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28일부터 사흘간 개최될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국내외 관심이 정상회담에서 논의할 의제에 집중되고 있다. 북핵 문제가 주요 의제 중 하나여야 한다는 주장에는 이견이 없다. 그것이 해결되지 못한 상황에서 남북한만의 평화증진을 도모하는 것은 결국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이고, 한반도 평화 차원을 떠나 동북아 안보체제의 불안을 지속적으로 가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 아래 필자는 북핵 문제의 핵심 이슈인 핵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기술적 분석을 했다.
지난해 10월 핵실험 직후의 평양 시내. ‘세계적인 핵보유국을 일떠세운(일으켜 세운) 절세의 령장 김정일 장군 만세!’라는 핵실험 찬양 표어 아래로 시민들이 한가로이 걷고 있다
7월18일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북한 영변의 5MWe 흑연로, 재처리시설, 핵연료 제조시설, 50MWe 흑연로, 태천의 200MWe 흑연로의 폐쇄를 확인했다. 이는 8월7일 북한을 방문한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의 존 루이스 박사와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에 의해서도 재확인된다.
이로써 북한은 재처리시설을 포함한 영변 핵시설을 폐쇄·봉인하고 IAEA와의 합의에 따라 모든 필요한 감시 및 검증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IAEA 요원을 복귀토록 한 2·13 합의의 초기 조치를 이행한 셈이다.
7월18일부터 사흘 동안에는 2·13 합의 이행의 두 번째 단계인 북한의 모든 핵 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한 신고와 현존하는 핵시설의 불능화 방안 논의를 위한 제6차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가 열렸다.
북한이 6자회담 첫날 회의에서 5~6개월 안에 핵시설에 대한 불능화를 이행하고 모든 핵 프로그램을 빠짐없이 신고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불능화 시한 등은 8월 중 열릴 실무그룹회의에서 논의하기로 한 수준에서 회의가 끝났다.
북핵 검증 및 폐기 문제와 직결되는 북한의 핵목록 신고와 핵시설 불능화 이행은 비핵화를 위한 중요한 초기 조치다. 북핵 목록과 불능화 대상 및 정도에 대한 북미간 해석의 차이가 쟁점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고된 핵시설, 밝혀져야 할 핵시설
북한은 1985년 12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으나 92년 4월9일에야 IAEA 안전조치협정을 비준하고, 5월4일 IAEA에 북한 핵시설에 대한 최초 보고서를 제출했다. 북한이 밝힌 핵시설 중 핵물질 생산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주요 핵시설은 다음과 같다.
흑연감속원자로 : 영변의 5MWe 원자로, 건설 재개 중인 50MWe 원자로, 건설 재개까지 오랜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 태천의 200MWe 원자로.
IRT 연구로 : 영변의 열출력 8MW인 IRT 연구로는 동위원소 생산용이며 고농축우라늄(HEU) 핵연료를 장전함.
핵연료 제조시설 : 재가동을 준비 중인 영변의 핵연료 제조시설은 연간 50MWe 원자로 전체 노심 분량인 핵연료봉 8800개를 생산할 수 있음.
재처리시설 : 영변의 재처리시설은 하루 약 0.5t의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음.
2·13 합의 초기 조치 이행과 관련, IRT 연구로를 제외한 핵시설 다섯 곳에 대해서는 향후 폐쇄를 검증하기 위해 8월9일 IAEA가 감시카메라를 설치했다고 발표했다.
핵무기 프로그램 신고와 관련해 위 핵시설 외에 추가로 밝혀져야 할 핵 목록으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이 있다.
플루토늄 프로그램 관련 : 이미 추출해 보관하는 플루토늄 재고, 재처리하지 않고 보관 중인 사용후핵연료 재고, 재처리 과정에 생긴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재고, 50MWe 흑연로 주요 부품(원자로 용기, 흑연감속재) 생산시설, 주요 관련 문서 및 인력 현황.
우라늄농축 프로그램 관련 : 원심분리기 재고, 육불화우라늄 전환시설, IRT 연구로 내 HEU 핵연료 재고, 주요 관련 문서 및 인력 현황.
핵무기 (자체) 프로그램 관련 : 플루토늄 피트(pit) 재고, 핵기폭장치 재고, 핵무기 관련 생산시설, 핵실험장, 주요 관련 문서 및 인력 현황.
플루토늄 프로그램 폐기
방사능에 오염된 핵시설의 폐기는 단순한 물리적 파괴만이 아니라 방사능 제염작업이 필요하다. 플루토늄 프로그램 폐기의 핵심은 1980년대 말부터 운전 개시된 영변 5MWe 원자로와 재처리시설이다.
영변 5MWe 원자로 폐기의 경우, 원자로 가동으로 중준위 방사성폐기물로 변한 흑연감속재의 폐기가 핵심이다. 영국 일본 프랑스의 흑연감속로 폐기 경험에 근거할 때, 20~30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고 폐기과정에서 발생하는 방사성폐기물의 관리와 저장에 안전 기술적 주의가 요구된다. 폐기비용의 선례로, 흑연감속재 중량이 북한의 5MWe 원자로와 비슷한(약 600t) 일본 흑연감속로 토카이(Tokai-1) 폐로 비용은 약 7억5000만 달러였다.
영변 재처리시설의 경우 방사능에 오염된 재처리시설 자체의 폐기만이 아니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HLW)도 폐기해야 한다. 더티밤(Dirty Bomb)으로도 사용될 여지가 있는 북한의 HLW는 현재 불안정한 액체상태(25만~50만ℓ로 추정됨)로 저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영변 재처리시설의 규모(길이 180m, 폭 20m, 높이 6층 건물)보다 작은 벨기에의 유로케믹 재처리시설(Eurochemic·길이 80m, 폭 27m, 높이 30m 건물)의 폐기비용은 1987년 기준으로 약 3억 달러였다. 북한의 경우, 여기에 더해 HLW의 고형화 비용(Vitrification Cost)과 처분비용, 여타 방사성폐기물의 처리 및 처분 비용이 추가되므로 총비용은 조 단위 이상일 것으로 예상된다. 폐기기간은 10~30년이다.
그리고 북한 플루토늄 프로그램의 재발 방지를 위해 관련 중요 문서는 폐기되거나 보안이 유지돼야 하고 관련 인력은 직업 전환이 돼야 한다.
우라늄농축 프로그램 폐기
북한은 지금까지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을 부정하면서도 미국이 증거를 제시하면 해명할 용의가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렇지만 2005년 6월5일 아사히신문은 북한이 유럽의 우라늄농축 기업인 유렌코사(社)가 개발한 원심분리기와 동일한 치수와 소재인 고강도 알루미늄관 150t(원심분리기 2600대 분량)을 러시아 업자에게서 입수했다는 정보를 미국이 확보했다고 전했다. 더구나 2005년 9월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북한에 12~20기의 P-2 원심분리기, 설계도와 관련 부품을 제공한 사실을 시인했다.
그런데 위 내용이 사실이더라도 핵무기 1기 분량의 HEU(90% U-235) 25kg을 생산하려면 약 1000기의 P-2 원심분리기를 1년간 가동해야 한다. 원심분리기는 외부용기 제작에 필요한 고강도 알루미늄관 외에도 특수강철 로터(Rotor), 안정화 직류공급장치 등 핵심 부품이 필요하다. 이들 부품은 수출통제 품목으로 지정돼 있어 북한이 공식적으로 수입할 수 없으며, 자체 제작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원심분리기 제작 능력의 한계를 고려할 때 북한은 여전히 소수의 원심분리기를 이용한 우라늄농축 연구개발 단계일 것으로 추정되며, 이를 통해 의미 있는 수준의 HEU를 생산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라늄농축을 이용한 핵개발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북한의 우라늄농축 관련 시설과 장비는 반드시 폐기돼야 한다. 그리고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의 재발 방지를 위해 플루토늄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관련 문서는 폐기되거나 보안이 유지돼야 하고, 관련 인력은 직업 전환이 돼야 할 것이다.
우라늄농축 프로그램과 직접적인 연계는 없지만, 핵무기로의 전용 가능성이 있는 HEU 핵연료가 영변의 IRT 연구로에 장전돼 있다. IAEA 자료에 근거해 과학과국제안보연구소(ISIS) 데이비드 올브라이트는,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IRT 연구로용 HEU 핵연료를 구입했다고 밝혔다(표 참조).
필자가 IRT 연구로의 열출력 이력에 근거해 계산한 바에 따르면, 현재 북한은 최소 67% U-235 농축도 HEU 6.0kg과 최소 34% U-235 농축도 HEU 13.5kg을 IRT 핵연료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핵무기로의 전용 방지를 위해 IRT의 HEU 핵연료는 조속한 시기에 제3국(미국이나 러시아)으로 반출시켜야 한다. 동위원소 생산용이라는 IRT 연구로는 기능적 손실 없이 HEU 핵연료 대신 LEU(저농축우라늄) 핵연료로 대체 가능하며, 신(新)LEU 핵연료는 러시아로부터 공급받을 수 있다.
조 단위 비용 소요 구체적 대안 마련을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의 폐기와 관련해 시설, 즉 플루토늄 피트 및 핵기폭장치 제조시설, 장비들은 폐기돼야 하고 핵실험장은 폐쇄돼야 하며, 이미 생산된 플루토늄 피트 및 핵기폭장치는 제3국(미국이나 러시아)으로 반출시켜야 한다.
따라서 북한의 불능화 대상 핵시설을 단지 영변의 다섯 핵시설에 국한해서는 비핵화를 위해 충분하지 않으며, 영변 외 북한 지역에 산재한 핵무기 프로그램 시설, 핵무기, 핵물질, 관련 인력과 주요 문서 등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비핵화의 완결을 위한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의 폐기는 단순히 핵물질 생산 방지를 위한 불능화만이 아니라, 장기적인 환경안전 관점에서 방사능 물질의 제염까지 고려해야 하며, 완전한 폐기를 위해서는 그 기간만 10~30년 이상, 비용은 조 단위 이상일 것으로 예상되므로 향후 6자회담에서 장기적·구체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끝으로 동위원소 생산 목적이라는 영변의 IRT 연구로는 핵무기 전용 방지를 위해 그 속에 든 HEU 핵연료를 조속한 시기에 제3국(러시아나 미국)으로 반출시키되, 연구로의 기능 유지를 위해 LEU 핵연료로 대체할 것을 향후 6자회담에서 논의하라고 권고한다.
러시아로부터 구입 연도 | 핵연료 명세 | 우라늄 명세 |
1967~1974 | 10% U-235 농축 LEU, 핵연료봉 38개 | 전체 우라늄 48.6kg 중 U-235 4.86kg |
1974~1986 | 36% U-235 농축 HEU, 핵연료봉 23개 | 전체 우라늄 13.5kg 중 U-235 4.86kg |
1986~1992(?) | 80% U-235 농축 HEU, 핵연료봉 30개 | 전체 우라늄 6.0kg 중U-235 4.80kg |
(주: IAEA는 20% U-235 농축도 이상의 우라늄을 고농축우라늄(HEU), 그 미만 농축도의 우라늄은 저농축우라늄(LEU)으로 정의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