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노즈 바르가바 씨는 인도계 미국인이다. 수학 영재였던 그는 미국 프린스턴대를 중퇴한 뒤 인도로 돌아가 12년간 수도승으로 살았다. 다시 미국으로 온 뒤 이런저런 사업을 하다 ‘5시간 에너지(5-hour Energy)’라는 이름의 에너지드링크를 만들었다. 흡사 엔진 첨가물처럼 생긴 이 음료는 공전의 히트를 했고, 연매출이 1조 원에 달했다. 카페인음료 사업의 성공은 그를 4조 원대 자산가로 만들었다.
2015년 바르가바 씨는 전 재산의 99%를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쓰겠다고 선언했다. 2016년 5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파이오니어 콘퍼런스 기조연설자로 나선 그는 고정식 자전거처럼 생긴 발전장치를 보여주며 한 시간만 돌리면 집 안의 웬만한 가전제품을 작동시킬 만큼 전기를 만들 수 있다고 소개했다. 전기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인도 빈곤층에게 자가발전 장비를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사업이었다. 한 인터뷰에서 “왜 수도원 생활 12년 만에 갑자기 돌아와 기업가가 됐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때와 지금이 다르지 않다. 지금도 내가 버는 수입은 모두 자선사업에 쓴다”고 대답했다.
소셜벤처를 육성하는 임팩트 투자기관
바르가바 씨는 인도의 빈곤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는 사회적 기업가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소셜벤처는 운동이 아닌 기업 언어로 세상의 문제에 접근한다. 목표는 기업이 존속하는 동안 지속된다. 흔히 비영리일 것이라 짐작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외국에서는 영리기업으로 소셜벤처를 하는 경우가 흔하며, 오히려 기업의 존속과 성장에 도움이 된다.
소셜벤처도 일반 스타트업처럼 투자를 받는다. 흔히 VC(벤처캐피털)라 부르는 일반 모험자본은 사회적 문제 해결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소셜벤처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이들이 필요하다. 이들을 ‘임팩트 투자자’라 하며, 개인이나 재단을 통해 소셜벤처를 지원한다. 한국도 임팩트 투자기관이 10여 곳에 달하고 펀드 규모는 500억 원가량 된다. 대표적인 임팩트 투자기관으로는 ‘소풍’ ‘크레비스’ ‘D3쥬빌리’ ‘KAIST청년창업투자지주’ ‘행복나눔재단’ 등이 있다. 또 일반 스타트업 펀드는 물론, 소셜벤처 펀드도 운용하는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 ‘미래에셋벤처투자’ ‘포스코기술투자’ 등도 있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면서 기업으로서 존속할 수 있는 이익까지 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비용 절감을 통한 효율성 증대, 적절한 기술 도입은 필수적이다. 2016년 11월 초 ‘D3쥬빌리’가 주최한 국제투자자콘퍼런스에서 권혁태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 앞에 큰 돌이 있다. 이 돌을 저쪽으로 옮겨 놓아야 하는데 좀 더 쉽게, 연속적으로 하기 위해 그 밑에 바퀴를 다는 것이다. 이게 기술의 역할이다. 우리 사회에는 사회적 기업, 소셜벤처 하면 이 돌을 저기까지 옮기는 데 힘이 들어가야 하고, 땀을 뻘뻘 흘려야 한다는 이상한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다.”
자동차 공유 서비스의 진화
소셜벤처는 기술을 이용해 비용 절감을 꾀한다는 점에서 취약계층에 일자리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 기업과 다르다. 기술 기반의 소셜벤처가 많이 모인 공유경제 영역 가운데 언론에서 가장 주목하는 자동차 공유 서비스를 살펴보자. 업체당 100만 명 넘는 회원이 전국에 산재한 수천 대 차량을 실시간으로 예약하고 즉시 결제도 한다. 카드 키가 없어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차문을 열고 닫을 수 있다. 운행이 종료되면 반납과 동시에 거리 요금을 계산해 알려준다. 이 모든 과정이 직원이 전혀 필요치 않은 자동 시스템으로 이뤄진다.시작은 카셰어링 원조라 할 집카(ZipCar)의 2009년 나스닥 상장이었다. 이 모델의 성공 가능성을 본 이봉형 강원대 교수가 ‘그린포인트’를 설립했다. 비슷한 아이디어를 가진 10여 개 업체가 각자 달리기 시작했다. ‘그린포인트’는 2011년 ‘그린카’가 됐다. 2013년 대기업인 KT 계열사가 지분의 49%를 인수했고 2015년 롯데렌탈이 100% 지분을 인수하면서 그린카는 소셜벤처 시대를 성공적으로 졸업했다. 제주에서 시작해 1위 업체가 된 ‘쏘카’도 2015년 SK가 지분 20%를 600억 원에 가져가면서 대기업 일원이 됐다. 창업 4년 만에 3000억 원 가치를 인정받으며, 소셜 영역에서 신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김지만 창업자는 지난해 봄 쏘카를 떠나 카풀 서비스업체 ‘풀러스’를 창업했다. 그렇게 소셜벤처의 연쇄 창업자가 됐다.
지금은 대원제약의 계열사가 된 ‘딜라이트’도 기술 기반의 소셜벤처로 유명하다. 가톨릭대 재학생이던 김정현 대표와 친구들은 100만 원 넘는 가격 때문에 보청기를 사지 못하는 저소득층 어르신을 위해 34만 원짜리 제품을 내놓았다. 청각장애가 있는 극빈층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지원받아 보청기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회사 매각 후 김 대표도 ‘우주’라는 또 다른 소셜벤처를 창업했다.
지구를 구하는 버섯
생태계 복원과 환경 문제는 소셜벤처가 좋아하는 주제다. ‘어반비즈’는 서울 전역에 산재한 도시 양봉장 11곳 가운데 8곳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설탕을 먹이거나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는 건강한 양봉을 추구하면서 도시 양봉가 육성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꼬마농부’는 환경을 지키는 먹을거리에 관한 교육 콘텐츠를 만든다. 쓰레기 매립장으로 갈 커피 찌꺼기로 버섯을 키운다. ‘지구를 구하는 버섯친구’라는 이름의 재배 키트도 만들었다. 독성 탓에 일반 작물에 바로 거름으로 줄 수 없는 커피 찌꺼기지만 버섯을 재배한 뒤에는 퇴비로 쓸 정도로 순해진다.
‘트리플래닛’은 전 세계인이 함께 나무를 심는 활동을 한다. 그 가운데는 좋아하는 아티스트에게 줄 선물로 숲을 조성하는 사람들도 있다. 2016년 12월 중순 현재 ‘트리플래닛’ 사이트를 방문하면 방탄소년단 정국의 스무 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이미 247명이 847만 원을 기부했다. 비스트 용준, 소지섭, 임시완, EXID 숲도 있다. 역사적 사건을 잊지 않으려고 숲을 선택한 이들도 있다. 일본군의 전쟁 성노예로 고통받은 이들을 잊지 말자는 ‘소녀들을 기억하는 숲’에는 3700만 원 이상 모였다. 세월호 기억의 숲, 연평해전 영웅의 숲도 있다. 이렇게 심은 나무가 전 세계에 55만 그루라고 한다.
‘비플러스’는 대출형 P2P(Peer to Peer)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다. 일반 P2P 대출보다 훨씬 낮은 4~6% 대출금리 상품을 중개하는데, 소셜벤처의 이자 부담을 줄여주려는 취지다. 투자자에게 돌아가는 이자소득은 낮지만, 소셜벤처 활동에 동참하는 데서 더 큰 의미를 찾는다. 예술 분야의 크라우드펀딩으로 유명한 ‘텀블벅’은 작품을 공동구매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창작자가 작업하는 데 필요로 하는 목표 금액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프로젝트가 취소된다. ‘농사펀드’도 텀블벅과 비슷하다. 다만 대상이 예술가가 아니라 농부라는 점이 다르다. 펀드가 성공하면 받는 보상은 다슬기, 동치미, 순무김치 같은 먹을거리다.
‘도너스’는 기부금의 흐름을 보여주는 소셜벤처다. 사람들이 기부에 소극적인 이유가 모금기관에 대한 신뢰가 적기 때문인 캄큼 투명성을 높이면 더 많은 기부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시작됐다. ‘도너스’를 통해 기부하면 기부 동기에 따라 각각 다른 수혜자에게 전달되는 모든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다.
소셜벤처의 영역은 다양하다. 공정여행, 활동에 특화된 여행 플랫폼, 유기농 거래, 농산물 직거래, 신선한 먹을거리, 공동체 회복, 다문화가정 지원, 새터민 지원, 학습도구, 발달장애인 교육프로그램과 게임, 자연환경 교육, 생태디자인, 배터리 재생, 중고물품 거래, 중고 아이 옷 교환 거래, 중고 잡화 매입, 요양보호사 소개, 대중 참여형 예술 지원 사업, 서민형 법률서비스, 공간 대여 사업, 노숙인 일자리 사업, 점자가 각인된 가죽제품 제조 등 여러 분야의 소셜벤처가 투자를 받으며 사업을 확장 중이다. 소셜벤처의 목표는 사회적 문제 해결이지만, 소셜 영역에도 기업 운영 방식이 광범위하게 도입되고 있다. 영리 기업가가 혁신적인 사고로 만들어낸 기업의 경험치를 사회적 문제 해결에 적용하는 것. 소셜벤처도 기업이며 모든 기업은 성과를 내야 한다. 이들의 성과란 수익을 내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