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인시대’에서 청년시절 김두한으로 나오는 안재모
김두한의 일대기를 그린 SBS 드라마 ‘야인시대’의 시청률이 50%에 육박하면서 덩달아 시라소니, 이화룡, 이정재, 임화수, 유지광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주먹들의 이름도 회자되고 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경쟁적으로 주먹세계의 계보를 외는 게 유행이고, 역사 수업은 드라마의 사실 여부를 검증하는 시간으로 바뀌기도 한다.
이런 와중에 드라마 ‘야인시대’와 관계없이 스타로 떠오르고 있는 인물이 신비의 주먹 ‘시라소니’. 그는 조직을 만들지 않고 늘 단신으로 싸웠으며, 한 차례 김두한과 맞붙을 뻔했으나 김두한이 시라소니를 ‘형님’으로 모시면서 무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인터넷 사이트에선 ‘김두한과 시라소니가 붙으면 어느 쪽이 이길까’를 놓고 가상대결이 벌어지고 있어 화제.
‘야인시대’가 일으킨 주먹세계에 대한 동경은 2000년 이후 한국 영화판을 휩쓴 ‘조폭영화’ 신드롬의 연장선상에 있다. 영화평론가 이상용씨는 이 시대 조폭영화가 지닌 미덕에 대해 “가족 해체 시대에 그나마 우정, 의리, 신념과 같은 코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조폭영화뿐”이라며 “‘야인시대’는 조폭영화의 장점에다 김두한이라는 인물, 즉 단순 깡패가 아니라 일제시대 민족주의를 배경으로 ‘항일주먹’이라는 명분을 얻어 ‘협객’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야인시대’ 시청률 50%
만주의 독립군에게 자금을 지원하며 거지소년 김두한을 기른 원노인으로 분한 이순재(위). 드라마 ‘야인시대’는 화려한 액션으로 청소년들을 사로잡고 있다. 권투선수 출신 문영철로 나오는 장세진(가운데). 김두한은 어깨 짚고 양발차기가 특기로 스무살에 전국 주먹계를 평정했다(아래)
그렇다면 김두한 자신은 ‘협객’을 어떻게 정의했을까. 김두한은 종로경찰서 유도사범이었던 마루오카와 대결하면서 스스로 “나는 조선 제일의 협객 김두한이오”라고 외쳤다고 한다. 김두한의 회고록 ‘피로 물들인 건국전야’에서 ‘잇뽕이란 이름으로 협객계에 데뷔’라는 대목을 보자. “그때의 협객은 주로 개인 플레이를 했고 비겁하게 칼이나 해머, 벽돌 등의 흉기를 쓰는 것은 협객의 수치로 여겼다. 만일 무기를 사용하는 협객이 있으면 그는 협객세계에서 즉각 매장되었다. 협객세계에서 의리는 생명이었다.”
당시 주먹세계의 또 다른 룰은 기습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야인시대’ 22회(10월8일 방영)에서 구마적의 부하들(뭉치, 제비, 상하이, 평양박치기)이 술집에 있는 김두한을 기습한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구마적은 부하들에게 이렇게 호통친다. “이런 못난 자식들 보았나. 명색이 건달이라는 너희들이 비겁하게 뒤통수를 쳐? 기습을 했단 말이야, 기습을? 그러고도 너희들이 주먹패야? 너희들은 아주 떳떳지 못한 짓을 했어. 건달이라고 다 같은 건달인 줄 알아? 너희들은 쓰레기야, 더러운 양아치 새끼들이라구.”
이처럼 그 시절 주먹들은 철저히 ‘맞장’을 원칙으로 삼았다. 한쪽이 도전장을 내고 상대가 그것을 받아들이면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서 맨손으로 자웅을 겨뤘다. 승부에서 진 쪽은 그 지역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추거나 형제의 연을 맺고 승자를 깍듯하게 ‘형님’으로 모셨다. 싸움의 룰에 충실했다는 점에서 김두한은 분명 ‘협객’이었다. 하지만 그를 진정한 협객으로 만든 ‘항일주먹’ 혹은 ‘민족투사’의 이미지는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며 사실 여부와 관련해 논란의 여지가 많다.
‘38년 종로를 아는가 그때 그때 그대 기억하는가/ 하야시가 주름주름 잡던 곳 조선의 심장부/ 우리의 귀중한 터 우리 작은 희망 희망 찾는다/ 영웅의 냄새를 기다려보니 덤벼 덤벼라 침략자/ 너는 총칼 위해 나는 민족을 위해/ 떴다. 김두한이 나간다’(펑크록 밴드 타카피의 노래 ‘김두한’ 중에서).
한국전쟁 후 정치깡패 대명사 임화수, 유지광, 이정재(위부터). 5·16 군사쿠데타 이후 이들 중 임화수와 이정재는 사형을 당했다. 시라소니 이성순(맨 아래)은 김두한과 함께 아직도 ‘의리의 주먹’으로 기억되고 있다
해방 이후 김두한의 행적은 ‘협객’과 더욱 거리가 멀다. 아버지 김좌진 장군이 좌익세력에 의해 암살됐다는 명분을 내세워 ‘빨갱이를 때려잡는 반공투사’로 변신했으나 납치와 고문, 살인을 일삼는 잔인한 테러로 대중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협객’ 김두한이 이 시대에 와서도 끊임없이 호명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상역사연구소 김기덕 부소장은 “드라마를 두고 어디까지가 역사고 어디부터가 허구냐를 고증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다. 사람들이 ‘야인시대’에서 열광하는 부분은 역사적 진실이 아니라 주먹들이 목숨처럼 지키는 의리”라며 “의리와 명분에 굶주린 현대인들에게 김두한 일대기가 일종의 대리만족을 주고 있다”고 했다.
이 드라마의 제작자의 말을 들어보아도 이제는 전설이 된 협객의 세계를 그리기 위해 김두한을 소재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현대사회의 조직폭력배들은 의리와 명분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범죄를 위해 인간을 살상한다. 여기에 폭력의 위험성이 있다. 그러나 고전적 주먹세계의 질서는 명예와 공개성을 내세운다. 그것은 사나이다운 당당함이다. 또한 약자를 보호하고 명분 없이는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비겁함과 술수를 쓰는 싸움을 용납하지 않았다.”
“사나이다운 당당함 … 깡패와는 질적으로 달라”
실제로 조직폭력의 원조로 불리는 김두한 이래 주먹세계는 타락을 거듭했다. 99년 MBC 다큐멘터리 ‘깡패와 건달로 본 한국 100년’을 쓴 작가 박주필씨는 한국 주먹세계를 3기로 구분했다. 주먹 1기는 일제 치하에서 일정한 직업을 갖기 어려웠던 청년들이 주먹세계로 편입되던 시기다. 이때의 주먹들은 나름대로 명분을 중시하고 인정과 의리를 강조했다. 기습과 무기 사용을 굴욕적으로 여기며 ‘낭만파 주먹’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일제치하라는 시대적 배경이 주먹들에게 ‘협객’의 지위를 부여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김두한은 이 시기의 대표주자이며 이들이 해방 후 좌우익의 대립 속에 정치와 손잡으면서 ‘정치깡패’로 변신하게 된다.
주먹 2기는 한국전쟁 이후 혼란기에 정치권이 권력 유지를 위해 주먹을 동원하고 깡패들이 권력의 보호를 받으며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공생관계를 이룬 시기다. 주먹들의 전성시대라고도 할 이 시기에 득세한 인물이 이정재. 동대문파를 이끌던 그는 살인교사혐의로 체포되자 검사에게 “젊은 검사, 나 잡으면 재미없소”라고 협박할 만큼 자유당 정권의 비호를 받았다. 또 국회의원 지역구 문제로 이기붕과 결별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권’을 노리던 야심만만한 주먹이었다. 그러나 이정재는 시라소니 린치 사건으로 ‘기습’을 도입하는 등 주먹계 물을 흐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무렵은 임화수, 유지광 등 정치깡패들이 등장하고 남쪽 출신의 동대문파와 월남한 깡패들의 명동파가 힘을 겨루던 시기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주먹들의 전성시대는 곧 몰락의 길을 걷는다. 주먹 3기는 5·16 쿠데타로 시작된다. 군사쿠데타의 주역들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정치깡패들의 소탕을 선언했다. 군사정부는 이정재, 임화수 등을 사형에 처했고 이로써 주먹 2기는 과거 속으로 사라졌다.
이어 1970년대 조양은과 김태촌 등 신예 ‘전국구’(전국에서 통하는 주먹)가 등장했으나 곧 군소 조직의 난립 속에 계보도 명분도 없는 칼부림이 난무하는 무질서한 조폭시대가 도래한다. 박주필씨는 90년대 조폭들에 대해 “선후배의 유대가 약하고 ‘지역구’ 조직이 늘어나면서 소조직화되고 이권이면 무슨 일에나 개입하다 보니 기습은 기본이고 회칼 등 무기도 상습적으로 사용했다”고 설명한다. 주먹들 스스로 의리와 명분을 위해 싸우는 ‘협객’ 대신 단순 깡패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오죽했으면 정치깡패 출신 용팔이 김용남씨가 “깡패가 되려면 선배들 양말 팬티 빨고 발치에서 자야 했다. 그러나 지금 애들은 몇 명만 모이면 깡패가 된다”고 개탄했을까. 올 3월에는 ‘낙화유수’ 김태련씨와 호남 주먹계 원로 박종선씨 등 왕년의 주먹 500여명이 모여 “조폭을 정화하겠다”며 ‘정의사회실천모임’이라는 단체를 조직하기도 했다. 이들이 내건 목표는 “청년의 협객화, 건달조직의 의인화”였다.
주먹들 스스로 주먹세계의 타락을 개탄하는 시대에 김두한의 화려한 부활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1974년 육영수 여사 암살사건 때 일본대사관 앞에서 주먹들을 거느리고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시위’를 벌였던 조일환씨는 이 시대 협객의 역할을 이렇게 설명했다. “때로는 국가가 못하는 정의로운 일을 어떤 단체나 개인이 해결하고 죽음이라도 불사할 수 있어야 한다.” 정의도 명분도 의리도 없는 시대에 우리는 김두한이라는 허상을 붙들고 ‘협객’을 그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