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신비로운 맛집의 비밀을 밝히려면 들어가는 재료 하나하나를 알아내야 하는 것처럼,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루고 있는 재료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인류가 지금까지 발견한 모든 재료를 기본입자라 하고, 이들과 그 사이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형태가 바로 표준 모형이다. 오랫동안 과학자들의 염원은 이를 다듬고 완성하는 것이었다.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는 세상 모든 만물이 흙, 불, 공기, 물로만 이뤄져 있다는 ‘4원소설(設)’을 주장했지만, 이들은 원자로 구성돼 있다. 원자의 중심에는 원자핵이 있고 그 주위에는 전자가 있다.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며, 업 쿼크와 다운 쿼크로 쪼개진다. 중성자보다 더 작아 중성미자로 불리는 녀석도 있는데, 질량이 너무 작아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다. 업 쿼크, 다운 쿼크, 전자, 그리고 중성미자 여기까지가 현대판 4원소설이다.
만약 이 우주가 오직 4종류의 치킨으로만 이뤄져 있다면 우리는 프라이드, 양념, 간장, 마늘 치킨을 찾아낸 것이다. 이걸 1세대 기본입자라 한다. 현재까지 발견된 세대는 총 3가지다. 2세대와 3세대 역시 1세대처럼 4가지 기본입자로 구성됐는데, 각 운동량이나 스핀은 같지만 질량이 다르다. 이제 단순한 4치킨 시대는 끝나고 핫양념, 볼케이노, 숯불양념, 강정, 왕갈비, 불갈비, 베이크, 가마솥 치킨까지 더한 12치킨 시대가 온 것이다. 이 12종류의 기본입자를 우리는 페르미온이라고 부른다.
우주에는 4가지 힘(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이 있다. 현대물리학에서는 이 힘들의 근원을 주고받는 입자로 설명한다. 배구공을 주고받는다면 배구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처럼, 4가지 힘도 두 입자가 서로 광자, 글루온, Z보손, W보손 같은 매개 입자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힘이 생긴다고 본다. 이 매개 입자를 ‘보손’이라고 하는데, 12종류의 치킨을 페르미온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허니 머스터드, 치즈, 와사비 마요, 갈릭 등 4종류의 디핑 소스가 보손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들의 질량은 모두 다르다. 세상은 이 입자들로 만들어졌을 텐데, 도대체 누가 이들에게 질량을 부여했을까.
이곳을 서울지하철 신도림역이라고 가정해보자. 사람이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2호선을 갈아타러 가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이 아이유라면 어떨까. 날씬하기에 빠르게 지하철을 탈 수 있을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녀를 알아본 사람들이 사인을 요청할 테고, 아마 지하철을 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인기가 많아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많이 할수록 느리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느리게 만드는 작용을 힉스 메커니즘이라고 하며, 이 작용이 일어나는 신도림역을 힉스장이라 부른다.
물론 힉스장은 우주 전체에 퍼져 있으며 틈만 나면 물질과 상호작용을 한다. 인기가 많을수록 더 많은 상호작용을 하는데, 이런 물질을 우리는 질량이 크다고 인지하는 것이다. 질량이 크기 때문에 무겁고, 그래서 밀어도 꿈쩍하지 않는 게 아니라, 미는 대상이 힉스장과 상호작용을 많이 할수록 미는 힘에 대해 더욱 강하게 저항하며, 이때 질량이라는 물질 고유의 물리량을 크다고 정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힉스장과 상호작용을 전혀 하지 않는 입자는 어떻게 될까. 공기나 병풍급으로 인기가 없어 존재감이 제로(0)인 안타까운 입자가 바로 광자, 빛이다. 실제로 빛은 힉스장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질량이 없고, 언제나 우주 공간에서 최대 속도로 날아다닐 수 있다. 힉스 메커니즘을 만드는 힘은 아주 짧은 거리에서만 작용하기에 거대한 우리는 이걸 중력처럼 직접 느낄 수는 없다. 힉스 입자는 힉스장과 힉스 메커니즘의 유일한 증거였으며, 혹시 이게 존재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모든 발견은 소설 속 이야기에 불과했다.
집에서 가정식 치킨을 요리해 먹기로 마음먹었다면 적어도 곧 먹게 될 치킨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는 있어야 한다. 그런데 밀가루나 식용유를 얼마나 써야 하는지는 둘째 치고, 가정식 치킨이라는 게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미국 실험물리학자 리언 레더먼 박사는 힉스 입자에 관한 책을 쓰는 과정에서 하도 발견이 안 되니 책 제목에 ‘빌어먹을 입자(goddamn particle)’라는 욕을 적기까지 했다. 그래도 과학책인데 욕설은 심하다고 판단한 출판사 측은 제목 뒷부분을 신의 입자(god particle)로 수정했고, 한때 바뀐 제목 때문에 기독교에서 힉스 입자가 신의 존재를 증명할 것이라고 오해한 적도 있다.
난리통 속에서 힉스 입자는 더욱 유명해졌지만 찾을 방법이 없었다. 서부의 두 총잡이가 마주 보고 쏜 총알을 정확히 부딪치게 하는 것처럼, 입자 두 개를 빠르게 가속해 충돌하게 한다는 비현실적인 아이디어만 있었다. 심지어 이 연구는 부딪친 뒤 부서져 나오는 모든 입자의 흔적을 분석해야 하는데, 그 파편이 셀 수 없이 많고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게 확실했다. 특히 가속기 규모가 클수록 높은 에너지의 입자를 얻을 수 있어, 목표인 힉스 입자를 찾기 위해서는 이론적으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입자 가속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2011년 12월, 만약 힉스 입자가 없을 경우 나타나야 할 형태와는 조금 다른 결과가 나왔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아야 할 빈 깡통에서 뭔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과학자들은 아마 잘못된 신호일 거라며 믿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수개월간 분석을 멈추지 않았고, 2013년 3월 14일 존재 가능성이 제기된 지 49년이 돼서야 드디어 이 미지의 입자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인류는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장과 힉스 메커니즘, 그리고 그 증거인 힉스 입자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됐다.
최초로 힉스 입자의 존재를 추측한 세 사람 중 이미 타계한 로버트 브라우트를 제외한 프랑수 프랑수아 앙글레르와 피터 힉스 박사에게 2013년 노벨물리학상의 영예가 돌아갔다. 하지만 여전히 표준 모형은 중성미자의 질량이나 중력을 설명하지 못한다. 암흑물질이나 암흑에너지의 존재 역시 마찬가지다. 아직 불완전한 모형에 대해 추가로 알아야 할 것이 많이 남아 있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것을 쫓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더 위대한 가속기의 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치킨은 살 안 쪄요. 살은 내가 쪄요’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우주를 이루는 다양한 종류의 치킨과 디핑 소스를 이해하고 있다면 이제 제대로 응용할 때다. 치킨은 살 안 찐다. 그저 나를 힉스장과 활발하게 상호작용하는 인기인으로 만들어줄 뿐이다. 신도림역의 아이유처럼 말이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먹자. 맛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
궤도_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는 세상 모든 만물이 흙, 불, 공기, 물로만 이뤄져 있다는 ‘4원소설(設)’을 주장했지만, 이들은 원자로 구성돼 있다. 원자의 중심에는 원자핵이 있고 그 주위에는 전자가 있다.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며, 업 쿼크와 다운 쿼크로 쪼개진다. 중성자보다 더 작아 중성미자로 불리는 녀석도 있는데, 질량이 너무 작아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다. 업 쿼크, 다운 쿼크, 전자, 그리고 중성미자 여기까지가 현대판 4원소설이다.
만약 이 우주가 오직 4종류의 치킨으로만 이뤄져 있다면 우리는 프라이드, 양념, 간장, 마늘 치킨을 찾아낸 것이다. 이걸 1세대 기본입자라 한다. 현재까지 발견된 세대는 총 3가지다. 2세대와 3세대 역시 1세대처럼 4가지 기본입자로 구성됐는데, 각 운동량이나 스핀은 같지만 질량이 다르다. 이제 단순한 4치킨 시대는 끝나고 핫양념, 볼케이노, 숯불양념, 강정, 왕갈비, 불갈비, 베이크, 가마솥 치킨까지 더한 12치킨 시대가 온 것이다. 이 12종류의 기본입자를 우리는 페르미온이라고 부른다.
힉스 입자의 존재를 확인해 2013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피터 힉스 박사. [위키피디아]
만물에 질량을 부여한 신의 입자
표준 모형의 치킨과 디핑 소스들이 우주 어디에서도 맛있으려면 언제나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 또 아무리 멀리 있는 치킨도 날아가 버무릴 수 있으려면 디핑 소스들의 질량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광자와 달리 약력의 매개 입자는 질량이 있어 힘의 범위가 전자기력처럼 무한하지 못하고 끊어져버린다. 마치 장거리 연애를 하면 관계가 스스로 깨져버리기 쉬운 것처럼 말이다. 이걸 자발적 게이지 대칭성이 깨졌다고 표현하며 ‘힉스 메커니즘’이라고 한다. 힉스 입자에 대한 오해는 마치 이 입자가 신데렐라의 요정 할머니처럼 요술봉으로 다른 입자들에 질량을 부여했다고 믿는 것이다. 사실 질량을 부여한 건 힉스 입자가 아니라 힉스 작용의 원리인 힉스 메커니즘이고, 힉스 입자는 힉스 메커니즘이 일어났다는 명백한 증거다.이곳을 서울지하철 신도림역이라고 가정해보자. 사람이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2호선을 갈아타러 가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이 아이유라면 어떨까. 날씬하기에 빠르게 지하철을 탈 수 있을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녀를 알아본 사람들이 사인을 요청할 테고, 아마 지하철을 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인기가 많아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많이 할수록 느리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느리게 만드는 작용을 힉스 메커니즘이라고 하며, 이 작용이 일어나는 신도림역을 힉스장이라 부른다.
물론 힉스장은 우주 전체에 퍼져 있으며 틈만 나면 물질과 상호작용을 한다. 인기가 많을수록 더 많은 상호작용을 하는데, 이런 물질을 우리는 질량이 크다고 인지하는 것이다. 질량이 크기 때문에 무겁고, 그래서 밀어도 꿈쩍하지 않는 게 아니라, 미는 대상이 힉스장과 상호작용을 많이 할수록 미는 힘에 대해 더욱 강하게 저항하며, 이때 질량이라는 물질 고유의 물리량을 크다고 정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힉스장과 상호작용을 전혀 하지 않는 입자는 어떻게 될까. 공기나 병풍급으로 인기가 없어 존재감이 제로(0)인 안타까운 입자가 바로 광자, 빛이다. 실제로 빛은 힉스장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기 때문에 질량이 없고, 언제나 우주 공간에서 최대 속도로 날아다닐 수 있다. 힉스 메커니즘을 만드는 힘은 아주 짧은 거리에서만 작용하기에 거대한 우리는 이걸 중력처럼 직접 느낄 수는 없다. 힉스 입자는 힉스장과 힉스 메커니즘의 유일한 증거였으며, 혹시 이게 존재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모든 발견은 소설 속 이야기에 불과했다.
집에서 가정식 치킨을 요리해 먹기로 마음먹었다면 적어도 곧 먹게 될 치킨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는 있어야 한다. 그런데 밀가루나 식용유를 얼마나 써야 하는지는 둘째 치고, 가정식 치킨이라는 게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미국 실험물리학자 리언 레더먼 박사는 힉스 입자에 관한 책을 쓰는 과정에서 하도 발견이 안 되니 책 제목에 ‘빌어먹을 입자(goddamn particle)’라는 욕을 적기까지 했다. 그래도 과학책인데 욕설은 심하다고 판단한 출판사 측은 제목 뒷부분을 신의 입자(god particle)로 수정했고, 한때 바뀐 제목 때문에 기독교에서 힉스 입자가 신의 존재를 증명할 것이라고 오해한 적도 있다.
난리통 속에서 힉스 입자는 더욱 유명해졌지만 찾을 방법이 없었다. 서부의 두 총잡이가 마주 보고 쏜 총알을 정확히 부딪치게 하는 것처럼, 입자 두 개를 빠르게 가속해 충돌하게 한다는 비현실적인 아이디어만 있었다. 심지어 이 연구는 부딪친 뒤 부서져 나오는 모든 입자의 흔적을 분석해야 하는데, 그 파편이 셀 수 없이 많고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게 확실했다. 특히 가속기 규모가 클수록 높은 에너지의 입자를 얻을 수 있어, 목표인 힉스 입자를 찾기 위해서는 이론적으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입자 가속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힉스 입자
1987년 미국이 강력한 자본을 바탕으로 내놓은 ‘초전도 초가속기’ 프로젝트는 진행 도중 예산 삭감으로 중단됐다. 11년 후 유럽입자물리연구소는 스위스 제네바에 ‘대형 강입자 가속기’ 건설을 시작했다. 둘레 길이는 초전도 초가속기보다 3분의 1이나 줄었지만, 수천 개의 초전도자석을 이용해 온도를 극저온으로 낮춰 작지만 빠른 가속이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2008년 9월 10일 드디어 인류 최대의 가속기가 첫 가동을 시작했고, 영국 방송사 BBC는 이날을 ‘빅뱅의 날’이라고 보도했다. 세상이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실험 중단을 요구하는 고소장이 접수되거나 자살하는 사람까지 나왔다. 실험도 순탄치 않았다. 전원을 넣은 지 열흘 만에 폭발로 가동을 중지했고, 1년간 수리해 겨우 다시 가동할 수 있었다.미국 실험물리학자인 리언 레더먼 박사. [미국 에너지부 제공]
최초로 힉스 입자의 존재를 추측한 세 사람 중 이미 타계한 로버트 브라우트를 제외한 프랑수 프랑수아 앙글레르와 피터 힉스 박사에게 2013년 노벨물리학상의 영예가 돌아갔다. 하지만 여전히 표준 모형은 중성미자의 질량이나 중력을 설명하지 못한다. 암흑물질이나 암흑에너지의 존재 역시 마찬가지다. 아직 불완전한 모형에 대해 추가로 알아야 할 것이 많이 남아 있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것을 쫓는 과학자들의 노력은 더 위대한 가속기의 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치킨은 살 안 쪄요. 살은 내가 쪄요’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우주를 이루는 다양한 종류의 치킨과 디핑 소스를 이해하고 있다면 이제 제대로 응용할 때다. 치킨은 살 안 찐다. 그저 나를 힉스장과 활발하게 상호작용하는 인기인으로 만들어줄 뿐이다. 신도림역의 아이유처럼 말이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먹자. 맛있으니까 어쩔 수 없다.
궤도_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