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월 9일 금수산 영빈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시 주석이 상당한 예우를 갖춰 북한을 방문한 것은 올해가 북한과 중국이 상호 방위조약인 ‘조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을 체결한 지 65주년이기 때문이다. 1961년 7월 11일(이하 현지 시간) 당시 김일성 북한 주석과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는 중국 베이징에서 이 조약에 서명했다. 중국은 그동안 각국과 각종 조약들을 체결했지만 상호 방위조약에 서명한 국가는 지금까지 북한밖에 없다. 이 조약이 상호 방위조약인 이유는 자동군사개입 조항 때문이다. 이 조약 제2조는 “일방이 무력침공을 당해 전쟁 상태에 처할 경우 상대방은 모든 힘을 다해 지체 없이 군사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북중 혈맹 관계를 상징하는 조항이다.
러우 전쟁 계기로 밀착한 북러
중국은 그동안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미국이 강력한 제재 조치에 나서면서 북한과 체결한 상호방위조약을 상당한 부담으로 여겨왔다. 북한이 한국이나 미국에 군사 도발을 감행할 경우 중국은 마지못해 북한을 지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선 자동군사개입 조항을 삭제하거나 이 조약 자체를 폐기하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북중 관계는 코로나19 팬데믹과 북한이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와 밀착하면서 소원해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24년 6월 19일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갖고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협정’에 서명했다. 이 조약의 4조에는 “일방이 공격당할 경우 상대방은 유엔 헌장 51조와 러시아·북한의 국내법에 따라 모든 필요한 지원을 즉시 제공한다”며 자동군사개입 조항이 들어갔다. 북한과 러시아는 1961년 ‘조소 우호 협력 및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에서 자동 군사개입 조항을 담았다가 1996년 이 조약이 폐기되면서 더 이상 효력을 갖지 않게 됐다. 이후 북러는 2000년 ‘조러 친선 및 선린협력 조약’을 맺었지만 여기엔 자동군사개입 조항이 들어가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문화부 소속 전략소통·정보보안센터(SPRAVDI)가 공개한 영상에서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으로 추정되는 군인들이 줄을 서서 보급품을 받고 있다. 동아DB
시 주석이 ‘조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 65주년을 코앞에 두고 평양을 찾은 것은 갈수록 가까워지고 있는 북러의 밀착을 견제하고 소원해진 북중 관계를 복원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실제로 시 주석과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에서 “두 당, 두 나라 사이의 고위급 래왕(왕래)을 통한 전략적 의사소통을 더욱 긴밀히 하고, 정치·경제·문화 등 각 분야에서의 교류와 협력을 보다 확대발전시켜 조중 관계발전의 새로운 장을 열기로 합의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양국 정상이 조약 체결 65주년을 계기로 쌍방이 기념행사를 개최하는 데에도 의견을 같이했다고 전했다.
비핵화 뜻하는 ‘한반도’ 언급 없어
중요한 점은 시 주석이 북중 관계 복원의 대가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묵인했다는 것이다. 시 주석은 정상회담에서 “중국과 북한은 전략적 조율과 협력을 강화하고 각국의 주권·안보·발전 이익을 확고히 수호하며, 역내 평화와 발전을 공동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비핵화를 뜻하는 ‘한반도’를 일절 거론하지 않았다. 북한 노동신문이 6월 8일자 1면에 실은 시 주석 기고문에도 ‘한반도’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2019년 평양 정상회담에서 당시 중국 측이 공개한 자료에선 시 주석이 ‘한반도’를 9차례 언급한 바 있다. 대신 시 주석은 “패권주의와 강권 정치를 반대 한다”며 “평등하고 질서 있는 세계의 다극화와 보편적 혜택과 포용적인 경제 세계화를 공동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시 주석은 북미간 비핵화 협상을 일정 부분 중재하려던 입장에서 북한을 ‘반미 연대’의 핵심 축에 포함시키려고 한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북한과 중국의 관계 발전을 국가의 가장 중대한 제1 전략 사업으로 여기고, 지역 및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공동으로 기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북한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고 중국이 핵심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취하는 정책과 입장을 확고히 지지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양국 정상회담 내용을 볼 때 북중 관계는 복원됐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도 앞으로 강화될 것이 분명하다. 북한이 생존 전략으로 내세운 ‘핵보유국 지위’ 인정과 중국의 핵심 이익인 대만 정책 지지를 서로 주고받은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6월 9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열린 시 주석 환송식. 뉴스1
이번 정상회담에서 또 하나 눈여겨 볼 점은 북중 군사교류다. 시 주석은 정상회담에서 모든 분야의 협력을 거론하면서 군사 분야에서 교류를 강화하자고 밝혔다. 북중 관계에서 군사 교류가 공개적으로 언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상회담에는 둥쥔 중국 국방부장과 노광철 북한 국방상이 배석했는데, 양국 군부 수장이 참석한 것도 지금까지 처음이다. 일각에선 중국이 언급한 ‘군사 협력’이 동해 등 한반도 인근에서 북한과의 연합훈련을 시사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중국은 러시아와 여러 차례 군사 훈련을 실시한 바 있지만, 한미일과의 관계 악화 등을 고려해 북한과는 연합 훈련을 실시한 적이 없다. AFP 통신은 최고지도자가 공개적으로 군사 분야 협력을 거론한 것은 단순한 우호적인 표현을 넘어 향후 북중러 연합 군사훈련이나 안보 협력 확대를 위한 명분 쌓기 성격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향후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혈맹에 버금가는 북중 군사 협정이 체결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주한미군 역할을 중국 견제와 대만 문제 개입으로 전환할 경우 한·미 연합훈련에 대응하는 북·중 군사훈련이 실시될 수도 있다.
국경 재개통해 통상 정상화 제안
중국은 또 북한을 자국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경제 협력이라는 ‘당근’도 제시했다. 시 주석은 “경제 무역, 농업, 건축, 과학기술, 의료 등 협력을 확대하고 국경 통상구(通商口)의 전면 재개통과 민항 항공편·국제 여객열차 운행 재개를 통해 인적 교류를 확대하고 쌍방향 교류를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경 통상구는 양국이 화물과 사람이 오갈 수 있도록 공식 지정한 국경 출입구(관문)를 말한다.압록강과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접경한 북·중 간 주요 통상구는 단둥~신의주, 훈춘~나선, 지안~만포, 투먼~남양 등을 포함해 10여 개다. 국경 통상구의 전면 개방은 북중 양국 간 화물 운송, 국경 무역, 인적 왕래 등의 본격적인 교류 정상화를 의미한다. 이 경우 북한은 미국의 제재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제적 탈출구를 확보할 수 있다. 이번 회담은 북중 관계가 전통적 우호 관계를 넘어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전화점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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