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2월, 하이닉스의 전신 현대전자는 3년 전에 발행한 회사채 만기로 파산 일보 직전에 놓였다. 도무지 회생할 것 같지 않았던 이 회사의 목숨을 건진 것은 이른바 ‘회사채 신속 인수제도’. 채권단인 산업은행이 현대전자의 회사채를 인수해준 것이다. 말 그대로 현대전자의 ‘숨통’을 터주기 위한 ‘극약처방’이었다.
하지만 극약을 마신 ‘진짜 효과’는 올 봄에 나타났다. 미국의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사를 비롯한 각국의 반도체 업체들이 “산업은행의 당시 회사채 인수가 세계무역기구(WTO) 보조금협정에 위배된다”며 하이닉스 제품에 대해 고율의 상계관세를 부과하라고 요구한 것. 미국이 57.37%라는 고율의 상계관세 예비판정조치를 내리자 4월24일 유럽연합(EU)도 기다렸다는 듯 그 뒤를 따랐고, 대만과 일본의 상계관세 부과도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다.
하이닉스 사건 적극 대응·대기업 지원정책 재정비 필요
WTO는 공정한 국제무역을 위해 자국 내 특정기업에 대한 회원국들의 보조금 지원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 원칙을 어긴 데 대한 제재조치가 보조금을 지급한 국가의 해당 기업 제품에 대해 보조금만큼의 상계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계관세를 부과하려면 피해국의 주장이 WTO 보조금협정상의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WTO 보조금협정에는 ‘보조금이란 정부 혹은 공공기관에 의한 특정 산업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재정적 기여’라고 정의돼 있다. 따라서 보조금협정 위반이 성립되려면 우선 해당 조치가 정부의 조치여야 하고 그 대상이 특정성이 있어야 한다.
결국 반도체 산업 경쟁국들이 하이닉스 제품에 대해 줄줄이 상계관세를 부과하려는 것은 하이닉스에 대한 산업은행의 지원을 정부 차원의 보조금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과연 산업은행의 하이닉스에 대한 회사채 인수 조치는 WTO 보조금협정상에 금지된 정부보조금에 해당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미국과 EU의 공격 논리는 “산업은행의 회사채 인수금리가 당시 시장금리보다 낮아 정부보조금과 마찬가지며 회사채 인수제도는 현대전자라는 특정회사를 살리기 위한 특혜였다”(미국)거나, “특별법으로 설립된 공적 기관인 산업은행의 회사채 인수는 정상적인 일반 금융기관이라면 엄두를 내지 못할 조치이므로 ‘정부의 조치’로 보아야 하고, 회사채 인수제도에 따른 인수 총액의 41%가 하이닉스에 집중됐으므로 특정성이 있다”(EU)는 것.
반면 한국측은 “회사채 신속인수조치가 특정 회사를 위한 조치가 아니라 당시 회사채 차환 발행이 어려운 신용등급 A 이하의 기업 전부를 대상으로 하였고, 회사채 인수 금리 수준도 시장금리와 거의 비슷한 연 12.81%였으므로 하이닉스에 특혜를 준 것은 아니다”고 반박하고 있다. 그리고 “은행에 대한 정부 지분은 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일시적 현상이며 공적자금 투입 은행에 대한 경영 개입을 막기 위해 총리훈령까지 마련했다”고 EU측의 주장을 일축했다. 즉 하이닉스에 대한 금융 지원은 전적으로 은행들이 시장원리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한 상업적 판단이지 공적보조나 정부보조금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측의 이런 공박이 설득력을 얻기는 힘들어 보인다. 전체 지분을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산업은행의 회사채 인수는 누가 보더라도 ‘정부의 지원’으로 의심받을 여지가 충분한 까닭이다.
그렇다면 빠져나갈 구멍은 어디에도 없는 것일까. 확실한 답은 없지만 타산지석은 분명 있다. 미국의 마이크론이 1995년 8월 삼성전자를 상대로 낸 반덤핑 제소 사건이 바로 그것. 미국은 당시 삼성전자에 70%의 관세를 부과했으나 종국에는 1% 미만으로 조정됐다. 결국 한국이 합리적인 논리를 개발하고, 적극적으로 대응만 한다면 미국이나 EU 등의 상계관세 예비판정을 뒤집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셈이다.
최근 미국과 EU는 WTO DDA(도하개발아젠다) 협상에서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국가적 관심사 중심의 금융행위나 간접보조금을 규제하는 보조금 정책의 개선을 제안했다. 이는 누가 보더라도 우리를 겨냥한 제안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정부는 상계관세 부과라는 ‘부메랑’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하이닉스 사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한편 WTO 보조금협정을 위반하지 않도록 향후 대기업 지원정책을 재정비해, 또 다른 산업 분야로 상계관세 부과조치가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극약을 마신 ‘진짜 효과’는 올 봄에 나타났다. 미국의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사를 비롯한 각국의 반도체 업체들이 “산업은행의 당시 회사채 인수가 세계무역기구(WTO) 보조금협정에 위배된다”며 하이닉스 제품에 대해 고율의 상계관세를 부과하라고 요구한 것. 미국이 57.37%라는 고율의 상계관세 예비판정조치를 내리자 4월24일 유럽연합(EU)도 기다렸다는 듯 그 뒤를 따랐고, 대만과 일본의 상계관세 부과도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다.
하이닉스 사건 적극 대응·대기업 지원정책 재정비 필요
WTO는 공정한 국제무역을 위해 자국 내 특정기업에 대한 회원국들의 보조금 지원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 원칙을 어긴 데 대한 제재조치가 보조금을 지급한 국가의 해당 기업 제품에 대해 보조금만큼의 상계관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계관세를 부과하려면 피해국의 주장이 WTO 보조금협정상의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WTO 보조금협정에는 ‘보조금이란 정부 혹은 공공기관에 의한 특정 산업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재정적 기여’라고 정의돼 있다. 따라서 보조금협정 위반이 성립되려면 우선 해당 조치가 정부의 조치여야 하고 그 대상이 특정성이 있어야 한다.
결국 반도체 산업 경쟁국들이 하이닉스 제품에 대해 줄줄이 상계관세를 부과하려는 것은 하이닉스에 대한 산업은행의 지원을 정부 차원의 보조금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과연 산업은행의 하이닉스에 대한 회사채 인수 조치는 WTO 보조금협정상에 금지된 정부보조금에 해당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미국과 EU의 공격 논리는 “산업은행의 회사채 인수금리가 당시 시장금리보다 낮아 정부보조금과 마찬가지며 회사채 인수제도는 현대전자라는 특정회사를 살리기 위한 특혜였다”(미국)거나, “특별법으로 설립된 공적 기관인 산업은행의 회사채 인수는 정상적인 일반 금융기관이라면 엄두를 내지 못할 조치이므로 ‘정부의 조치’로 보아야 하고, 회사채 인수제도에 따른 인수 총액의 41%가 하이닉스에 집중됐으므로 특정성이 있다”(EU)는 것.
반면 한국측은 “회사채 신속인수조치가 특정 회사를 위한 조치가 아니라 당시 회사채 차환 발행이 어려운 신용등급 A 이하의 기업 전부를 대상으로 하였고, 회사채 인수 금리 수준도 시장금리와 거의 비슷한 연 12.81%였으므로 하이닉스에 특혜를 준 것은 아니다”고 반박하고 있다. 그리고 “은행에 대한 정부 지분은 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일시적 현상이며 공적자금 투입 은행에 대한 경영 개입을 막기 위해 총리훈령까지 마련했다”고 EU측의 주장을 일축했다. 즉 하이닉스에 대한 금융 지원은 전적으로 은행들이 시장원리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한 상업적 판단이지 공적보조나 정부보조금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측의 이런 공박이 설득력을 얻기는 힘들어 보인다. 전체 지분을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산업은행의 회사채 인수는 누가 보더라도 ‘정부의 지원’으로 의심받을 여지가 충분한 까닭이다.
그렇다면 빠져나갈 구멍은 어디에도 없는 것일까. 확실한 답은 없지만 타산지석은 분명 있다. 미국의 마이크론이 1995년 8월 삼성전자를 상대로 낸 반덤핑 제소 사건이 바로 그것. 미국은 당시 삼성전자에 70%의 관세를 부과했으나 종국에는 1% 미만으로 조정됐다. 결국 한국이 합리적인 논리를 개발하고, 적극적으로 대응만 한다면 미국이나 EU 등의 상계관세 예비판정을 뒤집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셈이다.
최근 미국과 EU는 WTO DDA(도하개발아젠다) 협상에서 회원국들을 대상으로 국가적 관심사 중심의 금융행위나 간접보조금을 규제하는 보조금 정책의 개선을 제안했다. 이는 누가 보더라도 우리를 겨냥한 제안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정부는 상계관세 부과라는 ‘부메랑’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하이닉스 사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한편 WTO 보조금협정을 위반하지 않도록 향후 대기업 지원정책을 재정비해, 또 다른 산업 분야로 상계관세 부과조치가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