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인간과 전생에 무슨 ‘원수’를 졌기에…” “우리가 어디서 만난 적이 있던가요?” “처음 왔는데도 왜 이렇게 마음이 편하고 예전에 살던 장소 같죠?”
누구나 한번쯤 품어본 의문이지만 적극적으로 답을 구하려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설기문 교수(동아대·교육심리)가 “이제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쉽사리 그 모든 궁금증을 풀 수있다”고 말하자 사람들은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전생체험’ 공개강좌가 열린 서울 종로 영풍문고(9월2일)에서는 작은 소동이 있었다. 강의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에 이미 영풍문고 이벤트홀이 꽉 차 버렸던 것이다. 강사가 설 자리만 남긴 채 바닥에 종이를 깔고 앉은 것으로도 모자라 문 밖에는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이런 사태를 예상치 못한 서점측은 부랴부랴 다음날 한 차례 더 공개강좌를 열기로 하고, 혹시나 하고 돌아가지 않는 사람들에게 입장을 위한 번호표를 나눠주었다.
“이제 전생은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됐습니다. 그러나 ‘지금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복잡한데 전생까지 알아서 뭐하느냐’고 반문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전생을 안다는 것은 자신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답합니다. 또 ‘전생에 거지나 창녀였다고 나오면 어떡합니까’고 걱정하기도 하는데, 만약 지금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전생에 거지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 누구보다 거지 심정을 잘 이해하지 않을까요? 그처럼 당혹스러운 전생체험이야말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설교수는 전생체험의 효과를 고속도로 교통체증 상황에 비유했다. 약속시간에 맞춰 부랴부랴 길을 나섰는데 예기치 않게 도로가 꽉 막혔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그러나 정체의 원인이 대형교통사고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어느 정도 답답함이 풀리고, 약속을 취소하거나 진로를 변경하게 된다. 전생체험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해도 살면서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를 풀어줄 수 있다. 알면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면 사랑이 생긴다는 게 설교수의 설명이다.
■워밍업과 최면유도
전생체험을 위한 본격 최면상태에 들어가기 전 준비운동이 필요하다. 복식호흡을 하면서 눈을 감은 상태로 손목과 손가락 힘을 모두 빼고 손바닥을 흔들다가 멈춰 두 손바닥 사이에서 작용하는 힘을 느낀다. 그리고 손바닥에 강력한 접착제가 발라져 떨어지지 않는다고 자기 최면을 건다. 이 순간 여기저기서 합장한 자세로 손바닥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열 명에 한두 명 꼴로 나오는 ‘최면감수성’이 매우 높은 경우다. 그럼에도 의식은 깨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설교수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보라고 하자 20대 여성은 약간 흐느적거리는 발음으로 서태지의 ‘난 알아요’를 불렀다.
이어 흐르는 물소리를 배경으로 눈 코 입 혀 그리고 온몸의 긴장을 풀라는 유도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본격 최면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잡념이 끼여든다. ‘지금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말도 안 되는 전생체험 한다고 시간 낭비하고 있는 것 아냐?’ ‘남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등등의 잡념이 몰입을 방해했다. 설교수는 전생체험이 의지만으로 되는 게 아니므로 잡념이 끼여들면 끼여드는 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고 했다.
그러다 유도자가 “당신의 발이 보입니까? 발의 촉감을 느껴보고 신을 신었다면 어떤 신발인지, 옷을 입었다면 바지인지 치마인지 보라”고 하는 순간, 당황해서 눈을 뜨고 말았다. 융단처럼 펼쳐진 풀밭 위를 차가운 감촉을 느끼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았지만 그것이 나인지도 확실치 않은 데다, 신발은 안 보이고 옷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인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놀라 눈을 떴다.
그후 집에서 자기최면용 오디오테이프로 여러 차례 실험을 해보았지만 전생체험에 이르지 못했다. 의자보다는 바닥에 앉는 것이, 앉은 자세보다 누워서 긴장을 풀고 하는 편이 좋다는 지시에 따랐으나 지나치게 심신이완이 돼 최면에 들어가기도 전에 잠이 들어 버렸던 것이다. 설교수는 “최면유도과정에서 잠이 들어 버리는 사람은 감수성이 좋은 편”이라면서 최면에도 연습효과가 있으므로 반복하다 보면 대부분 자기 최면상태에 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극적인 체험
기자의 전생을 보는 데는 실패했지만 집단 최면상태의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설교수의 유도에 따라 자신의 전생을 털어놓은 20대 학원강사(여성)의 전생체험이었다. 이 여성은 처음부터 전생을 신뢰하지 않았고, 그냥 집단최면이라는 게 무엇인지 보러 왔다 순식간에 최면에 걸렸다.
유도자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묻자 “1962년 러시아이며 자신은 잠비라는 이름의 여덟살 된 사내애”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너무 외롭다”고 울먹이기 시작했다. 모리라는 사람이 부모 형제를 모두 죽여 고아가 됐는데 그 사람이 자신에게도 총을 쐈다는 것이다. “어디에 총을 맞았느냐”는 질문에 “총알이 심장을 관통하고 다리에도 맞았다”고 했고, “평소 아픈 곳이 있느냐?”고 묻자 “가슴이 찌르는 것처럼 아프기도 하고, 발목을 삐거나 다리를 다치는 일이 많다”고 했다(최면상태에서 현실과 전생을 오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총을 쏜 사람의 얼굴이 보이느냐, 누구냐?”고 하자 한참 머뭇거리더니 “아버지”라며 참을 수 없는 듯 울음을 쏟아냈다.
체험을 종합해보면 잠비의 가족이 모리라는 사람에게 못할 짓을 했고, 모리는 원수를 갚기 위해 잠비 가족을 몰살했다. 그런데 모리가 바로 현실의 아버지라는 것이다. 그 20대 여성은 중간중간 처음 듣는 언어(러시아말이라고 한다)로 이야기하고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우리말로 통역도 해주었다. 최면에서 깨어난 뒤 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어머니를 구박하는 것을 보면서 ‘전생에 무슨 원수를 졌기에’라는 생각을 자주 했고, 지금도 아버지를 미워한다고 가족사를 공개했다.
직업이 화가라고 밝힌 박모씨(여성)는 전날 공개강좌에서 체험한 전생의 장면이 고구려 벽화와 똑같은 것을 알고 놀라 다시 찾아왔다. 화가답게 자신이 입고 있던 옷과 머리모양, 신발의 색깔까지 분명히 기억했고 그것을 그려서 보여주기도 했다. “최면상태에서도 화려하게 장식한 내 머리를 보며 참 무겁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왕 같은 차림새의 남자가 흰 말을 타고 다가와 손을 내밀었는데 나와 어떤 관계인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그후로 박씨는 여러 차례 최면요법을 통해 마치 퍼즐조각을 맞추듯 자신의 전생 스토리를 대부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교수에 따르면 전생은 현생에 인과응보적으로 나타나거나 흔적을 남긴다. 즉, 주변 사람 중에 왠지 싫거나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전생의 원수였을 가능성이 높고(업보론), 특정 장소나 사람 등이 친숙하게 느껴지는 기시감(旣視感)이나 전생에 입은 상처 때문에 이유 없이 건강상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전생이 반복되기 때문이다(흔적론).
이처럼 전생을 통해 현재 삶의 조건들을 이해하게 되면 어떤 상담보다 치료효과가 높다고 한다. 교육심리학자이며 상담 전문가인 설교수가 최면과 전생에 몰두한 것도 놀라운 치료효과 때문이었다.
전생을 믿는 것은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또 다른 생의 존재 자체를 믿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최면에서 떠올리는 기억의 내용이 전생이라고 믿는 것이다. 자신이 어느 쪽 입장이든 전생을 통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게 목적인 만큼, 체험을 증명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고 설교수는 설명한다.
그렇다면 설교수 자신의 전생체험은 어떤 것일까. 로마시대 장군이었으나 전쟁 때 사람을 많이 죽인 뒤 인생에 회의를 느끼고 수도자가 됐다는 체험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한다.
“전생은 어떤 형태로든 현재 문제와 관련되고 현재 문제의 원인이 되는 전생이 우선 순위에 따라 떠오른다”는 설교수의 말대로라면 그가 뒤늦게(96년) 최면전생치료에 빠진 것도 바로 전생의 흔적 때문이 아니겠는가.
누구나 한번쯤 품어본 의문이지만 적극적으로 답을 구하려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설기문 교수(동아대·교육심리)가 “이제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쉽사리 그 모든 궁금증을 풀 수있다”고 말하자 사람들은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전생체험’ 공개강좌가 열린 서울 종로 영풍문고(9월2일)에서는 작은 소동이 있었다. 강의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에 이미 영풍문고 이벤트홀이 꽉 차 버렸던 것이다. 강사가 설 자리만 남긴 채 바닥에 종이를 깔고 앉은 것으로도 모자라 문 밖에는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이런 사태를 예상치 못한 서점측은 부랴부랴 다음날 한 차례 더 공개강좌를 열기로 하고, 혹시나 하고 돌아가지 않는 사람들에게 입장을 위한 번호표를 나눠주었다.
“이제 전생은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됐습니다. 그러나 ‘지금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복잡한데 전생까지 알아서 뭐하느냐’고 반문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전생을 안다는 것은 자신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답합니다. 또 ‘전생에 거지나 창녀였다고 나오면 어떡합니까’고 걱정하기도 하는데, 만약 지금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전생에 거지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 누구보다 거지 심정을 잘 이해하지 않을까요? 그처럼 당혹스러운 전생체험이야말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설교수는 전생체험의 효과를 고속도로 교통체증 상황에 비유했다. 약속시간에 맞춰 부랴부랴 길을 나섰는데 예기치 않게 도로가 꽉 막혔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그러나 정체의 원인이 대형교통사고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어느 정도 답답함이 풀리고, 약속을 취소하거나 진로를 변경하게 된다. 전생체험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해도 살면서 풀리지 않던 수수께끼를 풀어줄 수 있다. 알면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면 사랑이 생긴다는 게 설교수의 설명이다.
■워밍업과 최면유도
전생체험을 위한 본격 최면상태에 들어가기 전 준비운동이 필요하다. 복식호흡을 하면서 눈을 감은 상태로 손목과 손가락 힘을 모두 빼고 손바닥을 흔들다가 멈춰 두 손바닥 사이에서 작용하는 힘을 느낀다. 그리고 손바닥에 강력한 접착제가 발라져 떨어지지 않는다고 자기 최면을 건다. 이 순간 여기저기서 합장한 자세로 손바닥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열 명에 한두 명 꼴로 나오는 ‘최면감수성’이 매우 높은 경우다. 그럼에도 의식은 깨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설교수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보라고 하자 20대 여성은 약간 흐느적거리는 발음으로 서태지의 ‘난 알아요’를 불렀다.
이어 흐르는 물소리를 배경으로 눈 코 입 혀 그리고 온몸의 긴장을 풀라는 유도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본격 최면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잡념이 끼여든다. ‘지금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말도 안 되는 전생체험 한다고 시간 낭비하고 있는 것 아냐?’ ‘남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등등의 잡념이 몰입을 방해했다. 설교수는 전생체험이 의지만으로 되는 게 아니므로 잡념이 끼여들면 끼여드는 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고 했다.
그러다 유도자가 “당신의 발이 보입니까? 발의 촉감을 느껴보고 신을 신었다면 어떤 신발인지, 옷을 입었다면 바지인지 치마인지 보라”고 하는 순간, 당황해서 눈을 뜨고 말았다. 융단처럼 펼쳐진 풀밭 위를 차가운 감촉을 느끼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았지만 그것이 나인지도 확실치 않은 데다, 신발은 안 보이고 옷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인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놀라 눈을 떴다.
그후 집에서 자기최면용 오디오테이프로 여러 차례 실험을 해보았지만 전생체험에 이르지 못했다. 의자보다는 바닥에 앉는 것이, 앉은 자세보다 누워서 긴장을 풀고 하는 편이 좋다는 지시에 따랐으나 지나치게 심신이완이 돼 최면에 들어가기도 전에 잠이 들어 버렸던 것이다. 설교수는 “최면유도과정에서 잠이 들어 버리는 사람은 감수성이 좋은 편”이라면서 최면에도 연습효과가 있으므로 반복하다 보면 대부분 자기 최면상태에 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극적인 체험
기자의 전생을 보는 데는 실패했지만 집단 최면상태의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설교수의 유도에 따라 자신의 전생을 털어놓은 20대 학원강사(여성)의 전생체험이었다. 이 여성은 처음부터 전생을 신뢰하지 않았고, 그냥 집단최면이라는 게 무엇인지 보러 왔다 순식간에 최면에 걸렸다.
유도자가 “지금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묻자 “1962년 러시아이며 자신은 잠비라는 이름의 여덟살 된 사내애”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너무 외롭다”고 울먹이기 시작했다. 모리라는 사람이 부모 형제를 모두 죽여 고아가 됐는데 그 사람이 자신에게도 총을 쐈다는 것이다. “어디에 총을 맞았느냐”는 질문에 “총알이 심장을 관통하고 다리에도 맞았다”고 했고, “평소 아픈 곳이 있느냐?”고 묻자 “가슴이 찌르는 것처럼 아프기도 하고, 발목을 삐거나 다리를 다치는 일이 많다”고 했다(최면상태에서 현실과 전생을 오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총을 쏜 사람의 얼굴이 보이느냐, 누구냐?”고 하자 한참 머뭇거리더니 “아버지”라며 참을 수 없는 듯 울음을 쏟아냈다.
체험을 종합해보면 잠비의 가족이 모리라는 사람에게 못할 짓을 했고, 모리는 원수를 갚기 위해 잠비 가족을 몰살했다. 그런데 모리가 바로 현실의 아버지라는 것이다. 그 20대 여성은 중간중간 처음 듣는 언어(러시아말이라고 한다)로 이야기하고 “무슨 뜻이냐”고 물으면 우리말로 통역도 해주었다. 최면에서 깨어난 뒤 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어머니를 구박하는 것을 보면서 ‘전생에 무슨 원수를 졌기에’라는 생각을 자주 했고, 지금도 아버지를 미워한다고 가족사를 공개했다.
직업이 화가라고 밝힌 박모씨(여성)는 전날 공개강좌에서 체험한 전생의 장면이 고구려 벽화와 똑같은 것을 알고 놀라 다시 찾아왔다. 화가답게 자신이 입고 있던 옷과 머리모양, 신발의 색깔까지 분명히 기억했고 그것을 그려서 보여주기도 했다. “최면상태에서도 화려하게 장식한 내 머리를 보며 참 무겁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왕 같은 차림새의 남자가 흰 말을 타고 다가와 손을 내밀었는데 나와 어떤 관계인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그후로 박씨는 여러 차례 최면요법을 통해 마치 퍼즐조각을 맞추듯 자신의 전생 스토리를 대부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교수에 따르면 전생은 현생에 인과응보적으로 나타나거나 흔적을 남긴다. 즉, 주변 사람 중에 왠지 싫거나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전생의 원수였을 가능성이 높고(업보론), 특정 장소나 사람 등이 친숙하게 느껴지는 기시감(旣視感)이나 전생에 입은 상처 때문에 이유 없이 건강상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전생이 반복되기 때문이다(흔적론).
이처럼 전생을 통해 현재 삶의 조건들을 이해하게 되면 어떤 상담보다 치료효과가 높다고 한다. 교육심리학자이며 상담 전문가인 설교수가 최면과 전생에 몰두한 것도 놀라운 치료효과 때문이었다.
전생을 믿는 것은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또 다른 생의 존재 자체를 믿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최면에서 떠올리는 기억의 내용이 전생이라고 믿는 것이다. 자신이 어느 쪽 입장이든 전생을 통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게 목적인 만큼, 체험을 증명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고 설교수는 설명한다.
그렇다면 설교수 자신의 전생체험은 어떤 것일까. 로마시대 장군이었으나 전쟁 때 사람을 많이 죽인 뒤 인생에 회의를 느끼고 수도자가 됐다는 체험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한다.
“전생은 어떤 형태로든 현재 문제와 관련되고 현재 문제의 원인이 되는 전생이 우선 순위에 따라 떠오른다”는 설교수의 말대로라면 그가 뒤늦게(96년) 최면전생치료에 빠진 것도 바로 전생의 흔적 때문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