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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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먹는 대선 “실탄을 확보하라”

대선후보들 자금 조달 치열한 신경전 … “돈 안 드는 선거는 두고 봐야 할 일”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2-10-11 16: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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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먹는 대선  “실탄을 확보하라”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위쪽 사진 가운데)와 당직자들이 5월23일 서울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후원회에 참석. 모금함에 후원금을 넣고 있다. 2001년 6월 3일 방한한 비센터 폭스 멕시코 대통령(아래 사진 아래쪽에서 두번째)과 함께 울산 현대중공업을 방문한 정몽준 의원.

    대선후보가 굴리는 대선자금이 정치권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나라당 이회창, 민주당 노무현, 무소속 정몽준 후보는 “돈 안 드는 선거를 치르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두고 봐야 할 일”이라는 게 중론이다. 후보의 정치력은 한편에선 여론 지지율에서, 다른 한편에선 ‘돈’에서 나온다는 시각은 현실 정치권에서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수천억원의 자금이 투입되던 과거 대선 때에 비해 돈의 규모는 조금 작아지겠지만 역시 천문학적 대선자금이 들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대선 투표일을 70여일 앞둔 요즘 대선 자금 모금과 사용을 둘러싼 후보 측근과 의원들, 후보진영과 후보진영 간 신경전이 더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정몽준 후보는 “소속 의원들에게 정당 국고지원금을 모두 나눠주겠다”고 말했다. 정몽준신당이 원내교섭단체가 됐다는 가정하에 의원 1인당 대략 2억원대가 지급된다. 다른 정당에선 찾아볼 수 없는 특혜다.

    그러나 수도권 한 의원은 “그건 당연히 받는 거고”라면서 일단 접고 들어간다. 여기서부터 현역의원의 기대치와 정후보의 베팅액은 사뭇 다른 듯하다. 이 의원은 농담투로 “3억~5억원은 더 얹어준다면 모를까”라고 덧붙였다. 정후보 공보팀 박호진 보좌역은 “입당 조건으로 30억원을 요구하는 의원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정몽준 ‘한몫 기대치 수용 딜레마’

    “그럴 돈 없다”는 게 정후보측 공식 입장이다. 정후보 캠프는 행동으로 이를 보여줬다. 정후보 신당 입당 대가로 20억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면서 브로커 역할을 한 사람이 최근 경찰에 잡혔다. 정후보측 자원봉사자들이 자체 정보망을 동원해 이 사람을 붙잡아 경찰에 인계한 것이다.



    8월17일 정후보가 교보생명과 외환은행에서 현대중공업 주식을 담보로 510억원을 빌린 사실이 확인됐다. 정후보가 드디어 실탄의 위력을 보여주기 시작한 듯했으나 사실은 달랐다. 이 돈은 1990, 91년 정후보가 은행에서 빌린 개인 채무를 변제하는 데 모두 쓰였다.

    돈 먹는 대선  “실탄을 확보하라”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가운데)가 9월30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에서 지지자들이 모아준 젖금통을 들어 보이고 있다.

    정후보 캠프엔 12명의 특보를 포함해 50~ 60명이 선거운동을 돕고 있다. 박사 출신, 외국언론사 출신 등 고학력자가 많지만 ‘믿거나 말거나’ 모두 무보수 자원봉사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한 보좌역은 월 정기 주차요금 영수증을 꺼내 보였다. 차비 정도만 캠프에서 영수증 처리 해준다는 것이다.

    정후보의 현찰 동원력은 보증금 3억원, 월세 4000만원 규모의 사무실을 임대한 것에서 확인된다. 여의도에서도 비싼 가격이다. 정후보측은 마땅한 공간이 없어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 국회 주변 빌딩에 빈 사무실이 수두룩하다는 게 한 부동산업자의 얘기다.

    정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법정선거비용 정도만 쓰겠다고 한다. 300억원이 조금 넘는 액수다. 본인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은 이보다 적다고 한다. 지구당도 법정 최소 규모인 23개소만 설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 측근은 “현대중공업 주식 매각 등 정후보가 큰돈 만들 방법은 다양하다”며 여운을 남겼다. 정후보의 돈 씀씀이 스타일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정치권에는 “재벌2세 신당에 들어가면 한몫 벌 수 있겠다”는 기대치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돈 안 쓰는 재벌 2세로 밝혀진다면, 돈보다 더 매력적인 것을 내놓아야 지지자들을 모을 수 있다. 이것이 요즘 정후보의 딜레마다.

    지난해 10월6일 토요일 저녁 서울 강남구 포스코 사옥 내 중식당 휘닉스. 한나라당 의원 10여명의 저녁식사 자리에 이회창 당시 총재가 들렀다. 한 의원이 일어서서 이렇게 말했다. “만날 하던 말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총재가 대선에 나왔을 때 중앙당 돈을 기대하는 건 무리입니다. (이총재의 당선을 위해) 사비를 털어 5000만원 정도는 쓸 각오가 돼 있어야 합니다. 내가 1억원 낼 것을 이 자리에서 약속합니다.”

    그러자 곳곳에서 동참을 선언하는 의원들이 나왔다. 이 모임에 참석해 동참을 선언했던 한 의원을 최근 만나 “정말 낼 거냐”고 물었다. 이 의원은 “사비를 턴다는 말은 과장된 표현이었지만, 이후보 당선을 위해 기여하겠다”고 답했다. 김영일 사무총장의 측근은 “의원들에게 매월 중앙당 후원금이나 당비를 할당하느냐”는 질문에 “그런 일은 전혀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재력가 의원들은 대선에서 상당한 액수를 기여할 용의를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회창 ‘이미 확보(?) 느긋한 행보’

    한나라당은 추석 전 직원들 임금을 10% 인상한 데 이어 추석보너스 100%를 지급했다. 한나라당이 보유한 부동산 재산은 여의도 중앙당사와 천안연수원 등 1000억원대가 넘는다. 천안연수원은 지난해 이미 부동산 시장에 내놓은 상태로, 20여개 미국 부동산회사가 매각 의사를 타진해왔다고 한다.

    한 고위당직자는 “천안연수원은 시가 600억원쯤 되는데 400억원을 분할지급하겠다고 해서 거래가 성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권 잡은 뒤 팔면 제 값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느긋한 분위기다. 이재명 재정국장은 “연수원을 팔지 않고 선거를 치러야지”라고 말했다. 이러한 정황 때문에 한나라당은 이미 대선자금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확보해뒀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이후보 측근은 “부국팀(이후보 개인후원회)은 각계로부터 ‘정신적 후원’ 정도만 받고 있다”고 말했다. 돈 문제로 인한 시비가 이후보에게까지 연결되는 일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이후보 개인에게 들어온 후원금은 2억9000만원. 우연인지 의원 평균모금액 3억원과 거의 일치한다.

    이렇게 몸조심해도 대선 전까지 한나라당이 저절로 확보하게 되는 돈은 4·4 분기 국고보조금 30억원, 대선 국고보조금 124억원, 지방선거 국고보조금 250억원 중 쓰고 남은 돈, 올해 초 거둬들였다고 발표한 후원금 72억원 중 일부 등이 있다. 수백억원을 거둘 수 있는 후원회를 한 번 더 열 수도 있다. 법정선거비용 340억원 안팎은 무난히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에 당 간부들도 이견이 없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돈을 만들 재주도, 의지도 없다는 비판에 곧잘 직면한다. 뒤탈을 우려해 아예 대통령후보에겐 대선자금 모금 부담을 크게 지우지 않고 있는 한나라당과는 처지가 하늘과 땅 차이다.

    노후보측은 지난 경선 때 후보 입후보 마감을 2, 3일 앞둔 시점까지 몇 천만원의 돈이 모자랐다. 노후보는 “안 되면 할 수 없지”라며 체념했는데, 측근들이 카드로 200만~300만원씩 대출받아 위기를 넘겼다. 문제는 현재 김원길, 박상규, 박상희 의원 등 기업인 출신 및 경제통들이 하나같이 발을 뺀다는 점이다. 기업들에게 자금지원을 요청했지만 거부감만 확인한 이들이 노후보를 포기했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다.

    빚이 200억원이 넘는다는 얘기도 줄곧 민주당을 싸고 돈다. 소문이 커지자 당 재정을 맡고 있는 한 고위인사는 “미지급금이 일부 있고 유동성에 문제가 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곳간을 들여다본 전·현직 사무총장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가로 젓는다.

    김원길 전 사무총장이 탈당 결심을 처음 밝혔을 때 노후보 진영 인사들이 탈당을 만류하기 위해 그를 찾자 김 전 사무총장은 “곳간이 비었는데 (노후보를 포함한) 누구도 곳간을 채울 생각을 안 한다”는 얘기만 했다고 한다. 후원회장인 박상규 의원 역시 김 전 사무총장과 함께 탈당 대열 선두에 선 지 오래다.

    당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당직자들끼리 언성도 자주 높인다. 6·13 지방선거를 끝낸 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돈에 대한 노후보의 무신경이 집중 성토 대상이 됐다. 노후보가 당에 비서실 요원 및 특보단 활동비 지급을 요청한 것이 화근이었다. “당에 돈 보따리를 싸들고 와도 시원치 않은데, 지방 순회 경비도 중앙당에 손을 벌리고 있다”는 불만이 잇따라 터졌다.

    9월 중순, 노후보가 선대위원장으로 임명한 정대철 최고위원은 사석에서 한화갑 대표에게 “당 재정이 왜 이 모양이냐”며 심하게 따진 적이 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한대표 측근들의 반응은 “돈을 못 만드는 후보의 책임”이라며 심드렁했다.

    이원화된 당과 선대위 체제가 노후보의 자금문제를 더욱 꼬이게 한다. 선대본부장을 거절하며 이원화 체제를 요구한 한화갑 대표에게 노후보가 던진 첫번째 질문도 당 재정권과 관련한 것이었다. “돈 가지고 장난치지 않는다”는 것이 한대표의 답변이었지만 자금 문제는 현재 유용태 사무총장의 결재를 거쳐 선대위로 넘어가는 상황이다.

    노후보는 법정선거비용으로 대선을 치르겠다고 강조한다. 노후보측은 그 정도 규모의 자금은 마련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국고보조금 120억원이 남아 있고, 신당 창당 후 개최할 후원회에 대한 기대도 크다. “부산상고 출신을 중심으로 한 친노(親盧) 기업인 등이 설마 외면이야 하겠느냐”는 것. 돈을 만들 줄 아는 김상현 의원에 대한 믿음도 있다. 김의원은 3월 경선 때부터 알게 모르게 노후보에게 도움을 주었다.

    기업들이 선관위에 기탁한 기탁금도 있다. 100만명 국민 서포터스는 자금난에 허덕이는 노후보측의 히든카드. 100만명이 1만원씩 후원금을 내는 국민모금 방법으로 표와 돈을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고 본다.

    9월30일 노사모 회원들은 희망의 돼지저금통 1570개(6500만원 상당)를 노후보에게 전달했다. 돼지저금통을 들고 기뻐하는 노후보의 얼굴에는 돈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나라당은 김대중 대통령의 옛 측근 인사 2명을, 민주당은 이회창 후보 주변 인사를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대 당 대선자금 정탐을 위해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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