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몸에 사는 균의 총량은 2㎏으로 거의 일정

[이광렬의 화학 생활] 방귀 잦고 냄새 심하다면 장내 유해균 비율 높아졌다는 신호

  • 이광렬 고려대 화학과 교수

    입력2025-12-13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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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멀고도 어려운 단어 ‘화학’. 그러나 우리 일상의 모든 순간에는 화학이 크고 작은 마법을 부리고 있다. 이광렬 교수가 간단한 화학 상식으로 생활 속 문제를 해결하는 법, 안전·산업에 얽힌 화학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람 몸에는 평균적으로 약 2㎏의 세균이 살고 있으며, 평소 먹는 음식이 장내 세균 종류를 결정짓는다. GETTYIMAGES

    사람 몸에는 평균적으로 약 2㎏의 세균이 살고 있으며, 평소 먹는 음식이 장내 세균 종류를 결정짓는다. GETTYIMAGES

    우리 몸에는 평균 약 2㎏의 세균이 산다. 피부는 물론이고, 입안과 음식이 지나가는 위·장 내부 길 전체가 균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얘기를 듣고 깜짝 놀라 “어떡해 어떡해” 하며 손을 세정제로 마구 닦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피부에 좋은 역할을 하는 유산균조차 죽을 수 있으니 말이다. 장 속 세균을 박멸하겠다고 소주를 마시는 것도 금물이다. 소주로는 장 속 세균을 결코 죽일 수 없다.

    유익균이 잘 살 수 있는 장내 환경

    피부가 몸의 외부인 것처럼 입안이나 장기 표면도 실은 우리 몸의 외부다. 만약 조직이나 혈액 등 진짜 우리 몸 내부에 세균이 침투하면 패혈증 같은 큰 병에 걸려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그때는 항생제를 복용해 세균을 죽여야 한다. 하지만 몸 표면에 있는 세균을 다 죽일 필요는 없다. 

    그중에는 우리 몸에 좋은 일을 하는 균도 있고 나쁜 일을 하는 균도 있는데, 우리 몸에 사는 균의 총량은 거의 일정하다. 유익균이 득세하면 유해균이 줄어들고 유해균이 득세하면 유익균이 줄어든다. 따라서 유익균이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피부 유익균의 대표적 예로 유산균이 있다. 한편 여드름을 유발하는 혐기성 세균은 유해균이라 할 것이다. 얼굴이 유분으로 번들거린다고 해서 강한 염기성 비누로 세수를 하면 어떻게 될까. 기름기는 확실히 제거되지만 유산균도 함께 사라져버린다. 또 유산균이 젖산을 배출하면서 만드는 피부의 산성 환경이 훼손돼 혐기성 세균이 더 잘 살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 결과적으로 피부 각질과 여드름이 더 심해지기도 한다. 깨끗한 피부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행동이 유익균을 죽이고 유해균을 키우는 결과를 야기하는 셈이다. 

    프로바이오틱스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있을 테다. 우리 몸속, 특히 장에 사는 유익균을 뜻한다. 이 또한 대표적으로 알려진 것이 유산균이다. 프로바이오틱스는 아주 오랜 세월 인류와 함께해온 존재라 건강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되레 면역 증강과 소화력 증진에 도움을 준다. 



    프로바이오틱스(유익균)도 생명체라 먹을거리가 필요하다. 이들의 먹이가 되는 영양 성분을 프리바이오틱스라고 한다. 프로바이오틱스의 먹이는 주로 탄수화물이며, 그중에서도 우리가 잘 소화하지 못하는 난소화성 섬유질을 섭취한다. 유익균이 난소화성 섬유질을 발효시키면 주요 부산물로 짧은 지방산이 생성돼 장 건강에 도움을 준다. 이 과정에서 수소, 이산화탄소, 메탄 등 가스가 발생하는데, 이것이 소위 ‘냄새나지 않는 방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반면 유해균은 단백질이나 소화되지 않은 잔여물을 먹고산다. 이들이 단백질을 부패시키면 암모니아나 황화수소, 인돌 같은 냄새 고약한 기체가 발생한다. 또한 장 세포의 건강을 해치는 독성 부산물도 생긴다. 운이 나쁘면 이들 유해 화합물이 대장 세포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대장암을 유발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장에서 사는 세균 종류가 정해지고, 그것이 장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평소 방귀가 잦고 냄새가 심하다면 장내 미생물 가운데 유해균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는 신호일 수 있으니 식단을 바꿔보는 게 좋다.

    나물 반찬은 장 건강 지키는 특효약 

    각종 기관에서 발표하는 ‘10대 슈퍼푸드’ 상단에 늘 위치하는 곡물이 있다. 바로 귀리다. 귀리에 풍부하게 함유된 베타글루칸은 사람이 잘 소화하지 못해 섭취 시 장으로 직행한다. 거기서 유익균을 먹여 살린다. 다양한 곡물 중에서도 특히 귀리의 섬유질이 유익균을 잘 자라게 한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그 결과 인체 면역력이 강화되니 슈퍼푸드로서 손색이 없다. 게다가 귀리는 단백질 함량이 높다. 체중·혈당·혈압 조절 및 변비 완화 효과는 덤이다. 

    요구르트, 김치, 된장, 낫토, 피클 같은 발효 식품은 우리 몸에 프로바이오틱스를 공급한다. 유산균 섭취도 프로바이오틱스를 장에 지속적으로 공급한다는 점에서 장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단, 유산균은 위의 강한 산성 조건을 잘 견디지 못한다. 유산균 음료를 마셔도 상당수가 위에서 죽고 일부만 살아남아 장까지 간다. 장으로 유산균을 많이 보내려고 고안해낸 것이 위를 안전하게 통과하도록 유산균을 캡슐에 담는 방식이다. 

    한편 귀리, 아스파라거스, 견과류, 콩, 양파, 돼지감자 같은 식품은 체내에서 프리바이오틱스 구실을 한다. 이런 음식을 골고루 잘 먹는 것만으로도 건강 유지에 도움이 된다. 

    문제는 현대인이 초가공식품을 많이 섭취한다는 점이다. 달달한 빵 등 디저트류나 햄버거, 가공햄, 컵라면 같은 음식에는 프로바이오틱스도, 프리바이오틱스도 없다. 재료 형태를 알아볼 수 없고, 심지어 어떤 재료로 만들었는지조차 불분명한 음식이 장 건강에 좋을 리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국 전통 음식 중에는 장 건강에 도움되는 것이 많다. 앞서 언급한 김치와 된장은 물론, 수많은 나물 반찬이 특히 그렇다. “밥상에 풀떼기만 있어” “오늘 또 잡곡밥이야?”라고 불평하면서 먹은 음식들이 실은 몸에 가장 좋은 보약이었던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에는 나물 반찬이 푸짐한 한식을 먹는 것은 어떨까. 우리 음식이라서 좋아해야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우리 음식이 좋은 것이었다. 이런 멋진 식문화를 남겨준 선조에게 고마움을 표해야 할 것 같다. 

    이광렬 교수는… KAIST 화학과 학사, 일리노이 주립대 화학과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003년부터 고려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 저서로 ‘게으른 자를 위한 아찔한 화학책’ ‘게으른 자를 위한 수상한 화학책’ ‘초등일타과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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