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신주류 의원들이 4월29일 오전 여의도 한 호텔에서 조찬회동을 하고 신당 창당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민주당 신당 흐름이 급박하다. 최대 이슈는 개혁신당과 통합신당 가운데 어느 쪽으로 가닥을 잡느냐는 점이다. 신·구주류는 신당의 지향점을 놓고 대치중이다.
당 안팎의 개혁세력 결집 및 탈(脫)지역화를 내세운 신주류와 당내 통합에 무게중심을 둔 구주류의 노선 갈등은 이미 오래 전부터 본격화했다. 단일대오를 형성한 것처럼 보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신주류들도 ‘7인7색’으로 지향점이 다르다. 신당은 여권의 권력질서 재편을 전제한다. ‘3김 정치’가 막을 내리면서 생긴 힘의 공백지대를 선점하려는 시니어 그룹들은 기회를 낚아채기 위해 마른침을 삼킨다. 이는 곧바로 파워게임 양상으로 이어진다. 상대방을 비방하는 일도 눈에 띈다. 4월 말 한 초선 의원은 “A의원은 앞과 뒤가 다르다. 우리끼리 있을 때는 독자신당론을 내세우고, 언론에는 다른 계파도 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며 2중 플레이를 비난했다. 이를 지켜본 한 관계자는 “신당 창당이 마치 권력투쟁 같다”고 지적한다. 신당의 참여주체와 색깔, 방향 등을 둘러싼 파워게임은 이제 본격화하는 느낌이다.
비방전 조짐도 보여 … “신당 참여 마치 권력투쟁 같다”
5월1일, 민주당 정대철 대표는 처음으로 신당 추진 입장을 밝혔다. “정치개혁과 국민통합을 원하는 모든 세력과 함께 가는 신당은 국민적 요구이자, 시대적 요청”이라는 게 참여의 변이다. 그러나 이면을 흐르는 분위기는 표면적 명분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정동영 고문과 천정배 신기남 의원 등 신주류 소장파가 주도하는 신당정국에 대한 불안감이 엿보인다. 신당 창당의 주도세력인 50대 재선 의원들의 역할은 파격적이다. 특히 침묵을 깨고 ‘치고’ 나온 정고문의 행보가 두드러진다. 정고문은 ‘4·24’ 재·보선 패배 직후인 28일 밤, 전격적으로 신당 창당을 결의했다. 소장파 한 인사는 “이라크를 친 미국의 ‘충격과 공포’ 전략 같다”고 말했다. 정고문은 이날 신당 이슈를 선점했다. 그 주위로 신주류의 소장파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다.
신주류 중진 위기감 고조 … 강경파 견제 돌입
이 같은 외형적 흐름은 신주류 중진그룹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특히 신당의 색깔을 ‘개혁 신당’으로 못박은 점이 무엇보다 중진들을 긴장시킨다. 정고문은 “통합은 국민통합이어야지, 당내 통합은 아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때’가 묻은 구주류는 빼겠다는 뜻이다. 이들 생각대로 개혁 신당이 탄생하면 주도권이 젊은 강경파의 손에 넘어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여권은 물갈이라는 후폭풍을 피할 수 없다. 신주류 중진인 정대표로서는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상현 김원기 고문 등 다른 신주류 중진도 동병상련의 처지다. 정대표가 이들과 의견을 교환, 같은 고민을 확인했고 ‘고민’을 공유하자는 얘기도 나눴다. 이들은 회동 후 “모두 끌어안아야 분당이 안 된다”는 논리로 강경파 견제에 들어갔다. 이른바 통합신당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통합신당파와 개혁신당파의 피할 수 없는 전선이 형성된 것이다.
정대표와 김원기·김상현 고문 등은 앞으로 6인 중진회의에서 신당 추진의 방향을 잡아나갈 계획이다. 정대표 등 중진들은 구주류 핵심인 한화갑 전 대표와 박상천 최고위원 등에게도 SOS를 쳤다. 한 전 대표와 박 최고위원은 구주류 가운데 온건파로 분류되는 데다 ‘호남 대표성’을 갖고 있다.
정대표는 4월30일 밤 미국을 방문중인 한 전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신당 참여를 요청했다. 그 직후 조성준 배기운 조한천 김택기 고진부 정철기 의원 등 한 전 대표의 계보의원들은 모임을 갖고 신당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한화갑 전 대표가 악수하고 있다.
‘구악’에서 한순간에 신당 로드맵의 중심에 선 한 전 대표와 구주류 인사들은 통합신당에 귀를 기울인다. 신주류가 들고 나온 개혁과 통합이라는 명분을 거부하기도 어렵다. 한때 후단협, 중도파 모임 등을 통해 조직적으로 반대세력을 결집하려 했으나 명분과 세를 모두 뺏겨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5월 초 신주류 중진들을 중심으로 추진된 박상천 기준점에 이상기류가 발생했다. 신주류 핵심의원 10여명은 2일 조찬모임을 갖고 신당의 성격을 정치개혁과 국민통합으로 요약했다. 이해찬 의원은 신당을 ‘제4세대 정치의 구심체’라고 규정했다. 3김이 장악했던 구정치에서 탈피, 명실상부한 21세기형 새로운 정치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제4세대 정치에 숨은 함의는 구세력과의 차별화다. 이른바 3김과 그의 추종세력과는 같이할 수 없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강철 개혁특위 위원은 “통합신당으로 가는 일은 없다. 결국 의원들이 탈당해 밖에서 신당을 하는 걸로 결론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신기남 의원은 “모두가 참여한다면 ‘도로 민주당’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거를 사람은 걸러야 한다”고 말했다. 신주류 한 관계자는 “후보시절 노대통령이 자신이 집권 후 단행할 정개개편에 관해 ‘배신이 체질화된 사람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한 것을 떠올리면 신당 참여 인사들의 윤곽이 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모두 참여하면 ‘도로 민주당’ … 거를 사람 걸러야”
4월30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민주당 중도파 의원들이 신당 창당과 관련 입장을 조율하고 있다.
그러나 개혁신당 창당을 추진하고 있는 신주류측의 창당일정이 제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지도부 의사를 좌지우지하는 최고위원들이 신주류의 움직임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
의사결정 공식기구인 당무회의는 4분의 3이 동교동계 등 구주류 인사들이 장악하고 있다. 신당창당 추진기구를 구성하려면 민주당 지도부인 최고위원회의가 승인하거나 최고위원 전원이 사퇴해 당무회의로 결정권을 넘겨야 한다. 그러나 김태랑 박상천 이협 이용희 정균환 한광옥 최고위원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지금도 “나갈 테면 나가라”는 쪽이다. 최악의 경우 민주당 정통성을 확보한 채 호남을 기반으로 내년 총선을 준비하겠다는 복안이다.
조배숙 이재정 허운나 이미경 의원 등 신주류의 주류들이 전국구라는 점도 신주류의 또 다른 아킬레스건이다. 이들은 당을 뛰쳐나갈 경우 그날로 ‘전직 의원’으로 전락한다.
이런 흐름 속에 노대통령은 5월1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 “속은 뻔하다. 정치개혁의 분위기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개혁신당에 무게를 두는 발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