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 이후 기술 발전으로 주식시장이 상승한 사례가 많았다. 챗GPT 생성 이미지
세계대전이 만든 상승장
왜 전쟁은 특별할까. 답은 의외성에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시장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틀어진다. 이때 증시는 요동치지만, 결국 새로운 흐름에 적응하고 지수가 상승하는 흐름이 반복돼왔다. 제1차 세계대전 후 1920~1929년 다우지수는 5배 넘게 상승했다. ‘광란의 1920년대(roaring twenties)’로 불렸다. 전쟁으로 피해가 막대했지만 자동차, 항공기 등 민간산업이 성장했다. 전쟁이 없었다면 보편화되지 않았을 기술이 전쟁 때문에 급속도로 발전한 것이다. 예정에 없던 대규모 투자금이 전차나 전투기 개발에 투입되고, 이때 발전한 기술이 민간으로 흘러들어가 특정 산업이 발달하면서 증시 상승 속도도 함께 가팔라졌다.이러한 흐름은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 당시에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1950~1960년 다우지수는 3배 넘게 상승했다. 자동차, 에너지 업종은 물론, 가전제품이 새롭게 가세했다. 레이더 기술을 활용한 전자레인지, 군사용 냉각 기술을 적용한 냉장고, 항공기와 잠수함 제어 기술에서 발전한 세탁기 같은 가전제품이 일상화되면서 가전제품 제조사 주가가 폭등했다.
베트남전쟁도 마찬가지다. 1975~1985년 다우지수는 4배 이상 올랐다. 1980년 폴 볼커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기준금리를 20%까지 올리며 고강도 긴축을 시행했지만, 전쟁 이후 상승세에 방해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통신 기술, 항공 기술, 스마트 제품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특히 베트남의 고온다습한 정글에서 무전기, 암호화 장비, 미사일 제어 컴퓨터를 작동하기 위해 발전한 반도체 기술은 개인용 컴퓨터 보급의 초석이 됐다.
걸프전쟁은 또 어떤가. 1990년 걸프전 발발 후 1999년까지 나스닥은 10배, 다우지수와 S&P500은 4배 이상 상승했다. 특히 닷컴버블로 나스닥이 크게 올랐다. 인터넷이 널리 퍼진 계기도 걸프전이다. 1990년은 인터넷의 월드와이드웹(www)이 대중화되기 전이었지만, 전쟁을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됐다. 미국 국방성이 전쟁에 대비해 개발한 분산 네트워크 기술은 걸프전에서 지휘통제 시스템의 안전성을 입증했다. 특정 기지가 파괴돼도 통신이 끊기지 않고 정보도 유실되지 않는 인터넷의 핵심 원리가 군사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걸프전은 전투 현장이 생중계된 최초 전쟁이었다. CNN 등의 위성 생중계를 보면서 실시간 정보 동기화에 대한 욕구가 강해졌고, 이는 인터넷 보급을 앞당겼다. 민간으로도 확대돼 인터넷이 급속도로 퍼졌고, 나스닥의 폭발적인 상승으로 이어졌다.
무기보다 중요한 AI
2003년에는 이라크전쟁이 일어났다. 전쟁 발발 후 2007년까지 나스닥은 2배, 다우지수는 약 1.6배 상승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코스피다. 걸프전 후에는 외환위기 사태로 증시가 붕괴됐다가 1998년과 1999년에 회복했지만, 이라크전쟁은 달랐다. 2003~2007년 코스피는 4배 넘게 상승하며 사상 최초로 2000 선을 돌파했다. 최대 수혜주는 조선주였다. 이라크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해상운임이 상승하자 선박 발주가 줄을 이었다. 당시 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3사의 독주 체제가 굳어졌다. HD현대중공업은 4년간 30배 이상 폭등하며 전설의 주식이 됐다. 중국 조선업 기술력이 따라오기 전이라 그 효과는 더욱 컸다.올해는 미국-이란 전쟁을 빼놓을 수 없다. 최대 수혜 분야는 인공지능(AI)이다. 지금까지 전쟁이 무기 기업에 큰 이득을 가져다줬다면 이번엔 AI 기업이 주인공이다. 미국-이란 전쟁 전까지는 핵무기를 보유해 힘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러나 AI가 발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핵무기는 상대국의 보유 현황을 추정할 수 있어 억제력이 작동하지만, AI 시대엔 상대방의 전력이 불확실하다. 이에 한계가 없는 군용 AI 개발 경쟁에 가세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때 가장 떠오른 기업이 미국 팔란티어다. 팔란티어는 2019년부터 ‘프로젝트 메이븐’으로 미국 전쟁부의 핵심 AI 기술을 담당하고 있다. 메이븐은 미국-이란 전쟁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전쟁이 일어나자 팔란티어뿐 아니라 오픈AI,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오라클 등 거의 모든 빅테크가 군용 AI 프로젝트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미국 국방 예산은 2027년 1조5000억 달러, 한국 돈으로 2200조 원을 넘어설 예정이다. 이 중 상당 부분이 AI 관련 예산으로 편성될 전망이다. 미국 방위산업 주도권은 무기업체가 아니라 빅테크로 넘어갈 테고, 이런 현상은 앞으로 가속화돼 AI 버블론을 잠재울 것이다.
세계대전이 자본주의 대량생산 체제를 완성했고 걸프전이 인터넷에 기반한 정보기술(IT) 산업을 꽃피웠다면, 미국-이란 전쟁은 AI를 국가 안보의 중심으로 만든 전쟁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 핵심에는 당연히 반도체산업이 있다. 전후(Post-War) 주식시장 특성을 잘 파악해야 만족할 만한 수익을 거두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