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나와 환호하는 독일인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십몇 년의 세월이 흐른 뒤, 한때 독일 사회에는 구(舊)동독에 대한 향수병이 번졌다. 구하기 어려워진 동독 상품이 인기리에 판매됐고, 영화 ‘굿바이 레닌’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2003년 최고의 영화로 선정되기도 했다.
모르는게 약? 열람 꺼리는 주민도 많아
하지만 막대한 규모의 통일자금과 구동독 재건 비용, 그리고 지속되는 불황으로 독일 경제는 그야말로 ‘바닥을 기었다’. 특히 구동독 주민들은 20%에 이르는 실업률뿐 아니라, ‘오시(Ossie·동독 출신이라는 뜻)’라 불리며 2등 국민 취급을 당하는 사회적 편견과도 싸워야 했다. “적어도 동독에서는 실업자는 없었다”라는 불평은 베를린 장벽을 다시 세우자는 어처구니없는 여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일부 독일 국민의 시대망상적 향수병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올해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타인의 삶’이다. 이 영화는 구동독 정부가 얼마나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감시체제를 유지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구동독 정부의 ‘슈타지(Stasi·국가안전부의 약칭)’는 일반 국민 사이에 약 10만명의 비밀정보원을 두었다고 전해진다. 민간인인 이들은 확고한 정치적 신념에 따라 자원하거나 출세 또는 보상금을 위해, 아니면 협박을 받아 어쩔 수 없이 가장 친한 친구, 동료, 가족이 한 말과 행동을 밀고했다. 이들의 밀고 내용은 그대로 문서에 기록되고 보관됐다. 정보 출처에는 비밀정보원의 실명이 아닌 암호명이 기재됐다.
장벽이 무너진 다음 해인 1990년 1월, 성난 군중은 슈타지 본부로 진입해 산처럼 쌓인 비밀문서를 확보했다. 한 집계에 따르면 문서 공개 후 10년 동안 약 170만명이 본인의 문서를 열람했다.
그 결과는 이혼, 결별, 의절이었다. 설마 했는데 정말 내 아내가, 남편이, 동생이, 애인이, 가장 믿었던 동료가, 죽마고우가 나를 배신하고 밀고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많은 사람들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많은 구동독 주민들이 아직까지 본인의 문서를 열람하길 두려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 ‘타인의 삶’의 한 장면. 전 부인이 자기를 밀고했다고 주장한 동독 출신 배우 뮈헤(사진 왼쪽)는 7월 말 위암으로 타계했다.
그러나 통일 독일에서는 그저 ‘구동독 출신 왕년의 스타’일 뿐, 그가 설 자리는 없었다. 제니와 이혼하고 서독 출신 연극배우와 결혼하면서 뮈헤는 다시 스타로 떠올랐다. 그의 세 번째 부인은 연극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안의 딸이었다.
영화 ‘타인의 삶’의 개봉을 앞두고 뮈헤는 “배역 준비를 위해 그저 옛날 일들을 회상하기만 하면 됐다”고 고백했다. 제니가 슈타지의 비밀정보원으로 자기를 수년간 밀고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2001년 독일 ‘수퍼 일루(Super Illu)’지는 슈타지의 비밀문서에서 암호명이 ‘잔(Jeanne)’인 비밀정보원이 뮈헤를 1979년부터 89년까지 밀고했다는 기사를 게재했다. 뮈헤는 영화 개봉을 앞두고 이 ‘잔’이 바로 제니라고 주장했다.
당시 유방암 말기로 투병 중이던 제니는 뮈헤가 영화 홍보를 위해 자신을 이용하고 음해한다며 격렬히 비난했고, 급기야 소송을 제기했다. 비밀문서를 분석한 결과 비밀정보원 ‘잔’은 제니임이 분명하다는 전문가의 감정도 있었다. 하지만 제니는 결코 비밀정보원으로 활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해당 문서를 담당했던 당시 슈타지 요원도 제니를 만났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이 슈타지 요원이 제니와 접선했다는 기록 중 일부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증명됐다. 그가 제니와 만났다고 상부에 보고한 그날 그 시간에 제니가 연극무대에 서 있었음이 증명된 것이다. 최근 법원은 제니가 ‘잔’이라는 비밀정보원으로 활동한 물증이 없다며 제니의 손을 들어줬다.
밀고 공방 배우 부부 재판 후 병사
동독이 건재하던 시절, 대부분의 동독 국민은 출국허가를 얻기 힘들었을 뿐 아니라, 입국 즉시 공항에서 여권을 압수당했다. 그러나 뮈헤는 동독이 무너지던 그날까지 여권을 소지하고 언제든지 자유롭게 출국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특권층 가운데 한 명이었다. 설사 제니가 남편을 밀고했더라도 그리 악의적이지 않았거나, 뮈헤 자신이 철저히 체제에 동조한 인사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통일 후 뮈헤는 구동독 체제를 맹렬히 비판했다. 지나면 다 열사, 투사인 것이다. 외롭고 힘겹게 암과 싸우던 제니는 지난해 8월 쓸쓸히 죽어갔다.
이혼 당시 제니에게 일방적으로 결별을 요구했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처절하게 결백을 주장하던 전부인을 끝까지 믿지 않았던 뮈헤도 지난달 말 위암으로 갑작스럽게 타계했다. 이들의 진실 공방은 이제 저세상으로 넘어갔다. 영화 ‘타인의 삶’으로 뮈헤는 국내외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상을 다 받았으며, 배우로서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신의 재판 앞에서 아카데미상은 얼마나 헛된 것인가.
‘타인의 삶’의 감독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는 취재차 만났던 전직 슈타지 요원들이 대부분 지적이고 똑똑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치 시절 비밀경찰 게슈타포가 ‘뼈를 부러뜨리는’ 임무를 맡았다면, 슈타지는 지능적인 심리테러로 ‘인간의 영혼을 두 동강 내는’ 구실을 했다고 한다.
주간지 ‘슈테른’지는 제니와 뮈헤의 죽음을 ‘이미 오래전에 몰락한 동독이 뿌려놓은, 서서히 갉아먹는 독(毒) 때문’이었다고 표현했다. 그 희생자가 이 둘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