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의 말과 생각, 감정과 행동은 뇌과학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우리를 움직이는 뇌. 강석기 칼럼니스트가 최신 연구와 일상 사례를 바탕으로 뇌가 만들어내는 마음의 비밀을 풀어준다.

‘제2의 뇌’로 불리는 장은 뇌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장내미생물 조성이 파킨슨병 발병을 예측하는 지표로 쓰일 수 있음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이는 단순히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과민성대장증후군 증상이 있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화장실을 들락날락한다. 스트레스가 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는 장과 뇌가 밀접히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뇌 다음으로 뉴런이 많은 장기가 바로 장이다.
장과 뇌는 밀접하게 연관
장 상태 역시 뇌나 심리 상태에 큰 영향을 미친다. 대변을 며칠 동안 보지 못한 상태에서 상쾌한 기분을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다. 배가 살살 아프면 아무리 재밌는 영화를 봐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처럼 두 장기가 밀접하다 보니 둘 사이의 신경 연결을 ‘장-뇌 축’이라 부르기도 한다.여기에 한 단어가 더 붙은 ‘미생물총-장-뇌 축(microbiota-gut-brain axis)’이라는 말도 있다. 장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장내미생물 무리를 미생물총이라고 부르는데, 이들도 뇌의 대화 상대임을 강조하는 용어다.
2000년대 이후 게놈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장내미생물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장내미생물이 만드는 대사산물은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 뇌에도 작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예를 들어 장내미생물이 만드는 비타민B3는 에너지 대사를 활발하게 해 신경전달물질의 생산을 돕는다. 비타민B3가 부족하면 기억력 저하, 불면증, 우울증 등 신경정신 증상이 나타난다.
장내미생물은 장벽 세포에 작용해 간접적으로 뇌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어떤 장내미생물은 트립토판이라는 아미노산을 내놓는다. 장벽 세포는 이를 원료로 해 중요한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을 만든다. 그 양이 뇌에서 만드는 것보다 훨씬 많다. 장내미생물 위축으로 인체의 세로토닌 생산량이 줄면 우울증의 위험성이 커진다.
항생제 복용으로 장내미생물 균형이 무너져 유해한 균이 우세해지면 면역세포의 과도한 염증 반응이 유발돼 뇌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특히 임신 중 이런 일이 발생하면 태아에게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생길 가능성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가공식품·포화지방이 장내미생물 구성 망쳐
1817년 영국 외과의사 제임스 파킨슨은 어떤 일련의 증상을 오늘날 ‘파킨슨병’이라고 부르는 하나의 질병으로 규정했다. 파킨슨병은 뇌 흑질이라는 부위의 도파민 생성 뉴런이 죽어 도파민 수치가 떨어지면서 증상이 나타난다. 제임스는 파킨슨병과 관련해 흥미로운 현상을 관찰했다. 팔이 둔하고 따끔거리는 전조 증상이 있는 환자의 장에 숙변이 쌓여 있었고, 설사제 처방으로 장을 비우자 증상이 사라진 것이다. 실제 파킨슨병 환자 가운데 상당수는 발병 오래전부터 변비로 고생한 것으로 밝혀졌다.이러한 연관성에 장내미생물이 관여돼 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정황 증거는 많다. 파킨슨병 환자의 장내미생물 구성이 건강한 사람과는 다르다는 연구 결과가 여럿 나온 것이다. 최근 학술지 ‘네이처 의학’에는 장내미생물 조성이 파킨슨병 발병 위험성을 알리는 정보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 실려 이 점을 좀 더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른 여러 질병처럼 파킨슨병도 유전 요인과 환경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유전 요인 가운데 GBA1 유전자의 변이형을 지니면 발병률이 크게 올라간다. 영국 런던대 연구자들은 파킨슨병 환자 271명과 변이형을 지녔지만 발병하지 않은 43명, 변이형을 가지지 않은 건강한 사람 150명의 대변 시료에서 미생물총 게놈을 해독해 분석했다. 그 결과 장내미생물의 25%를 차지하는 176종의 상대적 비율에서 파킨슨병 환자와 건강한 사람이 차이를 보였다.
흥미롭게도 변이형을 지녔지만 발병하지 않은 사람과 변이형이 없는 건강한 사람 사이에는 미생물총 43종의 비율이 유의미하게 달랐다. 이 가운데 21종은 파킨슨병 환자와 차이를 보인 종과 겹쳤다. 변이형을 지녔지만 발병하지 않은 사람을 대상으로 운동성 등 여러 지표를 더 면밀히 조사한 결과, 발병 위험성이 클수록 미생물총 조성이 파킨슨병 환자에 더 가까웠다. 즉 아직은 병이 없는 사람의 미생물총을 분석하면 발병을 예측하는 지표로 쓸 수 있다는 의미다.
한편, 비정상적인 장내미생물 조성을 지닌 사람은 가공식품과 포화지방을 더 많이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과일과 채소, 생선이 풍부한 식단으로 바꾸거나 파에칼리박테리움 등 특정 미생물로 이뤄진 프로바이오틱스 복용으로 장내미생물 구성을 바꾸면 파킨슨병을 예방하거나 발병을 늦출 수 있을 것이다.
강석기 칼럼니스트는… 서울대 화학과 및 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 연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를 거쳐 2012년부터 과학칼럼니스트이자 프리랜서 작가(대표 저서 ‘식물은 어떻게 작물이 되었나’)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