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2

..

욕먹을 각오로 한마디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1-08-29 10:0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해봐야 실익은 없고 부작용만 만만치 않을 것이 뻔한 일을 굳이 저지르는 것을 요즘 젊은이 말로 ‘뻘짓’이라고 한다. 국방부가 현행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현대사 기술 내용을 개정해달라고 교육과학기술부에 공식 요청했다는 8월 23일 언론보도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이 바로 이 말이다. 현재의 교과서 내용이 우리 학생들의 안보의식을 약화하는 주요인이 된다는 게 요청 취지라고 한다.

    안보와 군 관련 기사를 오랫동안 써온 기자로서 욕먹을 각오로 독하게 마음먹고 쓰겠다. 교과서에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고쳐야 한다. 이와 관련해 학계와 여론마당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목소리와 토론을 존중한다. 시각에 따라 국방부가 지적한 내용이 모두 옳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어느 모로 보나 국방부가 나서서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교과서 내용 때문에 학생들의 안보의식이 약해지니 군이 언급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같은 논리라면 군은 세상 모든 일에 대해 언급할 권한이 있다. 복지 포퓰리즘 논쟁이 재정악화로 이어지면 국방비 삭감이 코앞에 닥치므로 안보 문제가 된다. 동성애 논란은 입대자 문제와 직결되므로 역시 안보 문제. 너무 많은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 빠져 국민이 안보의 중차대함을 잊으면 이 또한 안보 문제다. 특정 대선후보가 국방비 증액에 소극적이라면 이 역시 당연히 안보 문제가 된다. 과장인 듯싶은가. 이번에 국방부가 한 일이 딱 그 수준인 것이다.

    지난해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계기로 안보 우려가 폭증하면서 한국 사회의 주요 쟁점을 군사적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시각이 크게 힘을 얻었다. 국방부의 이번 행동 역시 이러한 분위기에 고무된 결과인 듯하다. 그러나 군의 임무와 노고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것과 공론장에서 토론을 통해 결정해야 할 사안에 군의 논리를 판단 기준으로 들이대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더욱이 군은 천안함·연평도 사건에서 맡은 임무를 충실히 해냈다고 자평할 수 있는가. 선 넘은 참견은 그 후에 해도 늦지 않다.

    욕먹을 각오로 한마디
    ‘군사력에 의한 대외적 발전을 중시해 전쟁과 그 준비를 위한 정책이나 제도를 국민생활에서 최상위에 두고 정치·문화·교육 등 모든 생활 영역을 이에 전면적으로 종속시키려는 사상과 행동양식.’ 정치학에서 말하는 ‘군국주의(militarism)’의 정의다. 사회적 논쟁에 군이 뛰어드는 것을 철저히 금기하는 서구 민주국가의 전통은 바로 이를 경계하기 때문이다. 군에 대한 오랜 애정을 바탕으로, 이번만큼은 극소수 실무자의 잘못된 판단이었으리라 믿고 싶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