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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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무도 부차 대학살, 푸틴 戰犯 처벌로 이어질까

군 통수권자로 책임 물을 수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희박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2-04-0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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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부차 마을 거리 곳곳에서 발견되는 민간인 시신들. [우크라이나 외무장관 트위터]

    우크라이나 부차 마을 거리 곳곳에서 발견되는 민간인 시신들. [우크라이나 외무장관 트위터]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부차 등에서 민간인을 집단학살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 국제사회가 분노하고 있다. 부차는 수도 키이우에서 북서쪽으로 37㎞ 떨어진 인구 3만7000여 명의 소도시다. 러시아군은 2월 24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부차를 비롯해 키이우 주변 도시들을 한 달간 점령하고 이를 발판 삼아 키이우를 공격했다. 하지만 4월 1일 키이우를 장악하지 못한 채 부차 등에서 철수했다.

    결박당한 채 총에 맞은 희생자들

    이리나 베네딕토바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은 4월 3일 러시아군 퇴각 후 부차를 비롯해 호스토멜, 이르핀 등 키이우 주변 30여 개 소도시와 마을에서 러시아군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된 민간인 시신을 최소 410구 이상 수습했다고 밝혔다.

    특히 부차에서 가장 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나왔다. 거리 곳곳에서 민간인 시신이 발견됐다. 손이 뒤로 묶인 채 머리 뒤쪽에 총을 맞은 시신 18구가 있었고, 시신 280여 구를 집단 매장한 곳도 확인됐다. 일부 시신은 검정 봉투에 담겨 있었지만 일부는 팔다리가 튀어나와 있었다. 또 일부는 귀가 잘리거나 치아가 강제로 뽑히는 등 고문당한 흔적이 역력했다. 심지어 14~16세 청소년들 시신도 나왔다. 아나톨리 페도루크 부차 시장은 “매장된 시신 가운데 상당수는 결박된 채 처형당했다”고 밝혔다. 이르핀에서는 철수하던 러시아군이 어린이들을 전차와 장갑차 앞에 태워 ‘인간 방패’로 썼다는 주민들 증언까지 나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의 민간인 대상 잔혹 행위를 ‘집단살해’(제노사이드·genocide)로 규정하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라는 국가와 국민 전체를 멸절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또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 행위를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비유하며 러시아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퇴출을 요구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러시아군의 행위를 ‘전쟁범죄’라고 성토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전범’이라고 칭하면서 “모든 증거를 모아 푸틴이 전범 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매우 명백한 단서가 있다”고 밝혔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역시 “가해자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책임자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부차에서 살해된 민간인들 모습을 보고 깊은 충격을 받았다”며 “책임 규명을 보장하기 위해 독립된 조사가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러시아군의 행위를 전쟁범죄로 처벌하려면 무엇보다 정확한 진상 규명이 중요하다. 제노사이드는 특정 국민과 민족, 인종, 종교, 정치 집단의 전체 또는 일부를 멸절할 목적으로 해당 구성원을 대량 학살하는 행위를 말한다. 대표적 사례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들 수 있다. 또 1970년대 200만 명 희생자가 나온 캄보디아 크메르루즈의 킬링필드 학살, 1990년대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 학살 같은 사례가 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가능한 모든 증거를 조사해 우크라이나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확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샤를 미셸 EU 상임의장은 “EU가 우크라이나와 비정부기구(NGO)를 도와 국제재판소에서 필요한 러시아의 전쟁범죄 증거들을 수집하고 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뿐 아니라 러시아군 전체 지휘관, 지시와 명령을 내린 모든 사람을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푸틴 전범 처벌 ‘하늘의 별 따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에서 우크라이나는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크렘린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에서 우크라이나는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크렘린궁]

    그렇다면 국제사회 요청에 따라 푸틴 대통령을 전범으로 처벌하는 것이 가능할까. 전범(War Criminal)은 통상적으로 침략전쟁을 벌였거나, 전쟁 수행 과정에서 국제법상 전투법규와 관례를 위반하는 등 전쟁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치 독일과 제국주의 일본의 지도자들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 전범의 정의는 1990년대 들어 르완다 내전과 옛 유고 내전을 계기로 확대됐다. “종교와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종청소를 자행한다든지, 집단살해와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자”를 전범이라고 국제사회는 규정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을 전범으로 처벌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은 것은 군 통수권자로서 책임을 묻는 것이다. 군 통수권자가 범죄를 명령했거나 인지했거나 인지할 지위에 있었거나 또는 묵인했다면 이것을 바탕 삼아 포괄적으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가 간 분쟁을 다루는 국제사법재판소(ICJ)와 개인의 전쟁범죄 문제를 다루는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푸틴 대통령에 대한 처벌이 가능할지 여부가 주목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ICJ가 러시아군과 푸틴 대통령을 유죄로 판결하더라도 그 집행은 유엔 안보리가 맡기 때문에 처벌이 불가능하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 중 하나인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면 처벌할 수 없다.

    반면 ICC는 러시아군의 전쟁범죄와 푸틴 대통령이 이를 지시 또는 묵인한 것이 입증될 경우 푸틴 대통령을 집단살해죄 등 위반 혐의로 기소할 수 있다. ICC는 집단살해죄, 인도에 반한 죄, 전쟁범죄 및 침략범죄 등을 저지른 개인을 형사처벌하고자 로마조약에 따라 2002년 설립된 최초 상설 국제재판소다. ICC는 이미 러시아군의 각종 전쟁범죄를 확인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조사단을 파견했으며, 목격자들의 신고를 받는 온라인 포털도 개설했다. 카림 칸 ICC 검사장은 “민간인을 표적으로 삼는 것은 명백한 전쟁범죄”라고 지적했다. ICC는 123개 회원국을 포함해 관할구역으로 정한 국가에서 기소된 인물이라면 누구든 재판할 수 있다. ICC는 지금까지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와 수단의 오마르 알바시르 등 현직 국가 정상을 두 차례 기소한 바 있다.

    그런데 ICC는 피의자를 반드시 네덜란드 헤이그 법정에 출석시켜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 로마조약에 따라 궐석재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피고인 신병을 확보할 수 없다면 재판도 불가하다. 물론 ICC가 푸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는 있다. 문제는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에서 쿠데타 등 정변으로 권좌에서 물러나지 않는 한 구속영장을 강제로 집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 새 정부가 푸틴의 신병을 ICC에 넘겨야만 단죄가 가능하다. 더욱이 러시아가 ICC의 근거가 되는 로마조약에 서명하긴 했으나 비준을 미뤄오다 2016년 아예 탈퇴해버렸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푸틴 대통령이 ICC 회원국을 방문했을 때 이 회원국이 구속영장을 집행해 신병을 확보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론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ICC가 푸틴 대통령을 전범으로 처벌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과거 사례를 보면 특별재판소를 만들어 국가 최고지도자나 군부 지도자를 전범으로 처벌한 경우가 종종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 미국, 영국, 소련 등 연합국이 나치 독일 전범들을 처벌하기 위해 설립한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을 들 수 있다. 당시 자살한 아돌프 히틀러 나치 독일 총통 등 일부 핵심 인사를 제외한 전범 24명이 처벌됐다. 또 연합국들이 1946년 일본 도쿄에 설치한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도 전범인 일본 총리와 군 지도부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일본 국왕은 민심에 대한 고려와 혐의 입증 문제 때문에 기소되지 않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가운데)이 민간인들이 학살된 부차 지역을 돌아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가운데)이 민간인들이 학살된 부차 지역을 돌아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러軍 전쟁범죄 멈추게 하는 압박 수단

    전쟁범죄에 대한 국제적 단죄는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세워진 특별재판소에서도 이뤄졌다. 1993년 설치된 옛 유고 국제형사재판소가 대표적 사례다. 당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은 2002년 기소돼 재판을 받다 2006년 감옥에서 숨졌다. 밀로셰비치는 코소보 전쟁(1998∼1999), 크로아티아 전쟁(1991∼1995), 보스니아 전쟁(1992∼1995) 등 발칸반도에서 벌어진 60여 건의 전쟁 및 반인륜 범죄 혐의와 1995년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에서 무슬림 7000명을 학살한 혐의로 기소됐다. 2012년 시에라리온 특별재판소는 찰스 테일러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에게 징역 50년형을 선고했다. 전 세계 전현직 국가 최고지도자 가운데 국제법정에서 사법적 단죄를 받은 것은 테일러 전 대통령이 처음이다. 테일러는 1991년부터 10년간 세계 최대 다이아몬드 생산지인 이웃나라 시에라리온의 내전에 개입해 반군이 12만 명을 살해하는 것을 지원한 혐의로 처벌받았다.

    이처럼 미국 등 나토와 EU 등이 푸틴 대통령을 피고인으로 세울 국제전범재판소를 개설하는 방법이 있다. 물론 러시아 국민이 전쟁범죄를 저지른 푸틴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려 국제사회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실행 가능성이 높지 않다. 그럼에도 국제사회가 러시아군의 전쟁범죄를 멈추게 하려면 푸틴 대통령을 전범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압박하는 방법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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