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 전 문화관광부 장관.
그런 그가 최근 신당 추진작업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고, 노무현 대통령과 면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치행보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서울대 특강에서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비교’ 차원에서 과연 어떤 소신을 밝힐지 관심이 모아졌다.
“장관은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과 이념, 가치관에 동의하는 사람, 운명을 같이할 사람이어야 한다. 당연한 것 같지만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DJP연합으로 인해 그렇지 못해 폐해가 컸다. 대통령과 장관, 장관들끼리도 의사소통이 잘 돼야 국정운영이 잘 된다. 또 대통령의 권력은 장관들에게 나눠줄수록 커진다.” 아울러 참여정부의 장관들에 대해 “대부분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는 분들로, 요즘 말대로 ‘코드’가 맞다. 일부는 파격이라고 하지만 우리 사회의 변화를 위한 과정이라고 본다”고 치켜세웠다. 특히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지낸 경험을 토대로 장관의 역할을 ‘택시기사’에 비유한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
“훌륭한 기사는 항상 지름길을 숙지하고 있어 손님에게 길을 묻지 않는다. 그런데 장관들은 대통령에게 너무 많은 것을 묻는다. 청계천으로 갈까요, 을지로로 갈까요 하는 식으로 대통령에게 일일이 물어서는 곤란하다.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 미루겠다는 뜻이다. 장관들이 보고서 앞 장에 대통령 사인을 요청하는 관행이 있는데, 그렇게 하면 보고서 내용이 마치 대통령의 지시사항인 것처럼 되어버린다.”
그는 청와대 비서실이 작은 내각처럼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도 했다. “청와대 수석들은 결재권이 없다. 그런데 마치 대통령의 뜻을 대변하는 양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다가 결과가 잘못돼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비서관 가운데 1년 넘게 대통령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도 허다하다. 한번은 문화부 장관 시절 모 청와대 수석으로부터 ‘대통령을 만나게 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도 있다. 현 청와대 조직의 특징은 부처별 담당 수석이 없다는 것이다. 정책수석이 각 부처에서 올라온 안을 점검하는 정도인데 정부 운영 형태에서 보면 큰 변화다.”
문화부 장관 시절 겪었던 언론사 세무조사 파동에 대해서는 “세무조사는 국세청의 일상적 세무행정일 뿐이다. 기업으로서의 언론은 거래행위가 공정해야 하며, 내야 할 세금을 다 내고 나면 언론 자유의 영역은 오히려 확장된다”고 원칙론을 강조한 뒤 “대통령이 지나치게 기사에 민감하면 장관들이 언론을 무서워하고, 언론에 잘 보이려 하게 된다”며 정부와 언론이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전 장관은 같은 날 예정된 노무현 대통령의 ‘100분 토론’을 의식한 듯 TV토론에 얽힌 에피소드를 소개하기도 했다. “후보시절 노대통령이 TV토론을 앞두고 불쑥 찾아왔다. 분장과 코디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서 ‘토론에선 정책과 관련해 정확한 의견만 제시하면 된다’고 했더니 노후보가 ‘내 생각과 같다’며 매우 흡족해했다.” 김 전 장관은 노대통령이 평검사와의 대화 때 ‘토론의 달인’으로 알려졌지만 결코 기교로 토론하는 분이 아니라고 했다. “대선후보 3자 토론이 시작되기 몇 시간 전 한 수행비서가 내게 쪽지를 가져왔다. 오늘 나올 예상문제라는 것이다. 그런 중요한 내용을 후보에게 직접 드려야지 왜 내게 가져왔느냐고 했더니 수행비서가 ‘몰래 빼왔다는 사실을 알면 혼납니다’고 해서 크게 놀랐다. 주위사람들에게 그런 모습으로 인식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했겠는가. 그런 원칙주의자가 바로 노대통령이다.”
120분을 꽉 채운 강연이 끝난 후 신당 창당에 관한 질문을 받자 김 전 장관은 “발전적 해체 후 가급적 많은 사람을 아우를 수 있는 신당을 창당해야 한다. 노대통령을 만난 직후라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것 아니냐고 추측하는데 전적으로 김한길의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이제는 참모나 행정가가 아니라 내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으로 살고 싶다”며 내년 총선 출마 의지를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