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아파트 단지. KB부동산 시세를 기준으로 최근 1년간 서울 구(區)별 아파트 가격 변동률(지난해 7월 17일 대비 올해 8월 12일 기준)을 분석한 결과 송파구가 5.7%로 가장 많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1]
서울, 지역별 집값 상승률 차이 커져
한국은행의 8월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주택가격전망지수는 118로 전월보다 3포인트 상승해 2021년 10월(125) 이후 2년 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주택가격전망지수는 1년 후 집값 전망을 반영하는 지표로, 100을 넘으면 1년 뒤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보는 소비자가 더 많다는 의미다. 8월 8일 정부는 향후 그린벨트 해제 등 방식을 통해 수도권에 주택 약 42만7000채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정책에도 시장 참여자가 향후 주택 공급에 확실한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집값 상승세가 서울, 특히 강남권 등 입지가 좋은 곳 중심으로 두드러지면서 향후 시장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가격이 오르는 곳만 오르는 ‘똘똘한 한 채’ 현상이 심화할까, 아니면 덜 오른 곳을 찾아 상승세가 확산할까. 향후 주택시장의 미시적 흐름을 예측하려면 최근 1년간 아파트 시장의 트렌드 변화와 가격 상승 요인을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여전히 약세인 지방에 비해 서울은 올해 들어 집값이 상승세로 전환했다. 서울에서도 강남 및 도심권과 외곽의 차이가 큰 상황이다.
KB부동산 시세를 기준으로 최근 1년간 서울 구(區)별 아파트 가격 변동률(지난해 7월 17일 대비 올해 8월 12일 기준)을 분석한 결과 송파가 5.7%로 가장 많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성동(5%), 강남(4.7%), 강동(4.7%), 서초(4%)가 뒤를 이었다. 그 밖에 2% 이상 오른 곳은 용산, 마포, 중구 등 시장 선호도가 높은 도심권이었다. 반면 서울 외곽인 금천, 노원, 도봉, 강북, 중랑 등은 2% 이상 하락했다. 최근 1년간 지방 아파트 매매가 변동률은 부산이 -3%로 가장 큰 하락세를 보였다. 광주(-2.7%), 경남(-2%)도 하락하는 등 강원, 충북, 대전을 제외하곤 지방 아파트 시장의 약세가 이어지는 양상이다.
최근 두드러지는 서울 선호 지역 강세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그 배경으로 크게 2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집값에 영향을 미치는 주택담보대출이나 세제(稅制) 등 정부 정책이다. 아파트는 주거 공간으로 필수재인 동시에 가격 변동이 큰 투자재이기도 하다. 따라서 주택시장 참여자는 정부 정책에 큰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똘똘한 한 채 선호도 한몫
이전 정부에 비해 윤석열 정부는 주택시장에 직접 개입하기보다 시장 원리를 중시하고 필요한 경우 ‘핀셋’ 방식의 간접적 규제를 선호해왔다. 15억 원 초과 고가 아파트 대출 규제를 풀고, 정부 특례대출의 한도를 완화하는 등 친(親)시장 정책이 이어졌다. 강남권 고가 아파트 보유자와 다주택자를 옭아매던 종합부동산세도 완화했다. 고가 아파트를 사서 보유하는 부담을 덜어준 것이다. 다만 다주택자의 취득세 중과 완화는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존치됐다. 취득세 중과 부담이 여전하기에 여러 채 투자로 차익을 노리기보다, 한 채 또는 일시적 2주택으로 입지 좋고 가격 상승 여력이 높은 곳으로 옮겨가는 투자 수요가 늘었다. 그 결과 서울에서도 강남권과 도심권 중심으로 집값 상승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둘째, 부동산시장 트렌드 변화다. 최근 30대가 서울 아파트 시장의 가장 중요한 매수 주체로 부상하고 있다. 이들에게 아파트는 거주 공간인 동시에 가장 중요한 투자 대상이다. 어느 곳에 아파트를 보유했는지에 따라 자산 증식 속도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장 거주하지 못하더라도 입지 좋은 부동산을 포트폴리오에 담음으로써 조기에 자산을 불리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30대는 일타 강사를 통해 수능 입시를 준비한 ‘학원세대’다. 부동산 투자도 인기 강사를 쫓듯 학습하는 경향이 강하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또래 집단끼리 현장을 ‘임장’하면서 빠른 속도로 시장 흐름을 읽고 투자법을 따라간다. 그들이 이해하고 검증한 방법으로 찍은 인기 단지는 ‘정답지’로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공유된다. 그렇게 한두 채 거래된 가격도 실시간 공유된다. “살아보면 내 집이 최고”라는 윗세대의 믿음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젊은 시장 참여자들은 부동산 입지를 철저히 검증하고 수치화된 점수로 평가한다. 최근 입지 좋고 호재도 있는 대단지를 중심으로 매입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젊은 층의 부동산시장 가세가 빨라지면서 더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 인기 지역 매입 행렬에 지방 거주자도 대거 합류했다.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입자 중 지방 거주자의 비중은 올해 2월 20%를 넘어섰다. 최근 1년간 집값 상승폭이 가장 컸던 송파에서도 2월 이후 서울 이외 거주자의 매입 비중이 22%를 넘었다. 강남도 사정은 비슷하다.
최근 신축 아파트 선호도가 유별나게 높아지는 것도 새로운 트렌드다. 지난해 2월 입주한 동작구 흑석동 ‘흑석자이’ 전용면적 84㎡는 7월 17억5000만 원에 팔려 신고가를 썼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7월 서울 신축(준공 5년 이내) 아파트 가격은 전달 대비 2.34% 올랐다. 서울 전체 아파트 가격 상승률(1.19%)의 2배 수준으로, 2012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반면 준공 20년이 넘은 구축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1.01%에 그쳤다. 신축 아파트 가격 상승률을 서울 5개 권역별로 살펴보면 강남 3구와 강동이 속한 동남권이 3.54% 올라 가장 큰 상승폭을 보였다. 마포·서대문·은평이 속한 서북권이 2.76% 올라 뒤를 이었다. 용산·종로·중구가 있는 도심권도 신축 아파트 값이 2.72% 상승했다. 반면 준공 20년이 넘은 구축 아파트 가격은 강남 3구가 있는 동남권에서도 1.77% 오르는 데 그쳤다.
주요 변수는 대출·세금 정책
서울 동작구 흑석동 ‘흑석자이’ 아파트. 최근 전용면적 84㎡가 17억5000만 원에 팔려 신고가를 기록했다. [뉴시스]
그렇다면 향후 주택 가격은 어떻게 움직일까. 시장 방향을 좌우할 가장 중요한 키(key)는 정부 정책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강화와 토지거래허가제 적용 확대 등이 주요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발표된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 방침에 따라 은행권의 수도권 주담대에는 스트레스 금리가 추가된다. 스트레스 DSR은 대출금리에 가산금리(스트레스 금리)를 부과해 대출한도를 산출하는 제도다. 미래 금리 변동성 리스크를 반영한 스트레스 금리가 붙으면 대출한도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금융당국의 시뮬레이션 결과 연소득 5000만 원인 차주(借主)가 30년 만기 변동금리(대출이자 4.5% 가정)로 대출받을 경우 2단계 스트레스 DSR 도입 전 한도는 3억2900만 원이었다. 그러나 2단계 스트레스 DSR이 적용되는 9월부터는 수도권 주담대를 받을 경우 한도가 2억8700만 원으로 4200만 원이 줄어든다. 비수도권 주담대는 3억200만 원으로 2700만 원이 감소한다. 대출 축소는 당분간 주택시장 상승세를 일시적으로 늦출 것으로 보인다. 다만 9월 이후 예상대로 금리가 낮아진다면 DSR 강화로 줄어든 대출한도가 다시 회복될 수 있다. 이 경우 투자심리가 다시 커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 수준의 대출 규제 강화가 궁극적 해결책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 강남권을 중심으로 한 집값 상승세가 서울 외곽이나 수도권으로 확산될 여지도 있다. 서울 주요 지역의 집값이 너무 높아져 소비자들이 다른 지역으로 눈을 돌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주택 공급 확대 정책이 부동산시장 참여자들을 안심시키지 못한다면 입주 물량이 감소되는 향후 2년간 시장의 불안 심리는 더 커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향후 부동산 정책과 금리 등 주택시장 외부 변수를 고려하는 가운데, 향후 개발 호재 등 가격 상승 여지가 있는 수도권 외곽이나 신도시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