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회장 약력<br>·1955년 일본에서 출생<br>·1977년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학 경제학부 졸업<br>·1980년 미국 콜롬비아대학 경영학 석사<br>·1981년 4월 일본 노무라증권 입사<br>·1982년 2월 ∼ 1988년 2월 노무라증권 런던지점 근무<br>·1988년 4월 일본 롯데상사 입사<br>·1990년 3월 호남석유화학 상무<br>·1995년 12월 롯데그룹 기획조정실 부사장<br>·1997년 2월 롯데그룹 부회장<br>·1999년 5월 코리아세븐 대표이사<br>·2000년 롯데닷컴 대표이사<br>·2004년 3월 롯데제과 및 호남석유화학 대표이사 10월 롯데 정책본부 본부장
하지만 이후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그가 처음 그룹 정책본부장을 맡은 2004년 롯데그룹 매출은 23조3000억 원에 불과했지만, 2010년에는 61조 원이 됐다. 6년 새 3배나 늘어난 것이다. 같은 기간 인수합병(M·A) 건수는 27개에 달했다. 신 신임 회장은 롯데를 ‘껌 왕국’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앞장선 주역이다. 그는 2월 11일 ‘2011년 롯데그룹 정기인사’에서 재계 서열 5위 롯데그룹의 ‘2막’을 여는 주인공으로 선정됐다.
그간 롯데그룹의 인사는 뉴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1월 초 정기인사가 관행인 재계 풍토와 달리 2월 중순에야 임원 인사를 발표해 김이 빠지는 구석이 있었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창업주인 신격호(89) 총괄회장이 ‘미수(米壽)’를 넘긴 고령에도 왕성하게 경영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너가에서는 ‘2·3세 경영시대’ ‘딸들의 부상’ 등 이야깃거리가 나오지 않았고 그룹 사장단 수도 한 자릿수에 그쳐 전문 경영인 쪽에서도 ‘최연소’나 ‘파격’ 승진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몸에 밴 예의범절, 업무는 공격적
그런데 2011년 임원 인사에서는 롯데에 ‘통 큰’ 변화가 일었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차남이자 한국 롯데그룹의 사실상 후계자로 이미 낙점됐던 신동빈 부회장이 회장으로 전격 승진한 것이다. 롯데는 신격호 총괄회장이 1946년 일본 롯데를 창업한 지 65년 만에, 1967년 롯데제과로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지 44년 만에 처음으로 2세 전면 경영시대를 열었다.
1955년 일본에서 태어난 신동빈 회장. 그의 어머니는 신격호 총괄회장의 두 번째 부인, 일본인 시게미쓰 하쓰코 여사다. 신 회장을 한 번이라도 직접 본 사람이라면 그의 겸손한 태도를 금방 알 수 있다. 신 회장은 수행비서도 두지 않아 직접 서류가방을 들고 다닌다. 직원들에게는 모두 존댓말을 쓴다. 한국어보다 일본어가 익숙한 탓에 한국어를 더욱 조심스럽게 쓰려는 의도다. 다른 재벌 총수와는 달리 본사에 ‘VIP용 엘리베이터’를 별도로 두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아침저녁으로 임직원과 함께 만원 엘리베이터에 탄다. 하지만 불편한 기색은 찾아보기 힘들다. 신 회장은 타인에 대한 배려를 유독 강조하는 일본식 교육이 몸에 배어 있다. ‘거화취실(去華就實·화려함을 버리고 내실을 취한다)’을 평생의 신조로 삼은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의 영향도 컸다.
하지만 일할 때는 180도 다르다. 성품과 달리 사업적으로는 매우 공격적인 것. 차남이지만 형을 제치고 그룹 후계자 자리에 오른 것만 봐도 신 회장의 업무 스타일을 가늠할 수 있다. 장남 승계가 관행인 다른 회사와 달리 차남인 신 회장이 후계자 자리에 올랐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장남인 일본 롯데그룹의 신동주(57) 부회장은 학자 스타일로 온화하고 내성적이다. 반면에 신 회장은 형보다 훨씬 공격적이고 적극적이다.
신 회장이 롯데그룹에 몸담은 것은 1988년 일본 롯데상사에 입사하면서부터다. 신 회장은 1977년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1980년 미국 콜롬비아대학 MBA를 마쳤다. 신 회장은 1981년 일본 노무라증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일본 롯데상사로 자리를 옮긴 1988년까지 노무라증권 런던지점에서 일하며 글로벌 감각을 키웠다. 한국 롯데에 첫발을 들여놓은 것은 19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로 취임하면서부터다. 신 회장은 1995년 롯데그룹 기획조정실 부사장을 거쳐 1997년 부회장으로 임명되면서 롯데그룹의 후계자로 사실상 자리를 굳혔다. 기획조정실은 2004년 정책본부로 격상됐고 신 회장이 정책본부장을 맡았다. 즉 ‘컨트롤 타워’의 실질적 사령탑으로 자리매김한 것.
대한통운 인수전이 첫 승부수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전경.
“2018년까지 매출 200조 원의 아시아 10대 규모의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한 ‘롯데 2018 비전’도 신 회장이 주도해 마련한 것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 회장이 정책본부장을 맡은 2004년부터가 롯데그룹이 크게 변화했다. 변화의 키워드는 글로벌이었다”고 말했다.
신동빈 회장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롯데의 해외시장 공략은 가속화할 전망이다. 더욱 공격적인 M·A도 예상된다. ‘짠돌이 문화’로 대변되던 기존 기업문화에서 벗어나 젊고 역동적인 기업문화를 구축하는 작업도 본격 추진될 것이다.
신 회장이 ‘회장’ 타이틀을 달고 펼치는 첫 승부는 대한통운 인수전이다. 이번 승진 인사로 더 강화된 내·외부 입지를 바탕으로, 대한통운 인수전에서 신 회장의 입김은 더욱 세질 전망이다. 특히 대한통운은 신 회장이 주도해온 롯데그룹의 물류사업과 관련된 분야인 데다, 신 회장이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정 노무라증권가 주간사 업무를 맡고 있어 더욱 인연이 깊다.
‘신동빈 시대’의 포문은 열렸지만 아직 ‘신동빈 체제의 완성’을 논하기는 이르다. ‘왕회장’ 신격호 회장이 명예회장이 아닌 총괄회장직을 맡은 것. 여전히 그룹 현안을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재계 ‘노익장 경영’의 대표주자인 신격호 총괄회장은 한 달 간격으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셔틀 경영’을 펼치고 있다. 특히 계열사별 매출 현황 등 수치와 관련해서는 ‘컴퓨터’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철저히 관리한다.
또 신격회 총괄회장의 장남인 신동주 일본 롯데 부회장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신동주 부회장은 신 회장만큼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신동빈 회장 체제는 미완의 승계”라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 측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장남은 일본 롯데, 차남은 한국 롯데를 맡는 것으로 이미 정리해 승계 문제에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