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민 변호사. [지호영 기자]
현 정부 초기인 2017년 문무일 검찰총장 시절 대검 검찰개혁위원을 지낸 김종민 변호사는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을 이렇게 총평했다. 김 변호사는 사법시험 31회에 합격한 뒤 검사로 임관해 법무부 인권정책과장,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장 등을 지냈다. “검찰의 직접수사권은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검찰개혁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그 맥락과 방향은 현 정부와는 결이 다르다. 그는 검사 재직 시절 프랑스 국립사법관학교에서 연수하고 주프랑스 한국대사관 법무협력관으로 재직하는 등 유럽 선진국의 형사사법제도를 경험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사정기관의 권한 남용을 막으면서도 국가적 범죄 수사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2월 8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김 변호사를 만나 공수처 설치로 상징되는 현 정부 검찰개혁의 문제점과 대안을 물었다.
“공수처, 中 국가감찰위원회와 유사”
공수처 출범 후 직접 수사해 기소한 실적이 제로(0)다.“비정상적인 일이다. 공수처 검사 수(검사 정원 처장 포함 25명, 현재 23명 임용)가 공교롭게도 광주지검 순천지청(지청장 포함 26명)과 비슷하다고 한다. 지청장으로 재직할 때 순천지청은 1년에 수만 건의 사건을 처리했다. 중요한 인지사건 수사도 여럿 했다. 반면 공수처는 출범 1년이 지나도록 자체 수사를 사실상 한 건도 하지 않았다. 수사 능력과 의지 모두 없는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고 생각한다. 현재 공수처가 검찰보다 사실상 상위인 특별수사기구가 됐지만 그에 맞는 수사 역량이 없다.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파헤치는 특별수사는 높은 수사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다. 처장과 차장 인선에서 풍부한 수사 경험을 중시했어야 한다. 검찰 출신은 배제하고 법원 판사 출신으로 처장과 차장을 뽑은 것이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고위공직자가 아닌 사회 각계 인사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점도 논란인데.
“모든 수사, 특히 특별수사는 환부를 도려내는 정교한 외과수술에 비유할 수 있다. 공수처의 수사는 저인망식으로 여기저기 찔러보는 방식이다. 수사 ABC도 갖추지 못한 것이다. 광범위한 통신기록 조회는 공수처가 표방한 ‘인권 친화적 수사기구’라는 방향성과도 정면 배치된다. 선별적인 입건도 굉장히 큰 문제다. 공수처가 입건해 수사 중인 사건 상당수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와 관련 있다고 한다(2월 9일 공수처는 윤 후보의 ‘한명숙 전 총리 모해위증 교사 사건 수사 방해’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분). 정치적으로 편향된 수사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공수처가 대통령 직속 정치사찰기구로 변질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일각에서는 공수처 폐지도 거론된다.
“기본적으로 공수처는 폐지해야 한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은 공수처 신설을 상수(常數)로 하는 것이었다. 만약 공수처 설치가 그토록 좋은 개혁 방안이라면 왜 대다수 선진국이 유사한 기구를 두지 않았겠나. 한국 공수처와 가장 유사한 기구는 중국 국가감찰위원회다. 강력한 공안(경찰) 권력과 국가감찰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중국식 사법제도를 모방한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대장동 의혹 ‘몸통’ 수사해야”
김 변호사는 친정인 검찰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 사업 특혜 의혹 수사를 두고 “사건의 몸통과 곁가지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향후 검찰 재수사나 특검을 통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의 본질은 어떻게 특정 개발업자가 과도한 이익을 누리도록 인허가가 이뤄졌는지 여부다.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이나 박영수 전 특별검사, 권순일 전 대법관 등 이른바 ‘50억 클럽’에 대한 수사도 필요하지만 곁가지에 해당된다. 당시 시장이던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나 의혹의 핵심 인물인 정진상 씨(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비서실 부실장, 전 경기도 정책실장)에 대한 수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지방자치제도의 부패와 이에 대한 검찰의 ‘권력 눈치 보기식’ 수사가 이뤄진 것으로 의심된다는 점에서 최근 성남FC 후원금 의혹과 닮은꼴이다.”
2015~2017년 두산, 네이버 등 6개 기업이 경기 성남시 연고 축구단 성남FC에 약 160억 원 후원금을 낸 대가로 성남시로부터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2018년 6월 야당 측 고발로 수사를 개시한 경찰은 지난해 9월 무혐의로 수사를 종결했다. 고발인의 이의 신청에 따라 사건을 넘겨받은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의 박하영 차장검사 등은 보완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박은정 성남지청장이 수사 기록을 검토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한 달 이상 사건 처리를 미루자 박 차장검사는 1월 25일 사표를 냈다. 이 과정에서 성남지청 수사팀의 금융정보분석원(FIU) 자료 요청을 김오수 검찰총장이 반려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성남FC 후원금 의혹, 무엇이 문제인가.
“성남에서 사옥 건설 등 현안이 있던 기업들이 공교롭게도 성남FC 측에 각각 수십억 원 후원금을 냈다. 일부는 당시 이재명 시장의 측근이 이사로 재직한 사단법인을 통해 우회적으로 후원하기도 했다. 비정상적 자금 흐름 아닌가. 언론 보도를 보니 성남FC는 직원이 후원금이나 광고를 유치하면 최대 20% 성과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동아일보 ‘성남FC, 후원금 유치 성과급 수십억 추정… 법조계 “돈세탁 의혹”’ 제하 기사 참조). 그 정도 거액의 성과금을 누가 받아서 어떻게 썼는지 살펴봐야 한다.”
보완수사 여부를 놓고 수사팀과 지청장이 갈등을 빚은 성남지청 수사는 어찌 보나.
“범죄 혐의 여부를 판단하려는 검사의 수사를 막았다고 의심된다. 어느 개인을 특정한 것도 아니고 자금 흐름을 추적하겠다는 것을 지청장이 사실상 막은 것 아닌가. 약 80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수사기록을 지청장실에서 보관하며 ‘뭉개기’를 했다는 의혹도 있다. 결국 최근 수원지검이 성남지청에 보완수사를 하라고 지휘했다. 지청장의 독자 결정이었는지 대검, 특히 김오수 총장의 지휘 하에 그러한 결정이 이뤄졌는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
지검이 지청을 지휘하는 것은 이례적이지 않나.
“그렇다. 바로 그 점이 이상하다. 지검 소속 지청도 대검의 직접 지휘를 받는 것이 검찰 관행이고 수사지휘체계다. 순천지청장, 홍성지청장 시절 한 번도 광주지검이나 대전지검의 지휘를 받아본 적 없다. 지청장이 대검이나 김오수 총장의 지휘로 사실상 수사를 중단했다 문제가 되자 수원지검장의 지휘를 받게 한 것 아닌지 의심된다.”
‘검찰은 손발 없는 머리, 경찰은 머리 없는 손발’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왼쪽)과 김오수 검찰총장. [동아DB]
“한국의 중앙집권화된 법원, 검찰, 경찰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때부터 이어져온 유산이다. 대통령이 인사권을 통해 사정기관과 사법부를 장악할 수 있는 구조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 들어서 더 개악됐다. 어느 수사기관도 제대로 수사하지 못하고 있는 권력형 비리부터 해결해야 한다. 현재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는 대통령령(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으로 제한돼 있다. 한시적으로 그 범위를 확대해 산적한 대형 범죄를 수사해야 한다.”
왜 ‘한시적 확대’인가.
“향후 검찰 직접수사권은 원칙적으로 폐지하는 것이 맞다. 그 대신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과거보다 더 실효성 있게 부활시켜야 한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대륙법계 국가에는 ‘검찰은 손발 없는 머리, 경찰은 머리 없는 손발’이라는 법언이 있다. 어떤 수사든 검찰과 경찰이 한 몸으로 진행하고, 어느 한 기관이 권한을 남용할 수 없어야 한다는 취지다. 특별수사의 경우 법무부 산하에 독립수사기구를 설치해 현재 공수처와 검경의 특별수사 기능을 통폐합해야 한다. 해당 기관의 수사 인력은 사법경찰관으로서 검사의 지휘를 받게 하는 것이다. 특별수사 기구와 일반 수사를 맡은 경찰,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는 검찰 세 기관이 병존하는 시스템이다.”
살아 있는 권력이 인사권으로 장악하면 실효성이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 인사권 남용을 막는 것이 개혁의 핵심이다. 프랑스에선 대통령이나 총리가 아닌 ‘최고사법평의회’가 판검사에 대한 인사권·감찰권을 행사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법원과 검찰이 정치 도구화된 뼈아픈 역사를 겪고 전후 개헌으로 헌법상 독립기구인 최고사법평의회를 만든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당선되는 새 대통령부터 검찰이나 경찰에 대한 과도한 인사권한을 내려놓는 결단이 필요하다. 살아 있는 권력이 사정기관의 인사와 수사에 일일이 관여하는 폐단을 끊어야 한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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