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9일 현재 충북 영동군의 수해복구사업 진척률은 26.9%. 영동군측이 복구공사 발주 과정에서 애초 제시한 기준(아래)을 임의로 어기고 일부 업체에 특혜를 베풀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9월 태풍 루사로 집을 잃은 충북 영동군 영동읍 예전리 주민 박모씨(65)는 수해복구사업이 지지부진해 아직도 시름에 잠겨 있다. 8개월째 컨테이너 생활을 하고 있는 박씨는 5월1일 “창문이 하나밖에 없는 컨테이너가 온종일 햇볕에 달궈지면 저녁에도 열기가 식지 않아 삶기는 것 같다”며 하루빨리 컨테이너 생활을 정리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올 봄 유난히 잦은 비와 복구공사 발주 과정에서 생긴 여러 가지 잡음 때문에 공사가 계속 늦어져 그가 언제 새 집에 들어갈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없는 실정이다. 특히 이곳 예전리는 수해 당시 30여 가구가 모조리 물에 쓸려나가 10억6000만원대의 마을 전체 기반사업을 시작해야 개별 주택공사에 착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영동군이 이 공사를 외지업체에 발주한 것에 영동군 내 일부 건설업자들이 반발하는 바람에 공사는 예정보다 2~3주나 더 걸렸다. 신속한 복구를 위해 외지업체에 맡겼다는 군측의 해명이 무색할 정도다.
지난해 수해복구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올해 장마를 맞게 될 처지의 사람들은 비단 예전리 사람들만은 아니다. 영동군(군수 손문주)에 따르면 4월29일 현재 도로, 교량, 하천 등 전체 수해복구공사 588곳 가운데 158곳(26.9%)만 완공됐고 나머지 430곳은 전체 공정의 절반에도 못 미쳐 장마철 이전 완공이 불투명하다. 주택복구는 전체 275채의 재건축 대상 주택 가운데 31채(11.3%)가 공사가 마무리되지 못한 상태다.
430곳 장마철 이전 완공 불투명
지난해 집중적인 수해 피해를 겪은 김천 강릉 동해 등도 우기 전에 복구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발을 동동거리고 있지만 영동군의 상황은 심각한 수준이다. 영동군의회는 4월 말 수해복구 현장을 조사한 뒤 “일부 사업장의 경우 공사기간 안에 완공이 어려워 장마철에 재발이 우려되거나, 예산부족으로 완벽한 복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시급한 보완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태풍 루사가 관통한 뒤 영동지역은 9명이 숨지거나 실종되고 270가구 3559명의 이재민과 1395억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피해복구 금액은 모두 2340억6700만원(공공시설 2016억4100만원, 사유시설 324억2600만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충북도에서 집행하는 것을 제외하고 영동군이 449건, 710억5000만원에 이르는 수해복구공사를 발주하면서 애초 밝혔던 수의계약 기준을 무시하고 임의적인 잣대를 기준으로 공사를 나눠줘 물의를 빚고 있다.
영동군은 애초 3억~7억원 규모의 종합적인 일반공사와 2억~5억원 규모의 철근콘크리트나 상·하수도 등 전문공사를 수주하려면 지난해 9월30일 이전에 창업한 영동군 내 업체로 제한해 견적입찰을 하고, 그 이하는 2개 업체 이상이 미리 비용을 제출하는 견적입찰, 이상은 도내업체로 제한해 공개 입찰하기로 정했다. 이 밖에 수해 응급복구에 장비를 지원한 외지업체에 대해서는 지역업체를 우선 배정한 뒤 일정 규모의 공사를 나눠주기로 했다.
그러나 영동군은 공사를 따내기 위해 지난해 9월30일 이후 창업했거나 영동지역으로 주소를 옮긴 23개 업체에 대해 모두 41억4200만원대의 공사를 수의계약 형식으로 발주했다. 이에 따라 9월30일 이후 주소지를 옮긴 S토건(4억원), D개발(4억1400만원), K개발(4억3200만원), S건설(4억7600만원), D건설(5억9500만원), N개발(6억800만원) 등이 공사를 수주했다.
충북 영동읍 예전리에는 수해를 입은 지 8개월이 지난 지금도 30여 가구가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고 있다.
심지어 한 업체가 여러 공사를 맡아 공사가 늦어진 경우도 있고, 어떤 업체는 감당할 수가 없다며 공사를 반납하기도 했다. 사업주가 한 가족인 O건설, D건설의 경우 모두 6건을 수주했고 2건을 다시 반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혼선 때문에 복구공사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또한 영동군은 지난해 11월부터 올 3월까지 하천복구에 필요한 돌망태, 돌망태형옹벽, 용접철망 등 관급자재 45억원어치를 구입하면서 KS품질을 획득하고 조달청의 조달품목으로도 등록돼 있는 영동군 내의 제품을 구입하지 않고 충남 금산군 업체의 제품을 구입해 의혹을 사고 있다. 한 건설업체 사장은 “군청이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외치면서 군 내의 더 나은 기업을 외면하고 외부업체에 혜택을 줬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검·경 뒤늦게 사태 파악에 나서
더욱이 영동지역 건설업체들은 수익성이 높고 일하기 쉬운 공사는 외지업체에, 일하기 어렵고 규모도 작은 공사는 지역업체에 배분했다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실제로 수의계약 공사 425건 가운데 지역업체에 389건(427억원), 외지업체에 36건(109억원)이 돌아가 1건당 공사액을 따지면 지역은 1억900만원인 데 반해 외지는 3억300만원이나 된다.
이번에 소규모 공사를 수주했다가 작업환경이 나빠 공사권을 군에 반납한 한 업자는 “이번 일이 있은 뒤 군민들의 정서가 갈라지고, 업자들이나 공무원들은 줄서기에 바쁘다는 얘기가 돌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한 군의원이 30억원대의 복구공사를 따내 공정성 시비가 일고 있다. 부인과 친인척 명의로 된 사업체를 갖고 있는 이 의원은 군의원이라는 유리한 지위를 이용해 복구공사를 따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처럼 복마전과도 같은 수해복구사업 수주 해프닝으로 인해 지역민들의 민심이 이반하고 있지만 영동군은 이를 은폐하는 데만 급급하다. 김동윤 부군수는 “군내에 일정한 수주 능력을 갖춘 업체들도 있지만 많은 공사가 이들의 능력을 넘어서고, 공사를 6월 말 이전에 끝내기 위해 애초 정한 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었다”며 “다른 수해지역에 비해 관내에 더 많이 배려했다”고 말했다.
또 애초 제시한 기준과 거리가 먼 업체임에도 선거 때 손군수를 도와줬다는 이유로 공사를 따낸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은 D건설 등 4개 업체에 대해서는 “특혜를 베푼 적 없고, 비교적 공정성을 유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혹이 증폭되면서 군의회, 검찰, 경찰이 뒤늦게 사태 파악에 나섰다. 영동군의회의 한 의원은 “기준을 임의로 바꾼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5월20일께 있을 예정인 군정 질의에서 이에 대한 군청의 명확한 답변을 요구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또 청주지검 영동지청의 한 검사는 “지방지에 단체장의 비리나 특혜 의혹에 대한 기사가 나와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있지만 뚜렷한 혐의점을 발견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충북경찰청의 공직비리 담당자는 “수해복구비의 유용 문제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영동군의 관련 첩보를 입수했다”며 “전남 고흥에서도 태풍 루사의 피해를 상부기관에 허위 보고해 사업비 8억원을 부당 배정받은 경우가 있는 등 수해복구사업과 관련된 부정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응급복구라는 명목으로 행해지는 지자체의 수의계약제도가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공사계약 과정에 대한 감독이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것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결국 피해는 수재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