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는 현대사회의 특징이 간략하게 기술되어 있고 복잡, 다원화한 현대생활에서 정치란 무엇인지가 서술되어 있었다. 개인과 개인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회에서는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집단화·다원화된 사회에서는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여 사회통합을 실현해 나가는 정치의 역할이 중대하다는 것이다.
정치는 결국 그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인데, 왜 사람들은 ‘정치’라는 말만 나오면 거부감을 갖는 것일까. 나는 아이에게 가르쳤다. 현대를 사는 우리의 모든 일상이 정치 아닌 것이 없다고. 얼마 전 상가임대차 보호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상가 전세 보증금을 고스란히 뺏기고 가게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내 친구의 예까지 들면서.
월드컵 열풍이 한창이다. 선거 열풍은 월드컵 열풍에 비하면 미풍쯤이나 될까. 나는 아이에게 또 가르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접하는 많은 부분이 사실은 정치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정책의 산물이다. 의약분업도 그렇고 고교평준화 문제도 그렇고(실제 우리 아이는 고교평준화가 안 된 지역에 살고 있는 고통을 톡톡히 치렀다). 하다못해 물건 하나 사는 행위까지 다 그렇다고. 그런데 그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냐고. 바로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월급 받고 살면서 우리 대신 조정과 통합의 일을 해주는 사람들이 아니냐고. 나는 차마 그들이 우리가 내는 세금만 가지고 살지만은 않는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6월13일 치러질 선거도 잘해야겠네. 안 그러면 괜히 우리가 내는 세금만 축나지 않겠어요?’
나는 우리나라가 월드컵에서 우승은 못하더라도 이제 모든 염원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16강 진출’만은 해주길 진정으로 바란다.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또 있다. 월드컵경기장에 모여든 사람들만큼이라도, 아니 그곳에 모여든 우리의 ‘붉은 악마’ 젊은이들만이라도 축구만 사랑하지 말고 정말 정치적으로 되어주기를. 정치적으로 된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 있고 뿌듯하고 즐거운 일인지를 알고 실천해 주기를. 정치를 한다는 것은, 스스로 정치적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지켜내고 가꾸는 것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를.
그리고 정말 우리 사회에 바라는 것이 있다. 이제 더 이상 ‘정치적’이라는 말에서 부정적인 뉘앙스가 느껴지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정치적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의 권리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뭔가 모색하고 실천하고 개입하고 능동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사회가 됐으면.
그런 점에서 ‘붉은 악마’의 행보에 대한 한 가지 반가운 점과 한 가지 서운한 점을 말하고 싶다. ‘붉은 악마’ 인터넷 게시판에 한국 축구를 열심히 응원하는 것만큼이나 지방선거에도 관심을 갖고 투표하자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붉은 악마’가 정치적 단체가 아닌 축구대표팀을 응원하는 순수단체인 만큼 공식적인 투표 참여운동은 하지 않겠다는 소식은 좀 서운하다. 정치적 단체가 아닌 축구대표팀을 응원하는 순수단체란 말에서 나는 묘한 서글픔마저 느꼈다. 좋은 정치를 해달라고 정치무대에 올려놓은 정치가들의 지극히 비정치적인, 직무유기적인 행태에 대한 반감이 결국 가장 정치적이어야 할 각 개인들을 가장 비정치적으로(순수하다는 또 다른 말로) 만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월드컵은 지든 이기든 지나간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은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계속될 것이다. 월드컵에서의 승리는 지루한 일상에서 피어난 꽃이다. 꽃은 곧 시들게 마련이다. 그 꽃이 지고 난 뒤에도 우리는 지루하지만 끈질기게 살아내야 한다. 그 지루하고 끈질긴 삶의 한복판에 여전히 정치는 존재한다. 우리가 정치적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지루하지만 끈질기게 일상을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