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상무기 수출 제한 폐지 추진하는 일본

필리핀에 미사일 수출 모색… 日 방산업체 성장 촉진 효과도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5-12-14 09: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방위상이 12월 7일 도쿄 방위성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방위상이 12월 7일 도쿄 방위성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03식 지대공 유도탄’은 일본 방산업체 미쓰비시전기가 개발해 육상자위대가 운용하는 중거리지대공미사일이다. 이 미사일은 트럭에 탑재돼 도로 위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길이 4.9m, 직경 28㎝, 무게 460㎏인 이 미사일의 사거리는 60㎞, 요격 고도는 10㎞ 안팎이며 마하 4 속도로 날아간다. 주목할 점은 이 미사일의 다중 교전 능력이다. 지대공미사일로는 세계 최초로 능동 전자주사식 위상배열(AESA) 방식의 사격 관제 레이더를 탑재해 공중 표적 100개를 동시 추적하고, 12개 표적과 동시 교전이 가능하다. 각종 항공기와 순항미사일, 드론을 요격할 수 있다. 일본은 2027년까지 탄도미사일도 요격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하고, 이를 기반으로 극초음속 미사일에 대응하는 미사일도 개발해 2029년까지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남서 시프트’로 중국 견제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방위상은 11월 23일 대만과 가까운 요나구니섬을 시찰하면서 내년부터 이곳에 03식 지대공 유도탄 부대를 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본 열도 최서단에 자리한 요나구니섬은 대만과 110㎞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전략요충지다. 현재 대만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 육상자위대의 미사일 거점은 대만으로부터 270㎞ 떨어진 이시가기섬이다. 이곳에는 이미 03식 지대공 유도탄과 군함 요격용 12식 지대함 유도탄이 배치됐다. 일본 정부는 중국의 해양 진출과 대만 침공 가능성에 대비해 난세이 제도 섬들에 미사일 부대를 배치하는 등 이른바 ‘남서 시프트’를 진행해왔다.

    특히 일본은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필리핀에 군 지휘통제 시스템과 03식 지대공 유도탄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군 지휘통제 시스템은 미쓰비시전기가 개발한 것으로, 레이더로 탐지한 항공기나 선박 정보를 집약해 대응 방안 등을 각 부대에 지시하는 장비를 가리킨다. 일본 정부는 평화헌법에 따라 무기 수출을 사실상 금지하다가 아베 신조 총리 재임 때인 2014년 ‘방위 장비 이전 3원칙’을 마련해 방위 장비 일부를 수출해왔다. 이에 따라 일본은 2023년 필리핀에 대공 레이더를 수출한 바 있다. 이는 일본이 완제품 방위 장비를 수출한 첫 사례였다. 

    일본은 후속 조치로 군 지휘통제 시스템을 필리핀에 수출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일본이 군 지휘통제 시스템을 수출하려는 의도는 자위대와 필리핀군 간 정보 공유를 통해 동·남중국해에서 해양 진출을 적극 추진하는 중국에 대한 대응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으로서는 필리핀과의 정보 공유 등을 통해 중국군에 대한 감시 능력을 강화할 수 있고, 필리핀도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갈등을 겪고 있는 중국에 맞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

    자민당, 5가지 용도 제한 규정 철폐 검토 

    일본과 필리핀 정부는 03식 지대공 유도탄 수출 문제도 비공식적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필리핀이 이 미사일을 도입하면 루손섬 등 중국 방면의 자국 공군기지·항만·에너지 시설 등을 보호하는 데 배치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벌써부터 일본의 이 미사일 수출 검토에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국 군사 전문가인 장쥔서는 “일본이 필리핀에 미사일을 수출하는 것은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심각한 위협이 될뿐더러, 군국주의 부활의 위험 신호”라고 비판했다. 일본 교도통신은 “필리핀에 일본산 중거리 방공체계를 배치하는 것은 동중국해에서 남중국해로 이어지는 동맹·파트너 방공망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셈”이라면서 “일본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실질적 안보 제공국(Security Provider)으로 탈바꿈하는 흐름을 가속화하는 결정적 조치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방위 장비 이전 3원칙의 수출 제한 규정이 공식적으로 폐지될 경우 미사일 수출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현재 구난, 수송, 경계, 감시, 소해(掃海: 바다 기뢰 등 위험물 제거) 등 5가지 용도로 사용될 때만 방위 장비 완성품을 수출할 수 있다. 이 규정은 ‘방위 장비 이전 3원칙’ 운용지침에 명시돼 있다. 일본 정부와 집권 여당인 자민당은 이런 제한 규정을 내년 봄에 없애는 방안을 조율 중이다. 자민당은 12월 1일 안보조사회 모임을 갖고 방위 장비의 5가지 수출 제한 규정 철폐 문제를 논의했다. 이 모임에 참석한 의원과 안보 전문가는 대부분 철폐를 지지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따라 자민당은 내년 2월쯤 정부에 철폐 의견을 제시하고,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4월 무렵 규정을 철폐할 것으로 보인다. 요미우리신문은 “5가지 용도 제한 규정이 철폐되면 살상 능력이 높은 장비를 포함해 폭넓은 장비 수출이 가능해진다”면서 “이는 곧 일본 방위산업 강화, 우호국과 협력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방위성 산하 전문가 회의는 9월 보고서에서 “방위 장비 이전 강화가 일본에 바람직한 안전보장 환경을 만드는 데 필수적”이라며 “방위산업 성장과 방위력 강화, 경제 성장 간 ‘선순환’을 촉진할 수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자민당이 방위 장비의 5가지 용도 제한 규정 철폐를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은 연립 구성이 자민당-공명당에서 자민당-일본유신회로 바뀐 정치 지형과도 맞물려 있다. 공명당은 그동안 평화헌법 정신에 따라 살상무기 등 수출에 브레이크 역할을 해왔지만, 자민당이 안보 강화를 내세운 일본유신회와 연립정부를 출범하면서 더는 수출 제한 조치를 유지할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일본 방산업체의 성장이 분명해지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자위대 납품만으로는 수요가 한정적인 탓에 사업 축소, 철수 압박에 시달렸고, 생산라인 유지 자체가 어렵다면서 수출 확대를 촉구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2024년 세계 100대 무기 생산 및 군사 서비스 기업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미쓰비시중공업(32위), 가와사키중공업(55위), 후지쓰(64위), 미쓰비시전기(76위), 일본전기(NEC·83위) 등 5개 방산업체가 100위권에 들어 있다. 이들 5개사의 매출은 133억 달러(약 19조5700억 원)로 집계됐다. 일본 방산업체들이 살상 무기까지 수출할 경우 한국 방산업체들과 치열하게 경쟁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세계 100대 방산업체에 4개 업체가 들어가 있는데 한화그룹(21위), LIG넥스원(60위), 한국항공우주산업(KAI·70위), 현대로템(80위) 등으로, 이들의 매출은 141억 달러(약 20조7500억 원)를 기록했다.

    일본 육상자위대가 03식 중거리지대공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있다. 일본 육상자위대 제공

    일본 육상자위대가 03식 중거리지대공미사일을 시험발사하고 있다. 일본 육상자위대 제공

    오커스도 일본과 안보 협력 모색

    일본 방산업체들이 생산하는 정밀기계와 센서, 전자전 장비, 미사일·잠수함·항공 플랫폼 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실제로 일본은 2023년 미국의 라이선스를 받아 생산한 패트리엇 지대공미사일(PAC-3)을 미국에 수출한 바 있다. 미쓰비시중공업과 가와사키중공업은 잠수함은 물론, 각종 함정 등의 설계부터 건조까지 자체 기술을 축적해왔다. 

    더욱 주목할 점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미국·영국·호주 등 3국 안보 협력체 오커스(AUKUS)가 일본의 참여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3국이 2021년 출범한 오커스는 2개 축(Pillar)으로 진행된다. 제1축(Pillar1)은 미국과 영국이 호주에 핵잠수함을 공급하는 데 3국이 협력하는 것이고, 제2축은 첨단기술 공동개발과 상호 운용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제2축은 6개 기술 분야(사이버, 인공지능, 양자컴퓨터, 해저 기술, 극초음속 미사일, 전자전)와 2개 기능 분야(혁신, 정보 공유)로 구성된다. 오커스가 일본을 제2축에 참여시킬 경우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일본 방산업체의 각종 무기 수출 등 역내 안보 역량과 입지가 획기적으로 진전될 수 있다. 미국 입장에서 볼 때 함께 첨단 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동맹국이 극히 한정돼 있는 만큼 소재·부품 등 무기 개발에 필요한 핵심 기술과 생산 능력까지 보유한 일본은 최적의 파트너다. 

    게다가 글로벌 방산업체들이 일본으로 아시아 거점을 이동하는 등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세계 1위 방산업체 미국 록히드마틴은 아시아 총괄 기능을 이미 싱가포르에서 일본으로 이전했다. 미국 L3해리스도 2022년 일본 법인을 설립했다. 영국 최대 방산업체 BAE시스템스 역시 아시아 총괄 본부를 말레이시아에서 일본 법인으로 이전했다. BAE시스템스는 일본·영국·이탈리아 3국이 추진하는 차세대 전투기 공동개발을 위해 미쓰비시중공업 등과 협력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호주와 100억 호주달러(약 9조7600억 원) 규모로 모가미급 호위함 11척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고, 뉴질랜드와도 비슷한 계약을 추진하고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