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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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이 바꾸는 세상 ⑤

당신의 취향 e커머스는 알고 있다

초기엔 가격파괴 전략…특화된 서비스로 고객이 원하는 가치 만들어내

  •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 klee@startupall.kr

    입력2016-12-12 09: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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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e커머스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의 사업이 인터넷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당신 사업 자체가 곧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인터넷상에서 물건이나 서비스를 거래하는 것을 지칭하는 e커머스가 등장한 지 20여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사이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8월 e커머스의 대표 주자인 아마존이 월마트를 시가총액에서 이겼을 때 세상은 빌 게이츠의 말이 무슨 뜻인지 확실히 깨달았다. 당시 240조 원 근처에서 방향을 달리하던 두 회사의 현재 모습은 더 흥미롭다. 월마트는 220조 원으로 떨어졌고 아마존은 370조 원까지 올랐다. 매출은 월마트가 4~5배 높고, 직원 수도 9배쯤 많다. 월마트는 아직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직원을 고용한 민간기업이다.

    인터넷의 등장은 1990년대 초반이지만 e커머스가 가능해지는 데는 몇 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상거래에 쓰일 만큼 안전한 지급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틈을 타고 퍼스트 버추얼 같은 사이버 화폐가 등장했는데 성인 웹사이트에서나 쓰일까 더는 확산되지 못했다. 모두 신용카드 거래가 가능해지기를 기다렸다. 95년 ‘베리사인’ 같은 보안회사가 등장했다. 카드 정보가 암호화되는 길이 열렸고, 넷스케이프 브라우저의 SSL(Secure Sockets Layer·보안 소켓 계층)도 믿을 만해지면서 e커머스가 가능해졌다.





    수익 못 내도 공격적 투자

    신용카드번호가 털릴 염려는 없어졌다지만, 제품의 품질과 가격에 대한 불신은 여전했다. 사람들은 유명 브랜드의 공산품 위주로 가격비교 사이트를 이용하며 조심스레 쇼핑을 시작했다. 낮은 가격이 최고 경쟁수단이었다. 가장 확실한 공산품이라 할, 도서시장을 공략하면서 아마존이 문을 열었다.

    쇼핑몰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경매 방식을 도입했고, 1995년 설립된 ‘이베이’의 성공은 97년 ‘옥션’이 창업되는 데 영향을 끼쳤다. 거대 쇼핑몰의 등장으로 판매자 신뢰 문제는 빠르게 정리됐다. 가끔 선수금만 챙기고 도망가는 업체가 없지 않았으나, 결제대행업체가 확보한 보증금 등으로 피해 수습이 가능했다. 2001년 옥션이 먼저 이베이에 팔리고, 옥션과 치열하게 경쟁하던 ‘지마켓’마저 2009년 이베이에 팔리면서 가격경쟁 시대의 승자가 이베이로 정해졌다. 그렇게 해서 e커머스 동네는 한동안 잠잠했다.

    2010년 아이비리그 유학생 출신의 20대가 소셜커머스 아이디어를 들고 귀국하면서 국내 e커머스는 새로운 시대를 맞는다. 소셜커머스의 원조라 부르는 미국 ‘그루폰’은 하루에 한 건씩 반값에 파는 번개장터 개념으로 시작했다. 우리는 ‘티켓몬스터’(티몬)의 뒤를 이어 ‘쿠팡’이 창업하면서, 공동구매를 통한 가격파괴 전략으로 유통시장과 지역광고시장을 흔들어놓았다. 2011년이 되자 소셜커머스를 주장하는 사이트가 200여 개에 달했고, 소위 ‘딜’이라 부르는 저가 상품만 긁어 보여주는 메타 사이트도 10여 개 등장했다. 선두 그룹을 형성한 티몬, 쿠팡, 위메프 3사가 계속 투자를 받아가며 버스, TV, 인터넷 광고를 통해 순식간에 매출을 끌어올렸다. 아무도 이익을 내지는 못했지만, 공격적인 투자는 곧 매출로 이어져 메이저 3사가 독식하는 시장으로 정리됐다. 이제는 3사 모두 소셜커머스의 성격은 사라지고, MD(머천다이저)가 골라온 제품을 저렴하게 파는 종합유통몰이 됐다.

    e커머스 역사에서 소셜커머스가 가져온 의미는 적잖다. 첫째, 온라인 구매는 원래 불편한 것이라며 참고 견디던 고객에게 새로운 차원의 서비스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온라인 쇼핑의 경쟁 포인트는 더는 저렴한 가격이 아니라 배송이나 환불 같은 고객서비스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가르쳐준 것이다. 쿠팡은 막대한 투자를 통해 로켓배송을 시작했고, 쿠팡맨에 대한 고객만족도는 매년 전국 1위를 기록한다. 이에 뒤질세라 티몬도 ‘배송지연 시 무한자동보상제도’ ‘무료 반품제’ ‘바로환불제’ 등 선진국 수준의 고객서비스를 도입했다.

    둘째, e커머스의 잠재력을 전 국민이 이해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첫 테이프를 끊은 것은 티몬이다. 창업한 지 1년 만에 미국 ‘리빙소셜’에 추정가격 3000억~4000억 원에 팔린 것이다. ‘먹튀’라는 볼멘소리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창업자 커뮤니티는 다들 티몬 멤버를 부러워했다(신현성 티몬 대표는 2015년 다시 주식을 매입해 티몬 경영권을 회복했다).



    특화된 배송, 환불 등 서비스 진화

    그다음으로 전 국민을 놀라게 한 것은 2015년 일본 소프트뱅크가 쿠팡에 1조1000억 원을 투자하면서 회사 가치를 5조5000억 원으로 산정한 사건이다. 비교하기 쉽게 쿠팡과 유사 업종인 현대백화점의 예를 들어보자. 전국에 19개 점포를 지닌 현대백화점의 시가총액이 약 2조6000억 원이니 쿠팡 가치의 절반도 안 된다. 쿠팡이라는 e커머스 스타트업이 창업 5년 만에 5조 원짜리 사업을 만들었다면, 국내 유통업계에 그 5년의 의미는 무엇일까. 5년 동안 시가총액 변화를 보면 현대백화점은 28% 하락, 신세계백화점은 21.6% 하락, 롯데쇼핑은 35.8% 하락, 이마트는 37% 하락을 기록했다. 아마존과 월마트의 구도와 비슷한 상황이 한국에서도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이런 거인들이 장악한 시장에서 새로 등장하는 e커머스 스타트업은 경쟁자가 되기보다 기존 업체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다들 읽을 만한 콘텐츠를 보강해 고객이 머무는 시간을 늘린다. 또한 MD가 꼼꼼하게 미리 골라놓는 ‘큐레이션커머스’와 고객 충성도를 높이면서 마케팅 비용을 낮추는 정기구독 방식을 주로 시도한다.

    예전에 흔히 편집숍이라 부르던, 온라인 셀렉트숍 분야의 인기 스타트업으로 ‘29cm’가 있다. 여기에 입점한 브랜드를 보면 다른 온라인 패션 애플리케이션(앱)처럼 가격대가 낮지 않다. 멋진 브랜드를 잘 유치해오는 실력 있는 MD가 있는 것이다. 29cm를 운영하는 ‘에이플러스비’는 3년 전 GS홈쇼핑에 인수됐으나, 10월 미국계 벤처캐피털 알토스벤처스로부터 30억 원을 투자받는 등 스타트업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있다.

    유명 빵집들의 빵을 이른 아침에 배달해주던 ‘헤이브레드’라는 스타트업이 있었다. 신선식품을 배달하던 ‘덤앤더머스’라는 스타트업도 있었다. 지난해 덤앤더머스가 헤이브레드를 인수해 기존에 해오던 우유, 과일 등의 신선상품 라인에 빵을 얹었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덤앤더머스를 인수해 ‘배민프레시’라는 이름으로 새벽에 배달하는 신선식품 서비스를 시작했다. 신선 농산물 배달의 강자인 ‘헬로네이처’도 MD가 선별한 1000여 곳의 농장과 식탁을 연결한다. 이들 스타트업의 공통점은 꼼꼼하게 고른 먹거리를 정기적으로 배달하는 모델이라는 것이다. ‘미트박스’는 MD가 직접 골라주는 다양한 육류 제품을 판다. 직거래 형태라 소비자는 20% 이상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지만, 그때 그때 제품이 다르다 보니 원하는 고기 부위가 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소 규모 음식점이나 잔치를 앞둔 가정의 재구매율이 높다고 한다. 가격과 품질을 한꺼번에 잡은 덕이다.

    2주마다 꽃을 선물하는 남자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꾸까’는 격주로 꽃을 보내주는 스타트업이다. 마치 잡지를 구독하듯 2주에 한 번씩 꽃을 배달해주는데, 1만 원에서 시작해 3만 원대까지 있다. 기존 꽃집이 모두 기본적으로 큐레이션을 하지만, 꽃을 예쁘게 포장하는 것만큼 고객의 주머니 사정까지 생각하는 곳은 많지 않다. 꾸까는 그 틈을 파고들었다. ‘원모먼트플라워’도 초기에는 정기배송 모델을 취했으나, 지금은 강남권 90분 배송 전략, 서울과 경기 3시간 배송의 신속함으로 업의 본질을 바꿨다.

    미국 알토스벤처스가 30억 원을 투자한 ‘지그재그’도 여성에게 사랑받는 앱이다. 1000개도 넘는 온라인 쇼핑몰의 상품을 비교해주는 사용자 취향 분석 알고리즘이 무기다. MD가 골라주는 방식은 아니지만 나이, 스타일, 취향 등으로 세분화한 뒤 머신러닝 기술을 이용해 기존 구매 패턴을 파악해 좋아할 만한 상품을 골라준다.



    별점으로 고객 취향 파악

    이런 식으로 거의 무한대인 상품 가운데 고객이 원할 만한 상품을 권하는 기술의 ‘끝판왕’은 넷플릭스다. 처음 등록하면 영화 몇 편을 보여주면서 취향대로 고르라고 하는데, 이런 작업을 세 번 정도 거치면 대충 기본 유형이 드러난다. 이후에는 영화를 본 고객이 매기는 별점에 따라 점점 더 정교한 추천이 가능한 구조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의 영화 추천 스타트업 ‘왓챠’도 처음에 영화 20편을 보여주고 별점을 매기라고 시킨다. 이 점수를 기반으로 나의 프로파일이 만들어지며, 정직하게 점수를 줄수록 시스템이 더 정확하게 내 취향을 읽어낼 것이다. 선택 가짓수가 적으면 MD나 큐레이터가 골라주고 수천, 수만 가지가 넘어가면 사람이 직접하기보다 학습능력을 지닌 알고리즘을 이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어느 경우든 고객 취향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살아남는다.

    좋은 제품을 미리 골라주는 것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대신, 고객이 아쉬워하는 부분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시장에서 성공한 친구들도 있다. 해가 바뀌면 사람들은 새해 다짐을 한다. 캐나다도, 미국도, 우리나라도 1순위는 운동(체중 감량)이다. 반면 꾸준히 하기 어려운 것도 운동이다. 피트니스클럽의 가장 큰 수익이 등록만 하고 안 오는 손님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운동은 해야겠는데 늘 가는 체육관의 뻔한 운동기구에 질렸다면 ‘마일로’와 ‘TLX’ ‘클래스픽’을 써보자. 제휴한 센터 숫자에는 차이가 있지만, 언제 어디서나 운동을 하게 해주는 기본 개념은 같다. 3년 전 미국 뉴욕에서 시작돼 체육관 8000여 곳과 제휴할 정도로 성공한 ‘클래스 패스(Class Pass)’의 한국형 서비스다. 마일로는 전국에 위치한 500여 개 제휴 스튜디오에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도록 설계됐다. 회원권은 한 달에 세 번 이용하는 5만 원짜리부터 무제한 이용 가능한 15만 원짜리까지 있다. 활동도 댄스, 요가, 필라테스, 클라이밍, 격투기, 주짓수 등 몸을 쓰는 것이라면 거의 모두 가능하다.

    TLX 패스는 이용 횟수에 따라 월 3만 원부터 19만 원까지 6종류가 있으며, 전국 2458개 제휴 센터에서 이용 가능하다. 후발주자인 클래스픽도 9월부터 상세한 업체 리뷰 등을 차별점으로 삼아 경쟁 중이다.

    사업하는 이들이 흔히 니치(niche)라고 부르는, 먹기에는 작아 보이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계륵이 있다. e커머스는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를 늘리는 방식으로 인접 영역까지 시장을 확대한다. 고객이 원하는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e커머스의 성패를 가른다. 빌 게이츠와 동갑내기 맞수였던 스티브 잡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고객이 경험하는 방식을 먼저 상상하고 그걸 어떻게 기술적으로 구현해낼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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