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련사에게 신뢰와 우정을 느끼지 못하면 범고래는 움직이지 않는다.
미국 샌디에이고나 올랜도의 ‘시월드(Sea World)’에서 이런 장관을 목격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탄성을 지른 뒤 의구심을 갖게 된다. ‘도대체 어떻게 훈련을 했기에 포악한 범고래가 저런 멋진 쇼를 해내는 걸까.’ 그러고 나서 사람들은 생각한다. ‘물개나 돌고래까지 잡아먹는 범고래가 생선 몇 마리에 저렇게까지 양순해진 걸 보면 분명 엄청 못 살게 했을 거야.’ ‘혹독한 훈련은 기본이고 채찍질까지 했을 게 분명해.’
그러나 사실은 관객들의 이런 생각과는 정반대였다. 거대한 범고래가 3m나 뛰어오르고 조련사를 태우고 물 위를 질주하는 것은 ‘채찍’의 힘이 아니라 ‘당근’의 힘, 즉 칭찬의 힘이었다.
4월30일 한국 블랜처드컨설팅이 주최한 ‘칭찬경영’ 강연회장. 미리 준비한 200석의 자리가 부족해 10∼20명이 선 채로 강연을 듣고 있었다.
이날 강연에 나선 조천제 박사의 강연 주제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이 주제는 얼마 전 조박사가 번역해 펴낸 미국의 경영 컨설턴트 켄 블랜처드 박사의 저서 제목이기도 하다.
불황기 적합한 ‘인사관리’에 주목
켄 블랜처드 박사가 경영학적 관점에서 관찰한 바에 따르면 시월드의 조련사들이 포악한 범고래를 자유자재로 훈련할 수 있었던 핵심요소는 바로 ‘신뢰와 우정’이다. 범고래들은 조련사들이 멋진 공연을 위해 자신들에게 혹독한 벌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또 먹을 것을 미끼로 훈련을 강요하지 않으리라는 신뢰도 갖고 있다. 조련사들은 동물들을 훈련하는 데 훨씬 효율적일 것으로 보이는 ‘체벌’ 대신 ‘칭찬’의 힘을 택한 것이다. 불황기에 적합한 인사관리 방식을 놓고 고민하는 기업체 인사 및 교육 담당자들이 이런 범고래 훈련 방식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조박사는 처음부터 아예 딱딱한 강의 방식을 버리고 청중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을 택했다. 기업의 조직관리나 일상생활에서 ‘칭찬’의 위력을 경험했던 사람들을 연단 앞으로 불러냈다. 처음에는 주뼛주뼛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손을 들고 앞으로 나와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자동차회사 판매교육팀장은 칭찬을 통해 영업사원들의 사기를 진작해 판매고를 높일 수 있었던 경험을 이야기했고 교회계통의 연구소에서 나온 한 젊은이는 소장이 자신의 휴대전화로 보내준 칭찬 메시지에 감동받았던 사연을 상기된 얼굴로 털어놓았다. 이 젊은이가 상사로부터 받은 칭찬 메시지는 그리 대단할 것도 없었다. “난 자네와 밥을 먹을 때면 밥맛이 좋아져.”
그러자 이번에는 인천에서 왔다는 한 중학교 교사가 학생의 수행평가 과제로 칭찬을 활용했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학생들에게 하루에 한 가지씩 부모님을 칭찬하게 했더니 처음에는 부모님들이 당황하고 어색해한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이내 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자녀들의 칭찬에 부모들이 변하기 시작했어요. 집에 일찍 들어오는 아버지들이 늘어났고 금갔던 가족 구성원들 사이가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칭찬의 힘이었습니다.”
한국 블랜처드컨설팅이 주최한 칭찬경영 프로그램 설명회(위). 최근 ‘팀워크 경영’과 ‘신바람 경영’을 앞세워 화제를 모으고 있는 책들.
최근 출판계에서도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경영서적들은 대부분 이러한 ‘칭찬경영’과 ‘팀워크 경영’을 주제로 한 것들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구조조정 과정을 겪으면서 기업 현장에서 칭찬이 사라진 지 오래다. 상사들의 잔소리는 갈수록 늘어가고 피말리는 실적 위주의 경쟁에서 이긴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이데올로기가 지배하기 시작했다. ‘팀워크 경영’은 ‘스타 경영’이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명함을 내밀기 힘들었다. 그러나 불황이 지속되면서 ‘채찍’보다는 ‘당근’의 힘에 주목하는 관리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무능? 그래도 칭찬이 필요하다”
2001년 켄 블랜처드 박사의 저서를 번역해 출간한 ‘겅호’는 지금까지 무려 30만부나 팔렸고 그해 11월 발간된 ‘하이파이브’는 지금까지 10만명의 독자들이 읽었다. ‘겅호’나 ‘하이파이브’ 역시 구성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관리자의 역할을 강조한 책들. ‘겅호(Gung Ho)’는 중국어 ‘공화(工和)’에서 나온 말로 ‘파이팅’처럼 구성원들에게 투지와 열정을 불어넣는 구호로 널리 쓰이고 있다. ‘겅호’는 다 쓰러져가는 공장의 공장장으로 새로 발령받은 한 관리자가 조직에 다시 열정을 불어넣는 과정을 동물들의 생존 방식에 비유해 보여주고 있다.
켄 블랜처드사의 부사장 중 한 명인 해리 폴이 공동저자로 참여해 ‘펄떡이는 물고기처럼’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한 ‘물고기(FISH!)’ 역시 미국 시애틀에 있는 파이크 플레이스 어시장 상인들의 사례를 통해 ‘재미있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펄떡이는 물고기처럼’ 역시 30만부 이상 팔렸다. 국민은행 우리은행 등 금융회사들과 유한킴벌리 한국코카콜라보틀링 등 외국계 합작회사들의 단체 구입 신청도 줄을 잇는다. 이들 기업들에서는 실제 칭찬경영이 생산 의욕 향상과 생산성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주변의 눈치만 살피며 퇴근시간만 기다리는 부하직원과 자신의 업무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실수를 연발하는 신입사원을 무조건 칭찬해야 하는가. 이런 부하직원들의 잘못을 따끔하게 혼내주지 못하는 상사는 오히려 무능한 상사가 아닌가. 그러나 ‘칭찬경영’의 전도사들이 내놓는 답은 “그래도 칭찬은 필요하다”다. 이들 전문가들은 부하직원이 어떤 분야에서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거나 좋은 실적을 내지 못하면 다른 과제를 부여한 뒤 그 분야에서의 선전에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켄 블랜처드 박사는 그러나 대부분의 조직 관리자들이 칭찬에 인색하다고 지적한다. 칭찬은커녕 일이 끝날 때까지 팔짱 낀 채 지켜보고만 있다가 결과를 놓고 나무라는 관리자들이 대부분이라는 것. 블랜처드 박사는 이런 관리방식을 ‘뒤통수 치기’라고 이름붙였다. 뒤통수 치기와 칭찬하기, 어느 것이 더 쉽고 효율적인 길인지에 대한 판단은 이제 관리자들에게 맡겨졌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된 칭찬경영 교과서의 원제목은 ‘You Excellent’다. 하지만 부하직원이 하나의 일을 멋지게 해냈을 때 ‘당신 최고야’라며 치켜세워줄 수 있는 상사가 과연 몇이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