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4

..

마음 떠나고 몸은 사리고…

한나라당 개혁파 신당 합류에 시큰둥 … 보수·진보가 세력 재편 땐 급류 탈 가능성도

  •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입력2003-05-09 11:1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마음 떠나고 몸은 사리고…

    한나라당 개혁파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5월2일 ‘고영구 국정원장 사퇴 권고 결의안’ 채택에 반발해 기자회견 중인 개혁파 의원들.

    민주당 신주류가 주도하는 신당이 명실상부한 전국적 개혁정당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의식이 필요하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신당 합류가 그것. 개혁세력이 지역을 떠나 연대해 신당을 창당했다는 점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데 한나라당 개혁파의 합류만큼 효과적인 이벤트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신당 논의가 구체화할수록 한나라당 개혁파는 오히려 몸을 사리고 있다. “지금 같아서는 신당에 합류하기가 어렵다”는 게 공통된 목소리다. 한나라당 개혁파 가운데 가장 분명한 목소리를 내는 안영근 의원마저도 “민주당이 지금 하고 있는 신당작업은 정책과 노선에 따른 정계개편이 아닌, ‘4·24’ 재·보궐선거 패배에서 비롯된 불가피한 선택이다. 사실상 민주당의 리모델링 아니냐”고 평가했다.

    국정원장 사퇴 권고 결의안 놓고 지도부와 갈등

    한나라당 개혁파 가운데는 전국구 김홍신 의원을 제외한 대다수가 안의원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한 개혁파 의원은 “힘들더라도 지금은 당내 개혁에 힘을 쏟을 때”라고 말했다. “기회는 언제고 오는데 철새라는 소리 들으며 굳이 지금 움직일 필요가 있느냐”는 설명이다.

    유시민 의원의 당선을 계기로 정계개편의 또 다른 진원지로 떠오른 개혁국민정당의 시각도 한나라당 개혁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개혁정당의 한 관계자는 “지금 하고 있는 민주당의 신당 창당 움직임은 우리가 예상한 것과 전혀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현역의원 70% 이상이 참가하는 신당은 말이 신당이지 당명 변경 아니냐”는 것이다.



    이처럼 한나라당과 개혁정당의 ‘잠재적 동지’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까닭에 민주당의 신당 논의는 적어도 몇 달간은 민주당 내부의 논쟁에 머물 전망이다. 그렇지만 민주당의 신당 논의가 일단 보수, 진보 간 세력 재편을 통한 정계개편으로 가닥을 잡을 경우 상황이 급진전할 가능성도 높다. 그 가장 유력한 근거는 한나라당 일부 개혁파 의원의 경우 ‘마음은 이미 한나라당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당내에서는 김홍신 이우재 안영근 김부겸 서상섭 김영춘 의원 등을 ‘마음이 떠난’ 의원으로 분류하고 있다. 동료의원에 대한 예의상 말을 삼가던 한나라당 보수파 의원들도 최근에는 이들에게 노골적으로 “당을 떠나달라”고 말하고 있다. 유시민씨 후원회에 참석해 지지발언을 한 김홍신 의원에 대해서는 박종희 대변인이 직접 나서 “김의원의 탈당이 우리의 당론”이라는 논평을 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개혁파 의원들은 최근 한나라당 주류인 영남 출신 의원들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어왔다. 4월30일 안영근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고영구 국가정보원장 임명 문제를 두고 정형근 의원과 한바탕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5월1일 한나라당이 소속 의원 전원의 이름으로 국회에 ‘국정원장 사퇴 권고 결의안’을 제출하자 개혁성향 의원들이 집단 반발하고 나섰다. 이부영 김부겸 안영근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당에서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결의안을 냈다”며 즉각 철회와 지도부의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이 발표한 성명서에는 김영춘, 김홍신, 서상섭, 이우재 의원도 서명했다. 같은 날 김부겸 김영춘 의원도 방송 등에 출연해 각각 당 개혁을 강도 높게 요구했다.

    한나라당 개혁파 진영에서는 한나라당 내 영남 세력이 요즘 들어 부쩍 이념 공세를 펼치며 개혁파를 몰아붙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본다.

    안영근 의원은 “‘4·24’ 재·보궐선거 결과가 한나라당의 보수세력에게 자신감을 안겨준 것 같다”면서 “최근 수구적 발언을 하는 이들 대부분이 영남 출신 의원들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즉 내년 총선을 앞두고 영남의원의 ‘선명성 경쟁’이 계속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마음 떠나고 몸은 사리고…

    남경필 의원(가운데)의 변신이 화제다. 대선 전까지와 달리 당내 개혁을 주장하고 나서 관심을 끈다. 사진은 남의원이 공동회장으로 있는 ‘미래연대’의 기자회견 모습.

    하지만 한편에서는 “당장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나라당 개혁파의 선택의 폭이 넓어질 것”이라는 낙관론도 흘러나온다. 6월17일로 예정된 한나라당 전당대회가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개혁파 진영의 한 인사는 “지금 당권경쟁이 무한대결 양상을 띠고 있다. 23만명 대의원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고 투표율도 형편없이 낮을 것 같다. 따라서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세력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며 “만약 당이 상층부에서 분열한다면 개혁파들의 선택에도 여유가 생길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 다른 인사는 “비록 보수정당이지만 수도권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바람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남경필 의원의 변화를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남의원은 386세대지만 여느 386과는 성장배경이 확연히 다른 인물이다.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았고 정치에 입문하기 전까지 해외 유학중이었다. 그는 대선 전까지만 해도 당의 보수적 입장을 대변하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최근 당 개혁을 요구하는 주요 인물로 부각했다. 그의 선택은 곧 한나라당 수도권 의원들 사이의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런 이유를 근거로 한나라당의 변화는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갈수록 힘을 얻어가고 있다.

    한창 들끓는 민주당의 상황도 흥미롭지만 한나라당에서 일고 있는 변화의 바람도 눈여겨봐야 할 듯하다. 과연 민주당 발(發) 정계개편의 파도는 한나라당과 개혁정당을 덮치는 해일로 변할 수 있을까. 세간의 관심이 한나라당과 주변세력으로 모아지고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