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하신 말씀을 아직도 기억한다는 허근(58) 신부. 그는 11년째 가톨릭알코올사목센터 소장을 맡아 9000명이 넘는 알코올중독자를 치료했다. 허 신부도 한때 알코올중독자였다. 1982년부터 4년간 군중 신부로 해병대에 있으면서 군인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던 게 버릇이 됐던 것. 이후 주임신부를 맡은 성당 내의 여러 모임에 참여하면서 점차 술이 늘었다.
“술이 안 깬 채로 아침미사에 참여해 횡설수설한 적도 있고, 심지어 함께 술을 마시던 신자와 주먹다짐을 벌여 입원시키기도 했어요.”
술 때문에 몸은 상할 대로 상했고, 체중도 46kg까지 내려갔다. 그럼에도 그는 “나는 언제든 원하면 술을 끊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1998년 초 평소 그를 아끼던 고 김옥균 주교가 눈물을 흘리며 “제발 술을 끊어라”고 권했고, 결국 허 신부는 치료를 결심했다.
1년간 광주 요한병원에서 치료받은 그는 “새로 태어났으니 나처럼 고통받는 중독자를 위해 여생을 바치겠다”고 결심했다. 1998년 10월 가톨릭알코올사목센터를 연 뒤 매주 단주모임을 갖고 있다. 6개월 과정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상담 및 정신과 치료는 물론, 기도와 명상을 통한 영적 치료까지 포함한다. 가장 인기 있는 수업은 허 신부의 ‘알코올중독 극복기’. 그는 “절주가 아닌 단주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미사 중에는 포도주를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다.
“사흘 전 6개월간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40대 공무원이 ‘술을 끊으니 직장에서 괜히 화내는 일이 줄어들고 슬슬 피하던 후배들과도 가까워졌다’며 감사인사를 하더군요. 가정의 평화를 지키고 직장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단주를 실천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