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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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한의 세상 관심법

분노가 폭발한다면? 마법의 주문 ‘사랑해’를 외쳐라

  •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의학박사 psysohn@chol.com

    입력2018-07-03 09: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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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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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사회 일각에서 화를 참지 못해 막무가내 식으로 폭력적 언행을 보이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불만이 가득하거나 자포자기 심정으로 막 나가는 사람들이 아닌 젊은 재벌 3세, 심지어 나이 지긋한 그들의 부모까지도 마구잡이로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요로운 삶을 영위했을 터다. 그러나 한순간, 즉 화가 치밀어 올랐을 때 찰나의 잘못된 언행이 반복되면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낳고 있다. 풍요로운 삶을 사는 그들의 지극히 사소하면서도 개인적인 감정 탓에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보통 사람들이 씻을 수 없는 모욕을 당하고 상처를 입었다. 

    필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분노의 속성에 대해 생각해봤다. 분노란 본래 인간 누구나 느끼는 감정으로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거나, 하기 싫은 일을 강제로 해야 하거나, 억압적·전투적 상황에서 자연스레 발생한다. 하지만 분노의 감정을 표출한 결과는 때론 매우 참혹하다. 그래서인지 조물주는 인간에게 어느 정도 조절 능력을 줬다. 분노는 순간적으로 강하게 느껴지지만 산 정상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는 돌처럼 몇 초 내지 몇 분 정도면 급격히 반감된다. 그리고 뒤이어 이성을 관장하는 뇌의 시스템(주로 전두엽)이 가동해 분노의 원인과 결과를 면밀하게 분석한 다음 가장 적절한 언행을 하게끔 명령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 문제가 생기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 분노가 폭발하고 파괴적 행동으로 번진다면, 분노 조절에 심각한 장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후회해도 고치지 못하면 중증

    분노조절장애는 일종의 충동조절장애에 해당한다. 충동조절장애의 범주에는 병적 도박, 병적 도벽(절도광), 병적 방화(방화광), 발모광, 간헐성 폭발장애 등이 있는데, 이 중 간헐성 폭발장애가 바로 분노조절장애를 말한다.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사람은 어떤 모습을 보일까. 

    먼저, 매우 사소한 자극에도 발작적이고 폭발적인 행동을 보인다. 예컨대 식당 종업원의 별로 친절하지 않은 말투에 격분하는 식이다. 발작 직전에는 몸을 부르르 떨거나 주먹을 꽉 쥐거나 입술을 깨무는 등 전조 행동을 보이고, 심장 박동이 급격히 빨라지거나 호흡이 가빠지는 등 자율신경계에도 변화가 나타난다. 그러다 갑자기 폭발해 수 분 내지 수시간 동안 난동을 피운다. 나중에 흥분이 가라앉으면 언행 일부분을 기억하지 못하기도 한다. 감각 기능이 일시적으로 마비돼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야 자신의 몸 일부가 다쳤음을 알아차린다. 

    그런데 하나 특징적인 것은 평상시에는 이러한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니 분노 발작을 일으키는 모습을 본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것은 당연하다. 마치 악마 하이드로 변신한 지킬 박사를 보는 것 같을 것이다. 



    분노가 폭발한 당사자는 중간에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두려움은 별로 없고, 설명하기 어려운 강렬한 충동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분노를 표출하는 경향이 있으며, 심지어 묘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나중에 깊은 후회와 자책을 느낀다는 점에서 반사회성 인격 혹은 사이코패스와 구별된다. 하지만 후회해도 병적인 행동이 반복된다면 전문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분노조절장애는 왜 생기는가. 한마디로 단정 지어 말하기는 어렵다. 뇌 손상이나 알코올 독성에 의한 뇌 장애, 특히 변연계(감정 조절 부위) 장애 때문에 생길 수 있다. 원인이 무엇이든 뇌에서 분비되는 세로토닌(행복, 즐거움, 안정감 같은 긍정적 정서를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이 감소됐기 때문에 분노가 폭발하는 것이다. 

    후천적 혹은 환경적 원인도 간과할 수 없다. 아동기 때 부모의 학대 또는 생명의 위협을 경험했거나 심한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을 겪은 사람에게서도 생길 수 있다. 심지어 학습되기도 한다. 대중매체에서 화가 난 주인공이 악당들을 무자비하게 두들겨 팬 다음 씩 웃는 모습을 보며 자라고, 게임을 통해 잔인한 살상 장면을 보고 즐긴 아이가 그것을 현실에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아! 화가 나면 저렇게 두들겨 패고 소리를 지르는구나. 물건도 세게 던지거나 부수기도 하네’라는 잘못된 메시지가 아이들에게 깊이 각인되는 순간, 수많은 분노조절장애 환자의 탄생이 예견될 수밖에 없다.

    숨을 크게 천천히 쉬어라

    분노조절장애 치료는 상담을 통한 정신치료와 공격성 및 충동을 줄이거나 기분을 조절하는 효과가 있는 약물치료를 병행한다. 무엇보다 자신 때문에 그동안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었고, 이러한 병적 행동을 고치지 않으면 더 큰 수렁에 빠질 수 있음을 스스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행동에 법적 처벌이 뒤따르면 달게 받은 후 새 출발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비록 분노조절장애에는 미치지 않는다 해도, 분노 조절은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정신적 능력이자 갖춰야 할 인성이라고 할 수 있다. 

    분노 조절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첫째, 분노를 일으키는 상황에서 벗어난다. 즉 그 자리를 뜨는 것이다.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분노가 폭발할 것 같으면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라. 자녀에게 분노를 느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라면 자녀를 피해 다른 방으로 가거나 잠시 집을 나선다. 그럼 신기하게도 분노의 정점이 곧 꺾여 화가 누그러지면서 다시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짧은 몇 초나 몇 분을 ‘분노’라는 놈에게 길을 내주지 않는 것이다. 

    둘째, 숨을 크게 천천히 쉰다. 분노가 갑자기 치밀어 오를 때 동반되는 현상은 교감신경계의 활성화다. 그 결과 호흡이 빨라지고 거칠어지며 심장 박동이 증가하고 온몸의 근육에 힘이 들어간다. 또 눈이 커지고 입안도 바짝 타들어가며 땀이 나고 털이 곤두선다. 그런데 심호흡을 천천히 하면 활성화된 교감신경계를 진정시킬 수 있다. 그 결과 온몸이 다시 이완되면서 역으로 화가 난 뇌를 가라앉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즐거워서 웃는 것도 좋지만 일부러 웃음으로써 즐거워지자는 이치와 같다. 

    셋째, 가족의 말을 떠올린다. 그러려면 먼저 아내나 남편, 혹은 부모나 자녀에게 “◯◯야, 사랑해! 화가 날 때 그 순간만 잘 참고 넘기기만 하면 돼”라고 미리 말해달라고 부탁하자. 그리고 머릿속에 이 말을 입력한다. 마치 주문처럼 평소 반복적으로 되새기고 암송하며 혼잣말한 다음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 꺼내서 써먹어라. 마법의 주문은 매우 효과적이다. 화가 난 순간 당신은 이미 가족의 사랑스러운 얼굴과 음성을 떠올리며 곧바로 미소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분노에 휩싸인 사회를 평온한 감정의 사회로 변화시키려면 사회 분위기의 개선과 전반적인 삶의 질 향상도 중요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 역시 매우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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