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12일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부인 한인옥씨가 서울 옥인동 새 집을 찾은 기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병풍과 관련해 내가 모르는 게 있소.”
“더 이상 밀리면 안 된다. 이후보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 수 있다. 진실을 알아야 대책을 세울 수 있다. 한씨에게 다시 한번 확인해달라”는 당직자들의 집요한 요청을 받은 이후보가 작심하고 한씨를 다그친 것. 한씨는 “그런 것 없다”고 단언했다. 8월7일 이후보는 “불법행위를 한 사실이 드러난다면 후보사퇴는 물론이고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병역비리 의혹에 쐐기를 박았다. 정치생명을 건 이후보의 공언에는 한씨의 ‘보증’이 숨어 있었던 셈이다. 이후보의 정치행보에는 이처럼 한씨의 내조와 역할이 곳곳에 숨어 있다. 이 때문에 한씨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항상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감춰진 파워와 위상 노출된 셈
10월2일 한나라당 의원 및 당직자들 부인 연찬회에서 한씨가 “하늘이 두 쪽 나도 대선에서 이겨야 한다”고 발언한 것은 이런 위상과 파워를 새삼 일깨운 사례다. 미묘한 시점에 터져 나온 그의 발언은 사적(私的) 보복주의로 비쳐졌고 민주당과 언론은 적절치 못한 발언에 집중타를 가했다. 난감한 것은 수습에 나선 당직자들. 당직자 K씨는 “10분 만에 7개월 공든 탑을 무너뜨렸다”며 망연자실했다. 지난 3월부터 한나라당은 ‘한인옥 감추기’에 적극적이었다. 그가 나설 경우 병풍과 호화빌라, 원정출산 문제가 오버랩 된다는 실무진들의 건의를 받아들인 조치였다. 이후보도 7개월간의 이런 노력이 10여분 간의 연찬회 발언으로 물거품이 된 데 대한 아쉬움을 감지한 듯 “여러 가지 말거리를 만들어 송구스럽다”며 진화에 나섰다.
당직자 K씨는 “한씨의 적극적인 사고(思考)가 사고(事故)를 친 것”이라고 말했다. 한씨는 온화한 이미지와 달리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정치적 센스와 친화력이 뛰어나 대인관계에서는 한때 이후보보다 낫다는 평가도 받았다. 당직자 부인들을 위로하거나 종교(특히 불교)단체 등에 대한 한씨의 역할은 당직자들도 인정할 정도.
한씨의 이런 적극성은 때로 당무에 개입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당직자 물망에 오른 후보가 이후보 자택에서 면접시험을 봤다”, “모 부대변인의 발탁 뒤에는 한씨가 있다”는 등 구설이 끊이지 않았고 총선 등 공천 시즌이 되면 예비정객의 부인들이 한씨의 동정을 살핀다는 얘기도 곧잘 흘러나왔다. 2000년 5월, 한나라당 전국구 공천에서 탈락한 김희완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이총재가 비례대표를 약속해놓고 안 지킨 것은 한인옥 여사의 반대 때문”이라며 분통을 터뜨린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부시장은 1999년 서울 송파 재선거에 자민련 후보로 출마, “한씨는 옷로비 사건에 연루된 라스포사의 고객”이라고 폭로했고 “이것이 한씨의 미움을 산 것 같다”는 게 김 전 부시장측의 주장이다.
6·13 지방선거 때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홍사덕 의원 주변에서도 “한씨와 이명박 서울시장 부인이 가깝다”는 우회 표현으로 불공정 경선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이후보의 측근들은 “한씨가 어떻게 경선에 역할을 하느냐”며 부인했지만 홍의원 주변 사람들은 한씨의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의혹을 지금도 거두지 않고 있다. 이후보의 사위인 최명석씨의 정치적 파워도 ‘장모’의 무한 신뢰와 사랑에서 출발한다는 후문이 당사에 나돈 지 오래다.
앞으로 한씨의 활동영역은 상당히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당직자 K의원은 “어차피 이번 대선에서 한씨의 역할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얼굴 감추기’가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민주당이 한씨를 가만두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2001년 11월 ‘여성중앙’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여성 유권자 1012명 가운데 45.8%가 한씨를 대통령 부인감으로 생각하고 있는 점을 주시하고 있다. 민주당은 병풍 2탄에 해당하는 수연씨의 병역면제 의혹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청와대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항상 험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