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쿠팡 사옥(왼쪽)과 CJ올리브영 매장. [뉴스1, CJ그룹 제공]
“쿠팡이 ‘미국식 스타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사를 압박하고 있다.”
국내 e커머스업계 1위 기업 쿠팡이 헬스앤드뷰티(H&B) 1위 업체 CJ올리브영을 ‘납품업체에 대한 갑질’ 혐의로 신고한 것을 두고 유통업계 안팎에선 이 같은 말들이 나오고 있다. CJ올리브영이 국내 드러그 스토어 시장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곪아온 ‘갑질’ 논란이 터졌다는 시각과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쿠팡이 경쟁사를 찍어 누르려 한다는 관측이 교차한다. 뷰티(화장품) 제품은 e커머스에서 판매되는 다른 공산품이나 신선식품에 비해 마진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에 소비자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접 뷰티 제품을 확인한 뒤 구입했으나 최근 들어 온라인 구매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마켓컬리, 무신사 같은 e커머스 업체가 잇달아 온라인 뷰티시장에 진출하는 등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쿠팡 “올리브영 갑질로 막대한 피해 봤다”
쿠팡은 7월 24일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대규모유통업법) 위반 혐의로 CJ올리브영을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 신고했다. “올리브영이 2019년부터 현재까지 4년간 쿠팡의 뷰티시장 진출을 막고자 쿠팡에 제품을 납품하려는 뷰티업체들에 거래상 불이익을 지속적으로 줬다”는 주장이다. 쿠팡은 “올리브영의 ‘갑질’로 사업에 막대한 피해를 초래했다”고 공정위 신고 배경을 밝혔다. 대규모유통업법 제13조에 따라 유통업체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납품업자와 다른 유통업체가 거래하는 것을 부당하게 방해하는 ‘배타적 거래 강요’는 불법이다. 쿠팡은 공정위 신고 후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화장품 업체 A사가 “쿠팡에 납품하겠다”는 계획을 알리자 CJ올리브영 측이 해당 업체의 인기 제품을 ‘금지 제품군’으로 지정해 쿠팡에 납품하지 못하게 했고 △B사는 “쿠팡에 납품하면 올리브영 입점 수량 및 품목을 줄이겠다”는 압박을 받아 납품을 포기했다 등 갑질 사례들을 제시했다.쿠팡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CJ올리브영 관계자는 7월 26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납품 업체들이 쿠팡에 입점하는 것을 제한한 바 없다”고 밝혔다. 현재 CJ올리브영 측은 공정위에 신고된 각종 갑질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단계로, 아직 구체적인 대응 방침은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의혹과 별개로 CJ올리브영은 이미 비슷한 사건으로 공정위 조사를 받고 있다. CJ올리브영이 협력업체들의 H&B업계 경쟁사 납품을 막는 등 대규모유통업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다. 공정위는 CJ올리브영이 시장지배자로서 지위를 남용했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초 공정위로부터 심사보고서를 전달받은 CJ올리브영 측은 최근 이에 대한 자사 의견을 회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안은 공정위 전원회의 심의를 앞두고 있다. CJ올리브영의 대규모유통업법 위반 혐의에 대한 조사 상황과 관련해 공정위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는 답변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온라인 뷰티시장에서 두 업체의 충돌은 필연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쿠팡은 사실상 ‘한국 내수기업’이라 기존에 강점이 있던 공산품을 넘어 뷰티 등 다른 카테고리로 사업을 확대할 수밖에 없다”면서 “반면 CJ올리브영 입장에서는 그간 오프라인 드러그 스토어 시장에서 고군분투한 끝에 1위 자리를 차지한 만큼 쿠팡의 도전이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서 정 교수는 “온라인 시장과 오프라인 시장의 경계가 갈수록 희미해지는 가운데 점차 확대되는 온라인 시장 확보를 위한 기업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쿠팡-CJ 간 갈등, 식품·유통·OTT 등 전방위적
CJ제일제당이 마켓컬리를 통해 단독 판매하는 ‘햇반-골든퀸쌀밥’(위쪽)과 쿠팡이 7월 17일 진행한 ‘즉석식품 반값특가’ 행사 홍보물. [마켓컬리 제공, 쿠팡 제공]
이에 질세라 CJ제일제당도 쿠팡과 경쟁 관계인 e커머스 업체들과 반(反)쿠팡 동맹을 맺어 응수했다. 마켓컬리, 신세계그룹, 네이버 등 연대 대상도 광범위하다. CJ제일제당은 현재 마켓컬리에 햇반 프리미엄 라인 제품을 단독 공급 중이고 올해 하반기 SSG닷컴, G마켓 등 신세계그룹 유통망을 통해 비건 캔햄을 단독 출시할 예정이다. 네이버 ‘도착보장’이나 11번가 ‘익일배송’ 등 빠른 배송서비스에도 입점해 쿠팡 로켓배송에 견제구를 날리고 있다.
쿠팡과 CJ그룹의 경쟁 전선(戰線)은 다양한 산업 분야에 걸쳐 있다. 전통 강자인 CJ대한통운이 버티고 있는 물류업계에 쿠팡로지스틱스(CLS)가 2021년 도전장을 냈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선 쿠팡플레이와 CJ ENM 자회사 티빙이 경쟁하고 있다.
다만 쿠팡과 CJ그룹 측은 이번 공정위 신고와 기존 납품을 둘러싼 갈등은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쿠팡이 공정위에 신고한 것이 햇반 등 제품 납품 협상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양측이 윈윈(win-win)할 수 있도록 협상 중”이라며 말을 아꼈다. 일각에선 쿠팡이 공정거래 이슈를 제기해 CJ 측과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쿠팡 측은 “CJ제일제당과 상호 중요한 파트너라는 인식 아래 신뢰를 바탕으로 협상을 풀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CJ올리브영 신고건에 대해서는 무관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향후 공정위 심의에서 핵심은 CJ올리브영이 ‘시장지배적 사업자’인지 여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정거래법상 특정 시장에서 점유율 50% 이상인 기업을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본다. 이 같은 우월한 지위를 남용할 경우 매출의 최대 6%까지 과징금이 부과된다. 쿠팡 신고건을 다룬 일부 언론 보도에서 “CJ올리브영이 오프라인 점포 수 기준 H&B 시장만 보면 1분기 시장점유율 71.3%(매장 1316개)로 1위”라는 내용이 다뤄지는 것은 CJ올리브영의 시장지배적 사업자 지위는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이다. CJ올리브영 측은 “오프라인 시장에서야 올리브영 브랜드 점유율이 70%를 넘지만, 온라인까지 합치면 10%대에 불과하기에 ‘시장지배적 사업자’라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온오프라인 경계가 옅어지는 가운데 시장지배 범위를 오프라인에 한정할지, 온라인 시장까지 넓혀서 볼지가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쿠팡도 갑질 의혹으로 공정위 제재 위기
이번 공정위 신고가 쿠팡으로선 ‘꽃놀이패’라는 분석도 있다. 공정위가 오프라인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근거로 CJ올리브영을 제재할 경우 쿠팡 입장에선 온라인 뷰티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호재가 된다. 또 온오프라인 시장을 모두 합쳐 시장지배력을 산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단이 나와도 마냥 손해는 아니다. 쿠팡도 CJ올리브영과 마찬가지로 시장지배력을 남용한 갑질 혐의로 공정위로부터 제재를 받아 송사 중이기 때문이다. 쿠팡은 2017~2020년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LG생활건강 등 직매입 거래를 맺은 제조기업들에 “다른 유통채널의 가격을 인상하라”고 요구하고 광고를 강매하는 등 갑질을 한 혐의로 공정위로부터 2021년 33억 원 과징금 부과 제재를 받았다. 이에 쿠팡이 불복해 공정위를 상대로 시정명령 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해 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갑질 의혹에 대해 쿠팡 측은 “LG생활건강과 갈등이 처음 발생한 2017~2018년 시점에 쿠팡은 온라인시장 3위 사업자였으며, (온오프라인을 합쳐) 전체 소매시장 점유율은 약 2% 정도에 불과”라는 입장이다. 요지는 쿠팡의 시장지배자 지위를 부인하는 것인데, CJ올리브영 측 해명과 닮은꼴이다.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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