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고 사는 게 다행이다. 펀드매니저들이 전부 다 전사(戰死) 내지는 중상(重傷)을 입고 나자빠졌다. 정말 어렵다.”
모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 J씨. 평소 장을 낙관적으로 보기로 유명해 긍정적인 시장 전망을 얻으려는 증권담당 기자들이 즐겨 찾는 사람이다. 그마저 돌아섰다. 친구들에게는 “무조건 쉬어라”고 권한다고 했다.
“총체적인 난국이다. 11월 중 매듭짓기로 한 금융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하다면 종합주가지수는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곤두박질칠 것이다.”
LG투자증권 황창중(黃昌重) 투자전략팀장. 아무리 시장이 어려워도 틈새를 잘 찾으면 먹을 수 있다고 떠벌려야 밥벌이를 하는 증권맨. 하지만 그 역시 ‘치고 빠지는 데’ 능한 전문 투자자가 아니면 일단은 주식시장을 쳐다보지도 않는 게 좋다고 권유했다.
코스닥 종합지수는 올들어 각국 증시 가운데 가장 가파르게 하락했다. 1월4일 266.00에서 9월18일 88.65로 67%나 떨어졌다. 거래소시장 종합주가지수 역시 같은 기간 1059.04에서 577.56으로 50% 가까이 떨어졌다.
하지만 현 상황을 우려하는 전문가들은 단지 절대적인 지수 하락폭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거래소 종합주가지수만 잠시 들여다보자. 지수가 600선으로 떨어진 것은 올 들어 다섯번째. 하지만 이번 9월 약세장만큼 그 기간이 길었던 적은 없었다. 세 차례(4월27일, 7월28일, 8월7∼8일)는 하루이틀 만에 곧바로 700선을 회복했다. 5월22일부터 30일까지 약세장도 8일 만에 끝났다.
그러나 이번엔 15일 현재로 벌써 9일째. 곰(약세장)이 황소(강세장)를 압도하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만성이 생긴다는 것. 예전에는 장이 나빠도 워낙 싸보이는 주식이 많기 때문에 매수주문을 내는 투자자들이 있었지만 요즘엔 ‘기대수준’이 낮아져 저가(低價) 메리트도 눈에 띄지 않는다는 얘기다. 달리 표현하면 갈수록 지수의 저점이 낮아진다는 뜻이다.
증시가 맥을 못추는 까닭은 누군가의 표현을 옮기자면 “좋아질 이유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굳이 단기적인 원인을 찾자면 두 가지 정도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들먹이는 석유가격, 다른 하나는 반도체가격 하락. 근본적인 원인은 물론 경기둔화 조짐과 증시수급 불균형, 구조조정 미흡이다.
국제유가 급등이 증시에 결정적인 악재라는 것은 과거의 경험이 말해준다. 1차 석유파동(74년 3∼10월) 당시 국내 주가는 18% 가량, 2차 파동(78년 8월∼80년 12월) 때는 31%나 폭락했다. 1차 파동 때 주가하락의 정도가 약했던 까닭은 유신정부 초기 강력한 안정화정책으로 유가상승에 따른 대외적인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언제 오를지 모르는 석유가에 대한 대비를 얼마나 잘했느냐 하는 변수는 있다. 고유가에 대한 대응노력을 꾸준히 했다면 증시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
단적인 예가 미국증시. 미국 S&P500 지수는 1차 파동 때는 39% 폭락했지만 2차 때는 오히려 29% 오르는 ‘기현상’을 보였다. 1차 석유파동에도 불구하고 확장 일변도의 재정 금융정책을 고수, 된서리를 맞은 우리와 대조적이다.
동양증권 리서치팀 이동수(李東秀) 과장은 “금융불안이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맞은 이번 유가급등은 엄청난 악재임이 틀림없다”며 “구조조정마저 지연된다면 ‘바닥’을 점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도체 가격 하락도 증시의 발목을 잡고 있다. 7월13일 9.22달러에 달했던 64메가D램 가격이 최근 7.5달러 수준으로 가파르게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 업계, 좀더 구체적으로는 삼성전자와 현대전자에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미친다.
두 회사의 월간 64메가D램 공급능력은 6000만∼7000만 개 정도. 반도체 가격이 1달러 떨어지면 두 회사의 순이익은 한 달에 각각 6000만∼7000만 달러씩 줄어들게 된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삼성전자의 주가는 이를 반영, 7월13일 장중 39만4000원까지 올랐으나 최근에는 21만원대로 급락했다. 외국인들의 매도가 주요 원인. 미래에셋자산운용 선경래 펀드매니저는 “미국 등 대형 뮤추얼펀드의 삼성전자 편입비중이 평균 2%를 웃도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세계 각국의 우량기업을 망라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펀드에서 이 정도 비중이면 과매수(over-bought) 상태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반면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주가폭락에도 불구하고 팔 수도 없는 형편. 과감하게 손절매(손해보고 파는 것)했다가 만약 급반등이라도 하는 날엔 “지수가 오르는데 왜 펀드 수익률은 제자리냐”는 고객들의 항의가 두렵기 때문이다. KTB자산운용 장인환 사장은 이같은 의미에서 “펀드매니저들은 삼성전자를 먹을 것은 없지만 남 주기는 아까운 ‘계륵’(鷄肋)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선물 옵션 동시만기일이었던 9월14일 거래소와 코스닥시장의 하루 주가그래프는 ‘U자형’을 그렸다. 선물-현물 가격차를 이용해 선물을 팔고 현물을 사뒀던 투자자들이 만기를 맞아 반대방향의 매매를 할 것이라는 예상으로 대형주 폭락을 우려했지만 개인투자자 위주의 저가 매수세가 받쳐 하락폭을 장중 만회한 것.
언론에서는 ‘개미가 이겼다’‘증시 죽다가 살아났다’ 등의 제목으로 조심스럽게 9월15일 반등을 예견했다. 그러나 결과는…. 물론 미국 포드사가 대우자동차 인수를 포기하기로 했다는 발표가 돌발악재로 작용했지만 “바닥 밑에는 지하실도 있다”는 자조 섞인 체념이 여의도를 짓눌렀다.
과연 이 깊은 수렁에서 헤어날 길은 없을까. 유감스럽게도 ‘제한적으로 기술적 반등은 가능하지만 당분간은 어렵다’는 게 증권가의 공통된 견해다. 반등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들고 나오는 도구는 각종 기술적 지표. 가장 알기 쉬운 것이 투자심리도다. 투자심리도란 최근 열흘(거래일 기준) 동안 주가가 오른 날이 며칠인지를 나타내는 지표.
코스닥시장은 1, 5, 8일 올라 투자심리도 30. 거래소시장은 1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하락해 10에 불과하다. 90년 이후 거래소시장 투자심리도가 10 이하로 하락한 사례는 90년 8월, 91년 11월, 95년 8월 등 지금까지 단 세 차례. 세종증권 리서치센터 윤재현 부장은 “투자심리도가 10 이하로 떨어졌다는 것은 투자심리가 그만큼 지나치게 위축됐다는 뜻”이라며 “저가메리트가 생겨 기술적 반등은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등의 폭과 기간은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제한적일 것이라는 데 토를 다는 전문가들은 없다. 장인환 사장은 “종합주가지수 600선이 깨지면 분명히 반등국면은 나온다”면서도 “이때에도 조급해하지 말고 유가급등이 진정되는지, 금융구조조정이 틀을 잡아가는지 확인한 뒤에 들어가는 것이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황창중 팀장도 바닥에서 주식을 사려는 ‘용감한 소수’가 되기보다 무릎에서 사려는 편이 안전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9, 10월을 넘기며 증시가 오름세로 돌아서는 ‘큰 방향’이 명확해진 뒤에 다시 참여하는 것이 좋다는 것.
도저히 억울해서 쉴 수 없다는 투자자들은 몇 가지 철칙을 지켜야 한다고 황 팀장은 덧붙였다.
공격적으로 도박을 하려면 유가상승의 영향을 덜 받고 2차 금융구조조정을 계기로 해서 선도주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는 금융주 위주로 매매할 것, 단타매매가 가능한 사람들은 목표수익률을 낮게 잡고 저평가된 중소형 개별종목만 쳐다볼 것 등등. 대형주는 외국인 매도세가 진정된 뒤에야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모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 J씨. 평소 장을 낙관적으로 보기로 유명해 긍정적인 시장 전망을 얻으려는 증권담당 기자들이 즐겨 찾는 사람이다. 그마저 돌아섰다. 친구들에게는 “무조건 쉬어라”고 권한다고 했다.
“총체적인 난국이다. 11월 중 매듭짓기로 한 금융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하다면 종합주가지수는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곤두박질칠 것이다.”
LG투자증권 황창중(黃昌重) 투자전략팀장. 아무리 시장이 어려워도 틈새를 잘 찾으면 먹을 수 있다고 떠벌려야 밥벌이를 하는 증권맨. 하지만 그 역시 ‘치고 빠지는 데’ 능한 전문 투자자가 아니면 일단은 주식시장을 쳐다보지도 않는 게 좋다고 권유했다.
코스닥 종합지수는 올들어 각국 증시 가운데 가장 가파르게 하락했다. 1월4일 266.00에서 9월18일 88.65로 67%나 떨어졌다. 거래소시장 종합주가지수 역시 같은 기간 1059.04에서 577.56으로 50% 가까이 떨어졌다.
하지만 현 상황을 우려하는 전문가들은 단지 절대적인 지수 하락폭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거래소 종합주가지수만 잠시 들여다보자. 지수가 600선으로 떨어진 것은 올 들어 다섯번째. 하지만 이번 9월 약세장만큼 그 기간이 길었던 적은 없었다. 세 차례(4월27일, 7월28일, 8월7∼8일)는 하루이틀 만에 곧바로 700선을 회복했다. 5월22일부터 30일까지 약세장도 8일 만에 끝났다.
그러나 이번엔 15일 현재로 벌써 9일째. 곰(약세장)이 황소(강세장)를 압도하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만성이 생긴다는 것. 예전에는 장이 나빠도 워낙 싸보이는 주식이 많기 때문에 매수주문을 내는 투자자들이 있었지만 요즘엔 ‘기대수준’이 낮아져 저가(低價) 메리트도 눈에 띄지 않는다는 얘기다. 달리 표현하면 갈수록 지수의 저점이 낮아진다는 뜻이다.
증시가 맥을 못추는 까닭은 누군가의 표현을 옮기자면 “좋아질 이유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굳이 단기적인 원인을 찾자면 두 가지 정도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들먹이는 석유가격, 다른 하나는 반도체가격 하락. 근본적인 원인은 물론 경기둔화 조짐과 증시수급 불균형, 구조조정 미흡이다.
국제유가 급등이 증시에 결정적인 악재라는 것은 과거의 경험이 말해준다. 1차 석유파동(74년 3∼10월) 당시 국내 주가는 18% 가량, 2차 파동(78년 8월∼80년 12월) 때는 31%나 폭락했다. 1차 파동 때 주가하락의 정도가 약했던 까닭은 유신정부 초기 강력한 안정화정책으로 유가상승에 따른 대외적인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언제 오를지 모르는 석유가에 대한 대비를 얼마나 잘했느냐 하는 변수는 있다. 고유가에 대한 대응노력을 꾸준히 했다면 증시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
단적인 예가 미국증시. 미국 S&P500 지수는 1차 파동 때는 39% 폭락했지만 2차 때는 오히려 29% 오르는 ‘기현상’을 보였다. 1차 석유파동에도 불구하고 확장 일변도의 재정 금융정책을 고수, 된서리를 맞은 우리와 대조적이다.
동양증권 리서치팀 이동수(李東秀) 과장은 “금융불안이 장기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맞은 이번 유가급등은 엄청난 악재임이 틀림없다”며 “구조조정마저 지연된다면 ‘바닥’을 점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도체 가격 하락도 증시의 발목을 잡고 있다. 7월13일 9.22달러에 달했던 64메가D램 가격이 최근 7.5달러 수준으로 가파르게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 업계, 좀더 구체적으로는 삼성전자와 현대전자에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미친다.
두 회사의 월간 64메가D램 공급능력은 6000만∼7000만 개 정도. 반도체 가격이 1달러 떨어지면 두 회사의 순이익은 한 달에 각각 6000만∼7000만 달러씩 줄어들게 된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삼성전자의 주가는 이를 반영, 7월13일 장중 39만4000원까지 올랐으나 최근에는 21만원대로 급락했다. 외국인들의 매도가 주요 원인. 미래에셋자산운용 선경래 펀드매니저는 “미국 등 대형 뮤추얼펀드의 삼성전자 편입비중이 평균 2%를 웃도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세계 각국의 우량기업을 망라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펀드에서 이 정도 비중이면 과매수(over-bought) 상태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반면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주가폭락에도 불구하고 팔 수도 없는 형편. 과감하게 손절매(손해보고 파는 것)했다가 만약 급반등이라도 하는 날엔 “지수가 오르는데 왜 펀드 수익률은 제자리냐”는 고객들의 항의가 두렵기 때문이다. KTB자산운용 장인환 사장은 이같은 의미에서 “펀드매니저들은 삼성전자를 먹을 것은 없지만 남 주기는 아까운 ‘계륵’(鷄肋)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선물 옵션 동시만기일이었던 9월14일 거래소와 코스닥시장의 하루 주가그래프는 ‘U자형’을 그렸다. 선물-현물 가격차를 이용해 선물을 팔고 현물을 사뒀던 투자자들이 만기를 맞아 반대방향의 매매를 할 것이라는 예상으로 대형주 폭락을 우려했지만 개인투자자 위주의 저가 매수세가 받쳐 하락폭을 장중 만회한 것.
언론에서는 ‘개미가 이겼다’‘증시 죽다가 살아났다’ 등의 제목으로 조심스럽게 9월15일 반등을 예견했다. 그러나 결과는…. 물론 미국 포드사가 대우자동차 인수를 포기하기로 했다는 발표가 돌발악재로 작용했지만 “바닥 밑에는 지하실도 있다”는 자조 섞인 체념이 여의도를 짓눌렀다.
과연 이 깊은 수렁에서 헤어날 길은 없을까. 유감스럽게도 ‘제한적으로 기술적 반등은 가능하지만 당분간은 어렵다’는 게 증권가의 공통된 견해다. 반등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들고 나오는 도구는 각종 기술적 지표. 가장 알기 쉬운 것이 투자심리도다. 투자심리도란 최근 열흘(거래일 기준) 동안 주가가 오른 날이 며칠인지를 나타내는 지표.
코스닥시장은 1, 5, 8일 올라 투자심리도 30. 거래소시장은 1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하락해 10에 불과하다. 90년 이후 거래소시장 투자심리도가 10 이하로 하락한 사례는 90년 8월, 91년 11월, 95년 8월 등 지금까지 단 세 차례. 세종증권 리서치센터 윤재현 부장은 “투자심리도가 10 이하로 떨어졌다는 것은 투자심리가 그만큼 지나치게 위축됐다는 뜻”이라며 “저가메리트가 생겨 기술적 반등은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등의 폭과 기간은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제한적일 것이라는 데 토를 다는 전문가들은 없다. 장인환 사장은 “종합주가지수 600선이 깨지면 분명히 반등국면은 나온다”면서도 “이때에도 조급해하지 말고 유가급등이 진정되는지, 금융구조조정이 틀을 잡아가는지 확인한 뒤에 들어가는 것이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황창중 팀장도 바닥에서 주식을 사려는 ‘용감한 소수’가 되기보다 무릎에서 사려는 편이 안전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9, 10월을 넘기며 증시가 오름세로 돌아서는 ‘큰 방향’이 명확해진 뒤에 다시 참여하는 것이 좋다는 것.
도저히 억울해서 쉴 수 없다는 투자자들은 몇 가지 철칙을 지켜야 한다고 황 팀장은 덧붙였다.
공격적으로 도박을 하려면 유가상승의 영향을 덜 받고 2차 금융구조조정을 계기로 해서 선도주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는 금융주 위주로 매매할 것, 단타매매가 가능한 사람들은 목표수익률을 낮게 잡고 저평가된 중소형 개별종목만 쳐다볼 것 등등. 대형주는 외국인 매도세가 진정된 뒤에야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