]
반면 러시아는 아예 증산하자는 입장이다. 러시아가 사우디의 감산 의견에 동의하지 않은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셰일오일업체들의 반사이익을 막기 위해서다. 러시아는 그동안 감산이 미국 셰일오일업체들의 배를 불리고 시장점유율까지 빼앗기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해왔다. 셰일오일은 시추가 까다로워 생산 단가가 높다. 러시아가 산유량을 늘려 유가를 낮은 수준으로 계속 유지하면 원가 경쟁력에서 밀리는 미국 셰일오일업체들은 파산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미국 셰일오일업계의 손익분기점이 되는 국제유가는 배럴당 40달러 선이다. 러시아로선 감산 대신 증산할 경우 국제유가가 더 하락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미국 셰일오일업계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으리라 보고 있다. 게다가 푸틴 대통령은 자국과 유럽을 잇는 가스관인 ‘노르트 스트림 2’를 건설해 러시아산 가스를 유럽에 판매하겠다는 계획을 반대해온 트럼프 대통령에게 상당한 불만을 드러내왔다. 러시아는 4월 1일부터 하루 산유량을 최대 50만 배럴까지 더 증산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산유량은 현재 하루 1130만 배럴 수준이다.
특히 푸틴 대통령의 석유 증산 카드는 개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푸틴 대통령으로선 종신집권이라는 자신의 권력욕을 실현하려면 4월 22일 국민투표에서 개헌안이 통과돼야 한다. 이를 위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최대 무기인 석유를 수단 삼아 사우디와 미국에 맞서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강한 러시아’를 기대하는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얻어내려는 의도라 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 사태 및 국제유가 하락과 관련해 대책을 밝히고 있다. [백악관]
국제유가는 사우디와 러시아의 치킨게임으로 배럴당 20달러대까지 폭락할 수도 있다. 사우디는 석유 생산 원가가 2.8달러에 불과하기 때문에 유가 폭락에도 버틸 수 있다는 입장이다. 러시아도 최근 몇 년간 원유 매출액 증가로 1700억 달러(약 218조6710억 원) 규모의 국부펀드를 조성해놓아 국제유가가 내려가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 석유업체 아파치사가 텍사스주 퍼미언 분지에서 셰일오일을 굴착하고 있다. [ppache]
미국 셰일오일업체들은 벌써부터 주요 지역 시추를 중단했고, 대규모 해고 등 구조조정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셰일오일업체들이 도산하면 이들에게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 주요 금융사까지 타격을 입는 ‘뱅크런’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11월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3월 13일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전략비축유 매입을 지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에너지부 장관에게 매우 좋은 가격에 미국의 전략비축유를 대량으로 매입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국제유가가 폭락한 만큼 적극적인 석유 매입을 통해 국제유가를 다시 끌어올려 셰일오일업체의 도산을 막겠다는 포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비축유 매입 카드는 푸틴 대통령에 대한 반격이자 자신의 재선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은 6억4000만 배럴의 전략비축유를 보유하고 있는데, 비축시설이 충분한 만큼 상당량의 석유를 매입할 수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경제회복에 적극 나설 것을 강조하고 있다. [차이나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