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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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우주산업 수직계열화 이룬 한화

글로벌 기업 지분 인수·R&D 적극 추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구심점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22-04-0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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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제2발사대에서 발사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우주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오른쪽).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제작한 누리호 75t 액체로켓 엔진. [사진 제공 · 한화그룹]

    지난해 10월 21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제2발사대에서 발사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우주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오른쪽).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제작한 누리호 75t 액체로켓 엔진. [사진 제공 · 한화그룹]

    2021년 10월 21일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의 첫 번째 발사를 앞둔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는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긴박하게 진행된 발사 준비를 거쳐 이날 오후 5시 마침내 누리호가 거대한 불기둥을 내뿜으며 하늘로 솟구쳤다. 발사 후 127초 만에 고도 59㎞에 이르러서는 추력 300t급의 1단 로켓을 분리했다. 2단 로켓을 분리한 후 이륙 976초 만에는 고도 700㎞ 도달에 성공했다. 아쉽게도 최종 관문인 위성모사체 궤도 진입에는 실패했지만 누리호 발사를 통해 한국은 세계에서 7번째로 1t급 이상 실용위성을 독자적으로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음을 세계에 입증해보였다.

    누리호는 독자적인 우주 수송 능력 확보를 위해 1.5t급 실용위성을 지구 상공 600~800㎞ 저궤도에 올릴 수 있는 3단형 한국형 발사체다. 누리호에는 1단에 75t급 액체엔진 4기, 2단에 75t급 1기, 3단에 7t급 1기까지 총 6개 엔진이 탑재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누리호의 심장’으로 불리는 이들 6기 엔진을 조립해 납품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엔진 부품인 터보펌프, 밸브류 제작과 함께 엔진 전체 조립까지 담당한다.

    지난해 10월 누리호 발사 후에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경남 창원시 조립공장에서 추후 발사될 한국형 발사체 엔진의 생산 및 각종 검증 작업을 하고 있다. 현재 누리호 2차 발사일은 6월 15일로 예정돼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누리호 발사는 국가적으로 엄청난 자산을 갖게 되는 것인 만큼 후속 사업도 중단 없이 안정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며 “우주발사체 분야는 당장의 경제성보다 미래 기회를 선점하는 측면이 크다 보니 산업계뿐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지속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류의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 우주산업

    경남 창원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로켓엔진 공장에서 작업자들이 누리호 엔진을 정비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한화그룹]

    경남 창원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로켓엔진 공장에서 작업자들이 누리호 엔진을 정비하고 있다. [사진 제공 · 한화그룹]

    우주산업은 ‘인류의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으로 꼽힌다. 분야도 다양한데, 크게 △위성체 △발사체 △지상체 장비 △위성 활용 서비스 등 4가지로 나뉜다. 먼저 위성체 사업은 우주여행 및 탐험 목적과 지구 궤도상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우주 비행체 관련 사업을 일컫는다. 발사체 사업은 위성체를 지구 대기권 밖 목표 궤도에 진입시키는 로켓 관련 사업이다. 그 밖에도 위성체와 발사체의 통제 및 각종 기능을 수행하는 장비를 총칭하는 지상체 장비 사업, 위성체로부터 통신과 방송망을 구축하거나 인공위성을 통해 기상 정보, 위치 정보 등을 수집하고 유통하는 위성 활용 서비스 사업 등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우주산업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2019년 미국 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유인우주선 발사에 성공하는 등 사업 다각화에 나서고 있다. 우주산업의 잠재력 또한 무궁무진한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에도 투자업계는 글로벌 경기침체를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동력 주인공으로 우주산업을 지목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글로벌 우주산업 규모는 2018년 3500억 달러(약 426조 원)에서 민간기업 주도하에 2040년까지 1조1000억 달러(약 1340조 원)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연평균 성장률(CAGR) 5.3%에 달하는 수치다.

    우주산업 관련 국가별 움직임도 활발하다. 중국은 2019년 1월 달 탐사선 창어 4호를 달에 착륙시켰고, 2020년 12월 운반로켓 창정 5호에 창어 5호를 실은 뒤 발사해 달 토양 샘플을 담아오는 데 성공했다. 일본도 2020년 12월 무인탐사선 하야부사 2호가 약 52억㎞ 여정 끝에 소행성 ‘류구’의 토양 표본을 가지고 돌아왔다. 스페이스X는 올해 1월 소형위성 143개를 실은 팰컨 9 로켓을 우주로 향해 쏘아 지구 위 500㎞ 궤도에 올렸다. 로켓 하나로 가장 많은 위성을 한꺼번에 지구 궤도에 배치하는 기록을 세운 것이다. 이는 2019년 스페이스X가 소형위성 개당 100만 달러(약 12억 원) 미만을 받고 우주에 올려주는 ‘우주 승차 공유 계획(SmallSat Rideshare Program)’을 발표한 후 첫 발사다.

    한국 우주산업에는 한화그룹이 있다. 한화그룹은 태양광사업과 함께 우주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정하고, 글로벌 우주시장 선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해 세계무대에서 사업 역량과 리더십을 확대해야 한다”며 “항공우주 등 신규 사업 역시 세계를 상대로 미래 성장 기회를 선점하라”고 당부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1월 국내 인공위성 전문업체 쎄트렉아이를 인수하며 위성사업에 처음 진출했다. 우주개발이 정부 주도의 ‘올드 스페이스(Old Space)’에서 민간 주도의 ‘뉴 스페이스(New Space)’로 넘어가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쎄트렉아이 지분 인수를 통해 양사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방침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앞으로 양사 역량을 집중하면 국내외 위성 분야에서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며 “지분 인수와 무관하게 쎄트렉아이 현 경영진이 계속해서 독자 경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한화에어로, 한화시스템에 5700억 출자

    지난해 2월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이 쎄트렉아이 등기임원으로 선임되면서 양사 협업이 본격화됐다. 당시 김 사장은 “항공우주사업 경영의 첫 번째 덕목은 ‘사회적책임’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자리를 따지지 않고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무슨 역할이든 하겠다”고 말했다. 이 약속대로 김 사장은 쎄트렉아이에서 보수를 받지 않고 있다.

    김 사장은 3월 29일 그룹 지주사격인 ㈜한화 사내이사로도 선임됐다. ㈜한화는 법적으로 그룹 지주회사는 아니지만 한화솔루션(한화 지분 36.23%),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 지분 33.95%), 한화생명(한화 지분 18.15%) 등 주요 계열사를 지배하며 실질적인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내이사 선임을 통해 김 사장의 그룹 내 지배력은 더욱 커졌고, 항공우주사업에 대한 지원도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쎄트렉아이의 기술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자금과 김 사장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합쳐지면 시너지 효과가 상당할 것”이라는 기대가 이미 나오고 있다.

    현재 쎄트렉아이는 세계 최고 해상도의 상용 지구 관측위성 ‘스페이스아이-티(SpaceEye-T)를 개발 중이다. 스페이스아이-티는 세계 최고급인 30㎝급 초고해상도 관측 기술을 갖춘 약 700㎏의 고성능 지구 관측 위성이다. 쎄트렉아이는 이 위성을 자체 투자로 개발한 뒤 직접 운용할 계획이며, 발사 목표 시기는 2024년이다.

    김 사장이 항공우주사업을 실질적으로 진두지휘하기 시작한 지 1년이 됐다. 지난해 3월 김 사장은 한화 계열사에 흩어져 있던 우주산업 핵심 기술의 유기적 결합을 위해 ‘스페이스 허브’라는 이름으로 사업 협의체를 출범하고 팀장을 맡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주축으로 구성된 스페이스 허브는 발사체, 위성 등 제작 분야와 통신 등 서비스 분야로 나눠 연구 및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또한 자회사 한화시스템은 위성 탑재체인 영상레이더(SAR), 전기광학(EO), 적외선(IR) 등 구성품 제작 기술과 위성안테나, 통신단말기 등 지상체 부문의 일부 사업도 맡고 있어 향후 우주 위성 분야에서 중장기적인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지난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1조2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준비 중인 한화시스템에 5700억가량(보통주 기준 48.99%)을 출자하기로 한 것도 그룹 내 항공우주사업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

    글로벌 우주 기업들과 어깨 나란히

    ‘스페이스 허브’는 지난해 5월 KAIST(한국과학기술원)와 공동으로 우주연구센터를 설립한다고 밝혔다. 스페이스 허브가 외부기관과 협력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KAIST 연구부총장 직속으로 설립되는 연구센터에 100억 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민간기업이 대학과 함께 만든 우주 분야 연구센터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새로 설립되는 연구센터의 첫 프로젝트는 저궤도(약 250~2000㎞) 위성 간 통신기술 ISL(Inter Satellite Links) 개발로 정해졌다.

    ISL은 레이저를 활용해 위성끼리 데이터를 주고받는 기술이다. 저궤도 위성에 ISL 기술을 적용하면 여러 대의 위성이 데이터를 주고받으면서 고용량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이 기술을 활용할 경우 운항 중인 비행기나 배는 물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오지에서도 인터넷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 특히 한화가 추진하는 위성통신, 에어 모빌리티 사업에도 활용할 수 있어 사업가치가 더욱 크다.

    한화시스템은 지난해 8월 영국 위성통신 서비스 기업 원웹 주식 25만 주(지분 8.8%)를 3465억 원에 매입하는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원웹은 저궤도에 위성을 띄워 전 세계에 초고속 인터넷을 제공하는 우주 인터넷 분야 선두 기업이다. 유럽연합(EU)도 원웹을 미국 스페이스X가 개발한 초고속 위성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의 대항마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9월 대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6개 정부출연 연구기관과 우주 현지 자원 활용을 위한 다자간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우주 현지 자원 활용은 달과 화성 같은 우주 행성의 자원을 활용해 물, 산소, 태양전지, 건축자재, 발사체 연료 등을 생산하는 시설이나 시스템을 뜻하는데, 국내 우주 기업 중 정부출연 연구소와 우주 현지 자원 활용 협약을 맺은 곳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유일하다.

    한화그룹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구심점 삼아 여러 자회사와 우주사업 밸류체인을 구성함으로써 국내 항공우주 기업 가운데 가장 빠르게 수직계열화를 구축해가고 있다. 위성체 제조(쎄트렉아이, 한화시스템, ㈜한화), 발사체 엔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 고체연료 부스터(㈜한화), 지상체 제작 및 운용(쎄트렉아이, 한화시스템), 발사대(한화디펜스) 등으로 사업 뼈대를 정하고 세분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우주산업은 막연히 멀게만 느껴지는 꿈이 아니다. 어쩌면 당장 내일이라도 우리 앞에 펼쳐질 수 있는 미래 사업이다. 미국 스페이스X의 일론 머스크, 아마존 창업자로 블루오리진을 이끌고 있는 제프 베이조스, 영국 버진 갤럭틱의 리처드 브랜슨 회장 등 글로벌 기업과 최고경영자(CEO)들이 앞다퉈 우주개발에 뛰어든 이유다.

    권세진 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현재 국내 기업들이 보유한 우주산업 핵심 기술은 1300조 규모로 예상되는 세계 우주시장에서 한국 위상을 드높이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며 “우주항공이 한국 대표 효자 산업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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