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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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유 가격 미쳤네”…서민 연료 경유의 배신

14년 만에 휘발유 가격 제쳐… 국제 경유가에 연동되는 게 핵심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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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여진 기자

    119hotdog@donga.com

    입력2022-05-2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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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16일 서울 서초구 서울만남의광장 주유소에서 경유가 휘발유보다 비싸게 판매되고 있다.[뉴스1]

    5월 16일 서울 서초구 서울만남의광장 주유소에서 경유가 휘발유보다 비싸게 판매되고 있다.[뉴스1]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경유 가격이 결국 14년 만에 휘발유 가격을 제쳤다. 경유차를 이용하는 소상공인과 화물차 운전자의 고통 또한 커지고 있다. 25t 화물차를 운행하는 함종수 씨는 “트럭 할부금에 보험료와 하루가 다르게 급등하는 기름값까지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다”며 “최근 정부가 ‘유가연동보조금’ 지급 기준을 L당 1750원으로 인하했지만 월 20만 원가량 보조금이 추가되는 걸로는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 일산에 사는 직장인 이지훈 씨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회사가 있는 서울 한남동까지 경유차로 출퇴근하다 최근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있다. 그는 “평소 한 달 주유비가 20만 원이면 충분했는데, 최근에는 30만 원을 훌쩍 넘어 자동차 출퇴근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5월 11일 전국 평균 경유 가격이 L당 1948원을 넘으며 14년 만에 기존 최고 가격인 1947.75원을 경신했다(그래프1 참조). 심지어 휘발유 가격도 추월한 액수다. 경유는 휘발유보다 200원가량 저렴하다는 통념마저 깨졌다. 5월 18일 전국 주유소의 평균 경유 가격은 L당 1979.3원으로, 평균 휘발유 가격 1965.5원보다 13.8원 더 높다. 5월 11일 이후 9일 연속 경유 가격이 휘발유 가격을 넘어서고 있다. 경유가 휘발유 가격을 역전한 것은 국제 유가가 크게 올랐던 2008년 5월 이후 처음이다. 2008년 5월 29일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1888.4원, 전국 평균 경유 가격은 1892.24원으로, 이러한 역전현상은 6월 18일까지 21일간 지속됐다.

    유럽 경유 재고 부족으로 가격 상승

    경유 가격 급등 원인으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촉발된 석유 제품 수급난과 경유 차량이 많은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적인 경유 재고 부족 현상을 꼽을 수 있다.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국제 유가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2월 21일 L당 1486원이던 경유 가격은 3월 5일 1920원까지 올랐다. 유럽은 경유 수입의 60%가량을 러시아에 의존할 만큼 러시아 의존도가 높은데,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산 석유 제품에 대한 제재가 이어지면서 경유 가격이 가파르게 오른 것이다. 5월 첫째 주 기준 국제 휘발유 가격은 배럴당 137.4달러(약 17만4882원)로 올해 초(배럴당 91.5달러) 대비 50.1% 오른 반면, 국제 경유 가격은 올해 초 배럴당 92.4달러에서 162.3달러(약 20만6575원)로 75.6%나 폭등했다.

    물론 한국은 수입한 원유를 정제해 경유를 생산하는 만큼 국제 경유 공급난이 즉시 국내 경유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국내 휘발유, 경유 가격은 싱가포르에서 거래되는 국제 가격에 맞춘 ‘연동제’로 결정된다. 해외에서 비싸게 팔리는 경유를 마음대로 싸게 팔 수 없는 제약이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제 경유 가격이 오르면 국내 경유 가격도 자연스럽게 오르게 돼 있다.



    5월 1일부터 유류세 인하를 경유와 휘발유를 동일하게 20%에서 30%로 시행한 정부 방침 또한 상대적인 경유 값 상승을 불러왔다. 유류세는 휘발유에 L당 820원, 경유에 573원이 붙는데 이를 일률적으로 30% 인하하면서 휘발유는 246원, 경유는 172원 인하 효과가 발생했다. 휘발유 인하 효과가 74원 더 큰 것이다. 경유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유류세가 비쌌던 휘발유가 혜택을 더 받으면서 경유와 휘발유 가격의 역전 현상이 일어난 셈이다.

    유류세 추가 인하로 화물차와 버스, 택시 등 운수사업자는 2001년 에너지 세제 개편에 따른 유류세 인상분에 대해 보조해주던 ‘유가보조금’이 줄어들게 됐다. 통상 유가보조금 지급 단가는 현 유류세에서 2001년 6월 당시 유류세액인 경유 L당 183.21원을 뺀 나머지 금액으로 정해진다. 따라서 기름값이 오른 상태에서 유류세가 인하되면 그만큼 보조금도 줄어든다.

    이에 정부는 5월 17일 ‘경유 유가연동보조금 관련 관계부처 회의’를 개최해 최근 경유 가격 오름세에 따른 운송·물류업계 부담을 경감해주고자 경유 유가연동보조금 지급을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현행 유가연동보조금 지급 기준 가격을 L당 1850원에서 1750원으로 100원 인하하고 지급 시한도 당초 7월 말에서 9월 말로 연장하기로 했다. 경유 가격이 L당 1750원 이상으로 상승하면 초과분의 50%를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이다. 만약 경유 가격이 1950원이라면 L당 100원이 지원되는 셈이다. 유가연동보조금이 처음 도입된 건 경유가 휘발유 가격을 넘어선 2008년이었다. 당시 경유 L당 1800원 이상 상승분의 50%를 추가 지원해주는 내용으로 도입됐다.

    체감 경유 값 당분간 안 떨어질 듯

    유류세 추가 인하와 유가연동보조금 지급 확대가 결정됐지만 소비자가 가격 안정을 체감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이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의 가격 정보를 통해 전국 주유소 1만958개 경유 가격을 분석한 결과 유류세 추가 10% 인하 전인 4월 30일 대비 5월 15일 전국 경유 가격은 L당 평균 45.99원 인상됐다. 같은 기간 휘발유 가격은 L당 평균 18.24원 내렸다. 경유의 유류세를 10% 인하하면 경유 가격은 L당 58원이 내려가야 한다. 이 기간 국제 경유 가격이 88원 인상됐으므로, 실제 30원가량 인상돼야 적정하다. 하지만 30원 이하로 인상한 주유소는 전국 전체 1만958개 주유소 중 2754개로 25.13%에 불과했다(표 참조).

    국내 주유소의 경유 가격은 국제 경유 가격에서 2주간 시차를 거쳐 결정된다. 5월 둘째 주 전국 평균 경유 가격은 L당 1939.68원이었다. 이 기간 국제 경유 가격은 L당 1127.19원. 여기에 유류세와 정유사·주유소의 마진이 더해져 소비자가격이 결정된다. 국제 경유 가격이 국내 경유 가격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러시아 침공 사태가 지속된다면 경유 가격은 당분간 내려가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경유 가격이 휘발유보다 저렴한 이유

    한국은 왜 경유가 휘발유보다 싼 것일까. 그 이유는 세금 때문이다. 정부가 석유 제품 세금을 고시한 1970년대 휘발유는 사치품인 승용차용 연료, 경유는 국가 경제 부흥에 필수인 산업용 연료라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1997년 유가 자율화가 실행되면서 경유 가격이 올랐지만 여전히 경유는 휘발유보다 저렴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국제 석유시장에서 인식은 정반대다. 경유가 휘발유보다 연비가 더 좋기 때문이다. 5월 9일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경유 가격을 살펴보면 L당 2416.58원으로 국내 경유 가격보다 27%가량 높게 형성돼 있다(그래프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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