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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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런’ 감수하며 포켓몬빵 띠부씰에 열광하는 이유

희귀템 얻을 때마다 도파민 분비… ‘수집=성공’으로 인식하는 밀레니얼 세대

  • 이종림 과학전문기자

    입력2022-04-1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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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이’ 핫 아이템으로 등극한 포켓몬빵. [사진 제공 · SPC삼립]

    ‘어른이’ 핫 아이템으로 등극한 포켓몬빵. [사진 제공 · SPC삼립]

    4월 2일 오전 7시. 이마트 서울 마포공덕점 정문 앞에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이유는 단 하나, 포켓몬빵 때문이다. 이날 이마트는 ‘2022 랜더스데이’를 열고 최근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포켓몬빵을 100개 한정 판매했다. 매장 오픈까지는 3시간이나 남았지만 포켓몬빵 ‘오픈런’ 행렬은 가히 백화점 명품 매장을 방불케 했다. 오전 10시가 되자 시민들이 또다시 몰려들었다. 매장 오픈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포켓몬빵 판매가 시작된 것이다. 매장 밖까지 길게 줄 서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선 행복감이 묻어났다.

    최근 ‘어른이’(어른+어린이) 사이에 가장 핫한 아이템으로 ‘포켓몬빵’을 빼놓을 수 없다. 출시 40일 만에 1000만 개가 팔릴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품귀 현상까지 빚어져 편의점에 포켓몬빵이 입고되는 시간에 맞춰 줄을 서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SPC삼립은 폭발적인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4월 7일 포켓몬빵 시즌2 3종을 출시한다고 밝혔다.

    곤충 채집에서 시작된 포켓몬스터

    포켓몬스터 시리즈 중 한 장면. [사진 제공 · 포켓몬 컴퍼니]

    포켓몬스터 시리즈 중 한 장면. [사진 제공 · 포켓몬 컴퍼니]

    포켓몬빵은 16년 만에 재출시된 제품이다. ‘돌아온 고오스 초코케익’ ‘돌아온 로켓단 초코롤’ ‘피카피카 촉촉치즈케익’ 등 7가지 종류가 있다. 가격은 16년 전 500원에서 1500원으로 3배 올랐다. 빵과 함께 들어 있는 ‘띠부띠부씰’(붙였다 뗐다 하는 스티커·이하 띠부씰)을 모으는 재미는 그대로다. 159종의 포켓몬스터 캐릭터를 모으는 띠부씰에 대한 열기는 생각보다 뜨겁다. 이 띠부씰을 모으려고 2006년 당시 초등학생이던 2030세대를 중심으로 포켓몬빵 오픈런이 이어지고 있다. 스티커를 모으기 위해 1500원짜리 빵을 사는 격이다. 띠부씰은 중고시장에서 웃돈이 얹어져 거래되기도 한다. 특히 띠부씰 중 한정판으로 알려진 ‘뮤’와 ‘뮤츠’는 경쟁이 더욱 치열해 중고시장에선 개당 5만 원대에도 거래된다.

    포켓몬빵이 이처럼 열풍을 일으키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포켓몬은 1996년 게임으로 처음 탄생했다. 닌텐도 게임보이용 비디오게임에서 출발해 만화책, TV 애니메이션, 영화 등으로 제작됐다. 2016년에는 휴대전화용 AR(증강현실) 게임인 ‘포켓몬 GO’가 출시돼 다시금 인기를 끌었다.

    포켓몬은 휴대용 캡슐로 신비한 포켓몬들을 포획해 키우는 게임이다. 수백 마리 포켓몬은 저마다 귀여운 외모와 초능력을 지닌 가상의 생명체다. 플레이어는 다양한 포켓몬을 수집해 ‘포켓몬 도감’을 완성하면서 여러 사건을 해결해나간다.



    포켓몬스터 시리즈 창조자인 타지리 사토시 게임프리크 대표는 ‘곤충소년’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어린 시절 곤충 채집을 좋아했다. 그는 잠자리채를 들고 다니며 곤충을 채집한 경험에서 영감을 받아 포켓몬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잠자리, 나비, 메뚜기를 한 마리씩 모으듯 피카츄, 파이리 등 포켓몬을 하나씩 수집하는 재미를 부여한 것이다. 여기에 초능력과 독특한 진화 방식, 모험을 덧입혀 동심을 사로잡았다. 게임 속에서는 물론, 피겨나 카드 등 관련 캐릭터 상품 또한 원작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종류의 포켓몬을 수집하는 재미를 자극한다. 포켓몬빵도 그중 하나다.

    보상 시스템으로 자극받는 뇌

    포켓몬 게임을 처음 접한 초심자(왼쪽)에 비해 게임을 즐겼던 실험 참가자들의 뇌 일부 영역이 활성화된 모습. [사진 제공 · 스탠퍼드대 ]

    포켓몬 게임을 처음 접한 초심자(왼쪽)에 비해 게임을 즐겼던 실험 참가자들의 뇌 일부 영역이 활성화된 모습. [사진 제공 · 스탠퍼드대 ]

    포켓몬빵 마케팅에는 띠부씰을 얻는다는 일종의 ‘보상 시스템’이 녹아 있다. 그런데 포장을 뜯기 전까지는 어떤 캐릭터가 나올지 알 수 없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보상을 받기 위해 수고한 과정과 노력을 더욱 흥미롭게 바꿔놓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소비자 연구 저널’에 발표된 소비자 행동과학 연구에 따르면 ‘불확실성’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데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인간은 보상 결과를 고려할 때 보편적으로 불확실한 것보다 확실한 것을 선호하는 위험 회피 성향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결과가 아닌 보상을 추구하는 과정에 집중할 때 불확실성은 흥분과 즐거움을 준다.

    이를 근거로 포켓몬빵에 수만 원을 쓰면서 띠부씰을 수집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설명할 수 있다. 자신에게 없는 희귀한 포켓몬을 얻을 때마다 우리 뇌는 행복한 화학물질인 ‘도파민’을 분비한다. 연구진은 “사람들은 미지의 것에 흥분한다”며 “불확실성은 더 긍정적이고 흥미로운 경험을 만들어주기 때문에 보상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노력, 시간, 돈의 투자를 증가시킨다”고 설명했다.

    포켓몬을 손에 넣는 보상으로 생기는 뇌의 변화도 흥미롭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 연구팀은 어릴 때부터 포켓몬을 즐긴 사람은 뇌 속 특정 영역이 발달된다는 연구 결과를 과학저널 ‘네이처 인간 행동’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6~7세에 포켓몬 게임을 시작해 성인이 돼서도 게임을 하는 이들과 포켓몬 게임을 처음 접한 초심자들을 대상으로 실험했다. 이들에게 포켓몬, 사람 얼굴, 동물, 자동차 등 이미지 수백 장을 보여주면서 지가공명영상(fMRI: functional management imaging)으로 뇌를 촬영했다. 그 결과 포켓몬 게임에 익숙한 이들은 포켓몬과 동물 이미지를 볼 때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뇌의 후두 측두구가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부위는 시각 정보에 반응하는 영역이다. 포켓몬을 접한 사람의 뇌는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약 2배 가까이 활발하게 반응했다.

    연구진은 “포켓몬 게임은 수백 마리 포켓몬 캐릭터 각각의 특징을 잘 알수록 좋은 결과를 얻는 보상이 따르기 때문에 뇌에 더 자극적으로 작용한다”며 “이러한 자극이 감수성 풍부한 어린이 두뇌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침으로써 뇌의 특정 영역이 포켓몬을 더 잘 받아들이도록 변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뇌가 어린 나이부터 경험적 학습에 반응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포켓몬 띠부씰 전에도 우표, 동전, 카드, 골동품 등 다양한 물품을 수집했다. 인류가 수집을 시작한 것은 1만2000년 전 유목 생활을 끝내고 정착 생활을 하면서다. 심리학의 대가 카를 구스타프 융은 인류가 생존을 위해 음식을 저장하면서 수집이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식량과 기타 생필품을 성공적으로 수집한 사람은 가뭄과 겨울 같은 환경 조건에서도 살아남아 후손에게 유전자를 물려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수집은 진화론적으로 더 장려되는 행동이었다.

    후세에 이르러 수집 욕구는 생존 본능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꼭 필요하지 않아도 특정 물건을 모으는 것으로 바뀌었으며, 현대에 와서는 일종의 자기표현 수단이 돼가고 있다. 독특한 수집품은 개성을 나타내는 한편, 같은 취미를 가진 이들과 넓은 범주에서 연결돼 있다는 공동체 의식을 느끼게끔 한다.

    띠부씰로 힐링하는 밀레니얼 세대

    특히 포켓몬빵 열풍의 중심인 밀레니얼 세대는 수집을 더욱 선호하는 추세다. 올해 초 미국 시장조사 전문업체 모닝컨설트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는 물리적인 물건을 수집할 뿐 아니라,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 같은 디지털 수집품도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집품의 경계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부감도 없다. 이들에게 수집은 일종의 ‘성취’와도 연결된다. 조슬린 맥도널 미국 노스웨스턴대 인지행동치료사는 ‘허프포스트’를 통해 “밀레니얼 세대는 대부분 무언가를 수집하면서 원하는 것을 소유할 수 있다는 성취감을 얻는다”며 “예를 들어 이전 세대는 집을 쉽게 사 자부심을 느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지금 같은 경우에는 다른 품목의 수집을 통해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초등학생 때에 비해 성인이 된 지금 포켓몬빵을 마음껏 구매할 수 있다는 점도 특별한 힘과 성취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포켓몬빵 외에 구슬아이스크림, 달고나, 텐텐, 웹툰 쿠키 등 추억의 간식거리를 사 먹는 ‘플렉스’를 즐기고 있다.

    사람들이 포켓몬빵에 열광하는 데는 추억 소환도 큰 이유를 차지한다. 빵을 사는 행위 자체가 스티커를 모으던 순수한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과거 향수(鄕愁)를 통해 현재의 고통을 잠시 잊는, 일종의 힐링 방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수집은 쇼핑의 쾌락을 느끼게 한다. 단, 수집에 집착해 강박적으로 사재기를 하거나 불안 증세를 느낀다면 문제가 있다. 그게 아니라면 수집은 불안을 잠재우고 편안함과 안정감을 제공하는 일종의 치유법이 될 수 있다.

    또 수집을 통해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당시 매료된 느낌을 되살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람들이 레트로에 끌리는 이유는 그것이 긍정적인 감정 반응을 일으키는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기억은 소리, 냄새, 특정 이미지, 생각에 의해 떠올라 도파민을 분비한다. 반면 과거에 대한 향수를 우려 섞인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많다. 레트로나 복고 같은 과거로 회귀는 현재로부터 도피를 의미하며 새로운 성장을 늦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최근 들어 향수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긍정적 개념으로 재정립되고 있다.

    ‘미국심리학회 저널’에 발표된 정신 및 행동 과학 연구에 따르면, 향수는 외로움을 줄이고 자존감과 낙관주의를 높인다. ‘실험 사회 심리학 저널’에 실린 또 다른 연구에서는 향수를 느끼면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개방성을 높이고 창의성을 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지나간 날들에 대한 감성적 그리움은 과거를 활용해 현재와 미래를 연결함으로써 개방적인 태도와 창의력을 키우고, 이는 창의적 표현에 영향을 미친다”며 “과거의 의미 있는 기억에 접근한다면 목적을 가지고 미래를 일궈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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