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일, 늦은 아침을 먹고 편안하게 쉬다가 어느새 코 밑에 수염자국까지 생긴 막내 녀석을 보고 불쑥 “얼른 자라서 손자 낳아줄 거지?” 하고 말을 꺼냈다.
“글쎄요, 집값이 너무 뛰어서 내 집 마련하기도 어려운데….”
우리 부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초등학교 아이가 이런 대답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나라에서 출산 장려 차원으로 아이가 있는 가족에겐 집을 준대.”
나오는 대로 주워섬겼더니 이번엔 “그래도 교육비가 많이 들잖아요. 애 낳을 생각 안 해봤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니야, 나라에서 무상교육을 실시할 거야.”
손자를 기대하던 우리는 아직 발표되지도 않은 ‘우물가 숭늉’격의 정책을 쏟아냈고, 그것으로 부족해 무서운 엄포까지 놓았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어 머지않아 우리 민족이 사라질 거라더라, 우리 민족을 지구상에 계속 존재하게 하려면 한 가정에 적어도 아이가 넷은 있어야 한다’는 식의 억지였다. 결국 아들은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주간동아 674호 (p9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