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총선에 몸을 던진 검사 출신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넘쳐난다. 한나라당에서만 20명이 넘는 검사 출신 정치인이 공천을 받았고 여야 각 당을 합하면 그 수는 30명에 이른다. ‘처녀 출전’하는 정치신인은 14명으로, 이들은 모두 한나라당 공천을 받았다.
한나라당이 ‘검사 풍년’이라면 통합민주당은 기근에 가깝다. 광주 동구에서 출마하는 박주선 전 의원, 강원도 철원·화천·인제·양구 지역구 공천을 받은 3선의 이용삼 전 의원, 비례대표 18번을 받은 검사 출신 김학재 전 법무부 차관 정도가 눈에 띌 정도다. 기타 정당에는 검사 출신 후보가 단 한 명도 없다.
검사들은 왜 정치인이 되고 싶어할까? 정치인으로 변신한 전직 검사들이 밝히는 ‘내가 정치권에 발을 들인 이유’는 비슷하다. 정리하면 대충 이렇다.
“법을 집행하다 보면 어느새 세상사에 무뎌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더 넓고 보람된 일을 해보고 싶은 욕심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인천 계양을에 출사표를 낸 한나라당 이상권 후보는 “검사생활 내내 많은 한계를 경험했다”고 지난 시절을 회상했다. 이 후보는 “왜 정치권에 들어왔는가”라는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항상 사건에 매여 있다 보니 세상 넓은 것을 모르고 살았다. 특히 법을 집행하면서 잘못된 법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답했다.
“법이니까 당연히 지켜야 한다는 것이 늘 답답했다. 그리고 잘못된 입법으로 피해가 속출하는 현실을 보면서 분노했다. 자연스레 ‘내가 나서서 법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이상권 후보)
대선캠프 경유파, 때 기다리는 강태공파 등 경로 다양
한나라당 유영하 후보(경기 군포)도 비슷하다. 어릴 적 꿈이 ‘검사’였고 검사가 된(1995년) 이후로는 검사를 천직으로 생각했다는 그는 10년간의 검사생활을 청산하고 정치에 투신한 이유를 “본질을 건드리지 못하는 검사생활에 답답함을 느껴서”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이 전현직 검사들에게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먼저 해박한 법지식과 수사능력이 현실적인 이유가 된다. 검찰 특유의 상명하복(上命下服) 문화도 정치권이 필요로 하는 요소다. 검사 출신 정치인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2004년에 이어 두 번째로 총선에 도전하는 유 후보는 이와 관련해 “기본 업무에 충실한 검사의 장점이 정치권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국회의원의 기본 업무인 입법 업무도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이 검사들”이라는 게 유 후보의 생각. 그는 “검사는 최소한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전현직 검사들이 정치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다양하다. 검사 시절부터 정치권과 일정한 관계를 맺거나 대선주자 캠프 등에 몸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공부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강태공파’ 검사들도 있다. 한나라당 오병주 후보(충남 공주·연기)는 후자에 속한다.
“행정고시(22회) 출신으로 재무부 등에서 근무한 경험을 살리고 싶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법을 다루는 일은 평생을 바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정치수업을 받기 위해 지난 수년간 35개나 되는 대학을 쫓아다니며 ‘경제전문가 과정’ 같은 각종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이를 통해 지역 인사들과도 자연스럽게 교감을 갖게 됐다.”(오병주 후보)
한나라당 심장수 후보(경기 남양주갑)는 정치를 하겠다는 결심을 굳힌 후 자기 발로 정치권을 찾아간 경우다. 2005년 한나라당 중앙위원에 도전한 것을 시작으로 한나라당 중앙위공익법무분과 위원장을 맡으며 정치를 시작한 그는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을 택한 이유에 대해 “정체성에 맞는 것 같아서, 좌파정권 종식을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검찰 출신 정치인들에게 ‘정치’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장을 지낸 심 후보는 다분히 철학적인 답을 내놓는다.
“법과 정치는 가장 밀접하면서 동시에 하나다. 모두 사람의 일이고 삶을 다루는 일이니, 정치와 법은 결국 기본적인 성격이 같다.”
심 후보는 “정치권에 더 많은 법조인이 필요하다”는 소신도 공개적으로 밝혀 눈길을 끈다. “한나라당에 법조인(특히 검사) 출신이 너무 많다”는 세간의 지적에 대해서도 “법조인 출신, 특히 검사 출신들이 정치권에 더 많아져야 한다. 미국 하원의원의 경우 70% 이상이 변호사 출신이고 이들 중 상당수가 검사생활을 경험했다. 선진국일수록 법조인 출신 정치인이 많다”고 했다.
하지만 많은 검사 출신 정치인들은 정치권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현실적인 문제에 부닥친다고 말한다. 일단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이 크다는 것. 한나라당 박민식 후보(부산 북·강서갑)가 털어놓는 고민이다.
“문화가 확실히 다르다. 검사나 공무원은 외부 평가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자리인 데 반해, 정치인은 주변 사람들을 챙겨야 하고 사람들의 이런저런 평가에도 신경 써야 한다. 이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치가 이렇게 어려운지 정말 몰랐다.”
“경제적 고충이 가장 크다”고 답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상권 후보의 설명이다.
“법조인, 특히 검사 출신들은 경제와 돈을 잘 모른다. 당연히 정치를 시작하면서 돈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최근 몇 년 사이 돈 안 드는 선거를 치를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됐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정치가 발전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후보자 대부분 여당 … “준비 안 된 권력욕 경계해야”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이상 검찰에 몸담은 이들이 온전한 정치인이 되기엔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하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갈등, 정치인이 된 자신의 모습에 대한 아쉬움과 실망을 경험한다. 말하자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남는 셈이다. 11년간 검사로 일한 박민식 후보는 “검사가 좋은 점은 나쁜 놈 잡는 보람이다. 그러나 정치에는 그런 게 없는 것 같다. 검사 시절이 행복했다는 생각도 종종 든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다수의 검사 출신 인사들이 정치권으로 몰려가는 풍토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나라당=검찰당’이라는 세간의 비판은 이런 시각을 반영한다. 그러나 검사들의 정치권행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따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 전직 검찰 고위간부가 내놓는, ‘검사들의 정치권행’을 바라보는 우려의 목소리는 무게감 있게 들린다.
“검사들은 기득권 세력이다. 언제나 갑(甲)의 위치에서 사람과 세상을 다룬다. 검사 출신들이 정치권력을 쥐고 싶어하는 이유, 그러면서도 좀처럼 야당에는 몸담지 않으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 모든 일을 옳고 그름의 잣대로 보던 검사들이 정치를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종종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채 더 큰 권력(정치권력)을 갖기 위해 정치권으로 뛰어드는 후배들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한나라당이 ‘검사 풍년’이라면 통합민주당은 기근에 가깝다. 광주 동구에서 출마하는 박주선 전 의원, 강원도 철원·화천·인제·양구 지역구 공천을 받은 3선의 이용삼 전 의원, 비례대표 18번을 받은 검사 출신 김학재 전 법무부 차관 정도가 눈에 띌 정도다. 기타 정당에는 검사 출신 후보가 단 한 명도 없다.
검사들은 왜 정치인이 되고 싶어할까? 정치인으로 변신한 전직 검사들이 밝히는 ‘내가 정치권에 발을 들인 이유’는 비슷하다. 정리하면 대충 이렇다.
“법을 집행하다 보면 어느새 세상사에 무뎌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더 넓고 보람된 일을 해보고 싶은 욕심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인천 계양을에 출사표를 낸 한나라당 이상권 후보는 “검사생활 내내 많은 한계를 경험했다”고 지난 시절을 회상했다. 이 후보는 “왜 정치권에 들어왔는가”라는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항상 사건에 매여 있다 보니 세상 넓은 것을 모르고 살았다. 특히 법을 집행하면서 잘못된 법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답했다.
“법이니까 당연히 지켜야 한다는 것이 늘 답답했다. 그리고 잘못된 입법으로 피해가 속출하는 현실을 보면서 분노했다. 자연스레 ‘내가 나서서 법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이상권 후보)
대선캠프 경유파, 때 기다리는 강태공파 등 경로 다양
한나라당 유영하 후보(경기 군포)도 비슷하다. 어릴 적 꿈이 ‘검사’였고 검사가 된(1995년) 이후로는 검사를 천직으로 생각했다는 그는 10년간의 검사생활을 청산하고 정치에 투신한 이유를 “본질을 건드리지 못하는 검사생활에 답답함을 느껴서”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이 전현직 검사들에게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먼저 해박한 법지식과 수사능력이 현실적인 이유가 된다. 검찰 특유의 상명하복(上命下服) 문화도 정치권이 필요로 하는 요소다. 검사 출신 정치인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2004년에 이어 두 번째로 총선에 도전하는 유 후보는 이와 관련해 “기본 업무에 충실한 검사의 장점이 정치권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국회의원의 기본 업무인 입법 업무도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이 검사들”이라는 게 유 후보의 생각. 그는 “검사는 최소한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박주선, 이상권, 유영하(사진 위부터)
“행정고시(22회) 출신으로 재무부 등에서 근무한 경험을 살리고 싶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법을 다루는 일은 평생을 바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정치수업을 받기 위해 지난 수년간 35개나 되는 대학을 쫓아다니며 ‘경제전문가 과정’ 같은 각종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이를 통해 지역 인사들과도 자연스럽게 교감을 갖게 됐다.”(오병주 후보)
한나라당 심장수 후보(경기 남양주갑)는 정치를 하겠다는 결심을 굳힌 후 자기 발로 정치권을 찾아간 경우다. 2005년 한나라당 중앙위원에 도전한 것을 시작으로 한나라당 중앙위공익법무분과 위원장을 맡으며 정치를 시작한 그는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을 택한 이유에 대해 “정체성에 맞는 것 같아서, 좌파정권 종식을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검찰 출신 정치인들에게 ‘정치’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장을 지낸 심 후보는 다분히 철학적인 답을 내놓는다.
“법과 정치는 가장 밀접하면서 동시에 하나다. 모두 사람의 일이고 삶을 다루는 일이니, 정치와 법은 결국 기본적인 성격이 같다.”
심 후보는 “정치권에 더 많은 법조인이 필요하다”는 소신도 공개적으로 밝혀 눈길을 끈다. “한나라당에 법조인(특히 검사) 출신이 너무 많다”는 세간의 지적에 대해서도 “법조인 출신, 특히 검사 출신들이 정치권에 더 많아져야 한다. 미국 하원의원의 경우 70% 이상이 변호사 출신이고 이들 중 상당수가 검사생활을 경험했다. 선진국일수록 법조인 출신 정치인이 많다”고 했다.
하지만 많은 검사 출신 정치인들은 정치권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현실적인 문제에 부닥친다고 말한다. 일단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이 크다는 것. 한나라당 박민식 후보(부산 북·강서갑)가 털어놓는 고민이다.
“문화가 확실히 다르다. 검사나 공무원은 외부 평가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자리인 데 반해, 정치인은 주변 사람들을 챙겨야 하고 사람들의 이런저런 평가에도 신경 써야 한다. 이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치가 이렇게 어려운지 정말 몰랐다.”
“경제적 고충이 가장 크다”고 답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상권 후보의 설명이다.
“법조인, 특히 검사 출신들은 경제와 돈을 잘 모른다. 당연히 정치를 시작하면서 돈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최근 몇 년 사이 돈 안 드는 선거를 치를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됐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정치가 발전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후보자 대부분 여당 … “준비 안 된 권력욕 경계해야”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이상 검찰에 몸담은 이들이 온전한 정치인이 되기엔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하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갈등, 정치인이 된 자신의 모습에 대한 아쉬움과 실망을 경험한다. 말하자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남는 셈이다. 11년간 검사로 일한 박민식 후보는 “검사가 좋은 점은 나쁜 놈 잡는 보람이다. 그러나 정치에는 그런 게 없는 것 같다. 검사 시절이 행복했다는 생각도 종종 든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다수의 검사 출신 인사들이 정치권으로 몰려가는 풍토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나라당=검찰당’이라는 세간의 비판은 이런 시각을 반영한다. 그러나 검사들의 정치권행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따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 전직 검찰 고위간부가 내놓는, ‘검사들의 정치권행’을 바라보는 우려의 목소리는 무게감 있게 들린다.
“검사들은 기득권 세력이다. 언제나 갑(甲)의 위치에서 사람과 세상을 다룬다. 검사 출신들이 정치권력을 쥐고 싶어하는 이유, 그러면서도 좀처럼 야당에는 몸담지 않으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 모든 일을 옳고 그름의 잣대로 보던 검사들이 정치를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종종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채 더 큰 권력(정치권력)을 갖기 위해 정치권으로 뛰어드는 후배들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