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상월곡동에 사는 김원종(42) 씨 부부는 요즘 아들(10)과 딸(5) 때문에 하루가 바빠졌다. 안양 초등학생 우예슬·이혜진 양 피살사건 이후 ‘등교용 아빠’ ‘하교용 엄마’를 자청한 것. ‘불안해서’가 이유다. 부부는 딸이 다니는 어린이집 선생님과도 부쩍 친해지려고 노력한다. “‘알몸 체벌’이니 ‘테이프 체벌’이니 하는 뉴스를 보니 왠지 찜찜하더라고요. 선생님께 잘 봐달라고 할 수밖에요.” 며칠 전 어린이집 선생님들께 돌린 피자도 일종의 ‘보험용’이라고 했다. 김씨는 “부모 처지에선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 양육 스트레스가 부쩍 늘어난 것 같다”며 푸념했다.
부산 사직동에 사는 배경옥(39) 씨도 바빠지긴 마찬가지. 딸(8)의 하교시간에 맞춰 직접 간식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생쥐깡’ ‘농약만두’ ‘칼날 참치캔’ 등 잇단 ‘식품 사고’ 소식에 최근 오븐을 구입했다. 그는 “번거롭더라도 안전하고 몸에 좋은 간식을 만들어줄 생각”이라고 했다.
충남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2007년 12월), 숭례문 방화사건(2008년 2월), 서울 용산구 한 어린이집 교사의 원생 알몸 체벌(2월), 우예슬·이혜진 양 살해범 검거(3월), 전 프로야구 선수 이호성 씨의 네 모녀 살해사건(3월), 새우깡에서 생쥐머리 추정 이물질 발견(3월)….
최근 잇따른 사회적 사건이 국민을 ‘스트레스의 바다’로 내몰고 있다. 특히 자녀를 둔 부모나 어민 등 사건과 직접 관련 있는 사람들의 스트레스 강도는 훨씬 세다. 노래방에서 새우깡을 많이 먹던 사람도 마찬가지. 물론 사람마다 편차는 있다.
잔혹한 사건 계속되면 내면의 두려움 자극
서울 강북삼성병원 임세원 교수(성균관대 의대 정신과)는 “(사회적 사건 등으로) 스트레스를 연이어 받았을 때 일반적으로 생명체가 보이는 반응은 두 가지다. 탈감작(desensitization·오히려 둔해지는 것), 과감작(hypersensitivity·더 예민해지는 것)인데 주로 과감작 쪽으로 진행된다”고 말한다. “개인이 경험할 수 있는 스트레스 중 특히 자녀 관련 사건은 스트레스가 가장 크다. 그만큼 더 ‘위협적’으로 느끼게 된다”고 덧붙인다.
예를 들면 예슬·혜진 양 사건의 범인이 평범한 이웃이라는 사실은 ‘예측 불가능성’을 증가시켜 일반인마저 이웃의 선의(善意)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경향을 낳는다는 것. 이는 결국 주변 상황을 적대적으로 지각하게 돼 선의의 사회공동체보다 ‘내 것’ ‘내 가족 보호’로 관심이 집중되면서 사회 통합에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반대로 끔찍한 살인사건 현장에서 천연덕스럽게 샌드위치를 먹는 ‘CSI 라스베이거스’의 길 그리섬 반장은 탈감작 경우다.
연세신경정신과 손석한 원장(의학박사)은 “자장면을 먹고 계산하려는데 주인이 ‘오늘부터 500원 올렸다’고 할 경우, 500원을 더 내서 억울하기보다 물가인상에 대한 불확실한 예측과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더 못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불안감이 스트레스로 작용한다”면서 “잔혹한 사건이 계속되면 이런 심리가 사람 내면의 두려움을 자극해 인간에 대한 실망, 사회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이 같은 사건들이 미치는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일까. 손 원장은 홈스(Holmes)와 레어(Rahe)의 ‘스트레스 지수’를 인용해 위와 같이 분석했다. “계량화하기는 어렵지만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작성한 것”이라는 ‘주석’도 덧붙였다. 괄호 안은 홈스의 스트레스 지수에 해당하는 사건.
손 원장의 분석대로라면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는 최근 넉 달 동안 150점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은 게 된다. 연간 스트레스 지수가 200점 이상이면 스트레스로 인한 발병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결국 어린 자녀를 둔 부모는 올해 말까지 스트레스 지수를 50점 이하로 최소화해야 한다는 ‘미션’을 수행하는 게 좋다는 뜻이다.
임 교수는 이처럼 예측 불가능한 사건이 잇따르고 치열한 경쟁 등으로 자신의 지위나 안정성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불안장애로 이어지기 쉽다고 경고한다. ‘학부모 직장인’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불안은 안절부절못하며 짜증을 잘 내거나(감정적 증상), 심장이 빨리 뛰고 소화불량, 근육긴장, 불면증(신체적 증상) 등으로 나타난다. 이런 불안장애 환자들은 닥치지도 않은 위험을 걱정하고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는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많다고. 사소한 사건에서도 최악의 사태만을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 대한불안의학회가 성인 남녀 각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2006 한국인 불안조사’를 보면, 응답자 4명 가운데 1명(25%)이 ‘불안한 상태에 있다’고 답했다. 증상으로 ‘소화가 안 되고 배 속이 불편하다’(49%)가 가장 많았다. 손 원장은 이런 증상의 사람들은 불안과 위협을 더 크게 느낀다고 했다.
한의학적 관점에서는 어떨까. 사회적 사건에 따른 스트레스를 ‘칠정(七情)’으로 설명하는데, 희(喜·유쾌) 노(怒·충동적 흥분) 사(思·생각) 우(憂·침울) 비(悲·슬픔) 경(驚·갑작스런 긴장) 공(恐·공포) 등 7정의 변화는 주요 병인(病因) 가운데 하나로 본다. 사회적 사건이 정신적 충격이나 자극을 줘 병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 된다는 얘기다.
스트레스 덜 받고 사는 법이 최선의 처방
“(사회적 사건으로) 놀라거나(驚) 공포(恐)를 느꼈다면 노동을 많이 해 기운이 부족한 것과 같다. 분노(怒)와 걱정(憂)이 앞서거나 슬프거나(悲) 생각(思)이 많아졌다면 잘못된 기운을 뭉치게 해 기운이 남아 있는 것과 같은 증상을 일으킨다.” 광제한의원 이주연 원장(동국대 외래교수)의 설명이다.
여기서 ‘기운이 부족한 증상’은 무기력하거나 피곤하고 땀이 나거나 얼굴이 창백해지는 증상으로, ‘기운이 뭉치는 증상’은 가슴과 배가 답답하거나 더부룩하고 가래가 끓거나 불쾌감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결국 평소 기운이 부족한 사람은 공·경의 충격을, 기운이 뭉치는 사람은 노·사·우·비 충격을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밀려드는 ‘스트레스 파고(波高)’를 가뿐히 넘을 순 없을까.
임 교수는 “스트레스를 덜 받고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처방한다.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는 것은 사회적 사건의 발생 빈도가 낮아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건이 자신에게 끼치는 영향을 줄이도록(이완) 노력한다는 뜻이다. 개인차가 있지만 수영이나 자녀와 놀기, 취미생활 등 평소 긴장을 풀 ‘거리’를 만드는 게 좋다고 한다.
이 원장은 기운이 부족한 증상이 나타나면 호흡을 길게 해 마음을 안정시키거나 누워서 기운을 북돋을 것을 권했다. 건강식으로 식사량을 늘리거나 수면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도 한 방법. 육체적인 활동은 줄이는 게 좋다. 기운이 뭉쳤다면 활동량을 늘리거나 대화를 많이 하는 게 바람직하다. 노래방에서 큰 소리로 노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손 원장은 “엄마 아빠가 너무 신경 쓰다 보면 자칫 자녀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다”며 ‘의연한 대처’도 함께 주문했다.
부산 사직동에 사는 배경옥(39) 씨도 바빠지긴 마찬가지. 딸(8)의 하교시간에 맞춰 직접 간식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생쥐깡’ ‘농약만두’ ‘칼날 참치캔’ 등 잇단 ‘식품 사고’ 소식에 최근 오븐을 구입했다. 그는 “번거롭더라도 안전하고 몸에 좋은 간식을 만들어줄 생각”이라고 했다.
충남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2007년 12월), 숭례문 방화사건(2008년 2월), 서울 용산구 한 어린이집 교사의 원생 알몸 체벌(2월), 우예슬·이혜진 양 살해범 검거(3월), 전 프로야구 선수 이호성 씨의 네 모녀 살해사건(3월), 새우깡에서 생쥐머리 추정 이물질 발견(3월)….
최근 잇따른 사회적 사건이 국민을 ‘스트레스의 바다’로 내몰고 있다. 특히 자녀를 둔 부모나 어민 등 사건과 직접 관련 있는 사람들의 스트레스 강도는 훨씬 세다. 노래방에서 새우깡을 많이 먹던 사람도 마찬가지. 물론 사람마다 편차는 있다.
잔혹한 사건 계속되면 내면의 두려움 자극
서울 강북삼성병원 임세원 교수(성균관대 의대 정신과)는 “(사회적 사건 등으로) 스트레스를 연이어 받았을 때 일반적으로 생명체가 보이는 반응은 두 가지다. 탈감작(desensitization·오히려 둔해지는 것), 과감작(hypersensitivity·더 예민해지는 것)인데 주로 과감작 쪽으로 진행된다”고 말한다. “개인이 경험할 수 있는 스트레스 중 특히 자녀 관련 사건은 스트레스가 가장 크다. 그만큼 더 ‘위협적’으로 느끼게 된다”고 덧붙인다.
예를 들면 예슬·혜진 양 사건의 범인이 평범한 이웃이라는 사실은 ‘예측 불가능성’을 증가시켜 일반인마저 이웃의 선의(善意)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경향을 낳는다는 것. 이는 결국 주변 상황을 적대적으로 지각하게 돼 선의의 사회공동체보다 ‘내 것’ ‘내 가족 보호’로 관심이 집중되면서 사회 통합에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반대로 끔찍한 살인사건 현장에서 천연덕스럽게 샌드위치를 먹는 ‘CSI 라스베이거스’의 길 그리섬 반장은 탈감작 경우다.
연세신경정신과 손석한 원장(의학박사)은 “자장면을 먹고 계산하려는데 주인이 ‘오늘부터 500원 올렸다’고 할 경우, 500원을 더 내서 억울하기보다 물가인상에 대한 불확실한 예측과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더 못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불안감이 스트레스로 작용한다”면서 “잔혹한 사건이 계속되면 이런 심리가 사람 내면의 두려움을 자극해 인간에 대한 실망, 사회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이 같은 사건들이 미치는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일까. 손 원장은 홈스(Holmes)와 레어(Rahe)의 ‘스트레스 지수’를 인용해 위와 같이 분석했다. “계량화하기는 어렵지만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작성한 것”이라는 ‘주석’도 덧붙였다. 괄호 안은 홈스의 스트레스 지수에 해당하는 사건.
손 원장의 분석대로라면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는 최근 넉 달 동안 150점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은 게 된다. 연간 스트레스 지수가 200점 이상이면 스트레스로 인한 발병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결국 어린 자녀를 둔 부모는 올해 말까지 스트레스 지수를 50점 이하로 최소화해야 한다는 ‘미션’을 수행하는 게 좋다는 뜻이다.
임 교수는 이처럼 예측 불가능한 사건이 잇따르고 치열한 경쟁 등으로 자신의 지위나 안정성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불안장애로 이어지기 쉽다고 경고한다. ‘학부모 직장인’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불안은 안절부절못하며 짜증을 잘 내거나(감정적 증상), 심장이 빨리 뛰고 소화불량, 근육긴장, 불면증(신체적 증상) 등으로 나타난다. 이런 불안장애 환자들은 닥치지도 않은 위험을 걱정하고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는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많다고. 사소한 사건에서도 최악의 사태만을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 대한불안의학회가 성인 남녀 각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2006 한국인 불안조사’를 보면, 응답자 4명 가운데 1명(25%)이 ‘불안한 상태에 있다’고 답했다. 증상으로 ‘소화가 안 되고 배 속이 불편하다’(49%)가 가장 많았다. 손 원장은 이런 증상의 사람들은 불안과 위협을 더 크게 느낀다고 했다.
한의학적 관점에서는 어떨까. 사회적 사건에 따른 스트레스를 ‘칠정(七情)’으로 설명하는데, 희(喜·유쾌) 노(怒·충동적 흥분) 사(思·생각) 우(憂·침울) 비(悲·슬픔) 경(驚·갑작스런 긴장) 공(恐·공포) 등 7정의 변화는 주요 병인(病因) 가운데 하나로 본다. 사회적 사건이 정신적 충격이나 자극을 줘 병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 된다는 얘기다.
‘알몸 체벌’을 받는 어린이, 선박 충돌 사고로 기름을 내뿜고 있는 허베이 스피리트호, 반품되는 새우깡(왼쪽부터). 최근 잇따른 사회적 사건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국민이 많다.
스트레스 덜 받고 사는 법이 최선의 처방
“(사회적 사건으로) 놀라거나(驚) 공포(恐)를 느꼈다면 노동을 많이 해 기운이 부족한 것과 같다. 분노(怒)와 걱정(憂)이 앞서거나 슬프거나(悲) 생각(思)이 많아졌다면 잘못된 기운을 뭉치게 해 기운이 남아 있는 것과 같은 증상을 일으킨다.” 광제한의원 이주연 원장(동국대 외래교수)의 설명이다.
여기서 ‘기운이 부족한 증상’은 무기력하거나 피곤하고 땀이 나거나 얼굴이 창백해지는 증상으로, ‘기운이 뭉치는 증상’은 가슴과 배가 답답하거나 더부룩하고 가래가 끓거나 불쾌감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결국 평소 기운이 부족한 사람은 공·경의 충격을, 기운이 뭉치는 사람은 노·사·우·비 충격을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밀려드는 ‘스트레스 파고(波高)’를 가뿐히 넘을 순 없을까.
임 교수는 “스트레스를 덜 받고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처방한다.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는 것은 사회적 사건의 발생 빈도가 낮아진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건이 자신에게 끼치는 영향을 줄이도록(이완) 노력한다는 뜻이다. 개인차가 있지만 수영이나 자녀와 놀기, 취미생활 등 평소 긴장을 풀 ‘거리’를 만드는 게 좋다고 한다.
이 원장은 기운이 부족한 증상이 나타나면 호흡을 길게 해 마음을 안정시키거나 누워서 기운을 북돋을 것을 권했다. 건강식으로 식사량을 늘리거나 수면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도 한 방법. 육체적인 활동은 줄이는 게 좋다. 기운이 뭉쳤다면 활동량을 늘리거나 대화를 많이 하는 게 바람직하다. 노래방에서 큰 소리로 노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손 원장은 “엄마 아빠가 너무 신경 쓰다 보면 자칫 자녀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다”며 ‘의연한 대처’도 함께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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