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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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이해한 스티브 잡스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1-02-21 09: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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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브 잡스는 엔지니어인가요? 마케터인가요?”

    며칠 전 중소 IT업체 대표와 식사 도중에 나온 얘기입니다.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의 병세가 심각해 6주밖에 못 살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인물평으로 흘러갔습니다. “당연히 엔지니어지 않냐”는 기자의 대답에 그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이팝, 아이폰, 아이패드를 연이어 히트시킨 잡스가 뛰어난 엔지니어임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천재 엔지니어라 표현하기엔 한없이 부족해 보입니다. 천재성을 따진다면 오히려 그의 단짝 친구 스티브 워즈니악이 앞설지도 모릅니다. 잡스가 다른 엔지니어들과 달랐던 점은 동시에 뛰어난 마케터이기도 했다는 점입니다.

    잡스는 어느 전문경영인보다 시장과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통신사와 제조사의 결탁으로 소비자의 이익이 침해되는 상황에 주목해 ‘스마트폰 혁명’으로 세상을 바꿨습니다. 1달러 미만의 돈이라면 기꺼이 음악을 유료로 들을 수 있다는 소비자의 니즈(needs)를 파악했고, 대형 음반사들을 설득했습니다. IT업계 사람들이 잡스를 단순히 천재 엔지니어가 아닌 마케터로서의 능력을 높게 평가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얘기가 계속되면서 그는 자신의 실패 경험담을 털어놨습니다. 그는 국내 최고의 대학에서 IT를 전공하며 엔지니어로서 커리어를 쌓던 어느 날, 번뜩이는 사업 아이템을 가지고 회사를 나와 창업을 했답니다. 하지만 실패를 했고, 그렇게 쓰디쓴 실패를 맛본 뒤 자신의 실패 이유를 천천히 복기하면서 자신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아냈다는군요.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유저(사용자)들이 이용하기 쉽게 구현하지 못하면 그 기술은 무용지물이란 것이지요. 유저와 엔지니어를 연결하는 것이 CEO인 자신의 몫인데 유저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패착이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인간을 이해한 스티브 잡스
    그러면서 그는 후배 엔지니어들에게 사람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있어야 유저들이 보인다며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유저들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그들의 처지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잡스가 철학, 역사학 등 인문학에서 많을 것을 배울 수 있었다는 것과 일맥상통한 얘기입니다. 잡스를 꿈꾸는 많은 한국의 엔지니어가 귀담아들어야 할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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